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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 눈물을 보았고 네 기도를 들었노라 / 열왕기하 20:1-7

히스기야는 기도라는 주제로 성경을 공부할 때에 빠질 수 없는 인물입니다. 히스기야의 시대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매우 결정적인 시기였습니다. 이스라엘도 다윗의 아들 솔로몬 시대 이후에 남과 북으로 갈라졌다는 말씀을 여러 번 드렸는데 그 갈라진 두 나라 중에서 더 크고 부강했던 나라가 북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앗시리아, 성경에 앗수르라고 표현된 나라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팽창을 하면서 중동 전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갈라졌던 두 나라 중에서 먼저 북이스라엘이 히스기야의 시대에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합니다. 당시에 히스기야는 갈라진 두 나라 중에서 남유다의 왕이었습니다. 앗수르의 군대는 북이스라엘을 무너뜨리고 남유다 마저도 함락시키기 위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십팔만오천명이나 되었던 앗수르의 군대가 유다 왕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로 예루살렘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패주하게 됩니다.

저명한 역사가 윌리엄 맥닐은 세계 역사에서 후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중요한 사건들 중의 하나로 바로 유다가 앗수르의 침략을 이겨낸 사건을 꼽았습니다. 만일 이 때에 유다가 앗수르에 의해 정복을 당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기독교와 기독교 문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유다는 앗수르의 침략은 이겨내었지만 후에 바벨론에 의해 정복을 당합니다. 그러나 앗수르와 바벨론은 피정복민을 대하는 태도에서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멸망한 후에 각각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무너뜨린 후에 그 땅의 백성들은 다른 곳으로 끌고 가고 그 땅에 다른 지역의 민족들을 보내어 살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10지파는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만일 이 때에 남유다도 앗수르에 의해 무너졌다면 이스라엘이라 나라와 민족은 역사에서 사라져 버렸을 것이고 유대교 신앙도 사라지고 기독교 신앙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 왕국은 하나님이 당시 그들에게 알려진 세계 전체를 정복한 엄청난 앗수르의 군대로부터 구원을 받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뒤로 고난이 닥쳐도 그것이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서 불의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후에 바벨론이 남유다를 무너뜨렸지만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다가 70년 만에 다시 돌아왔고 그들의 신앙과 문화를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다시 돌아와서 나라를 재건하게 되었고 그 기반 위에 유대교와 기독교 문화가 자라나는 토양이 되었습니다.

윌리엄 맥닐은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다가 갑자기 물러간 이유가 전염병이 퍼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날 앗수르의 대군이 물러간 이유가 전염병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전염병이었다는 것도 어떻게 설명할 수 없으니 생각해 낸 일종의 가설이지만 전염병 때문이었다고 해도 왜 하필 그날 그 곳에서 전염병이 퍼지게 되었는지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중요한 것은 저 작고 힘없는 유다라는 나라가 당시에 중동의 패권을 차지한 앗수르의 강한 군대를 외부의 어떤 도움도 없이 물리쳤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놀라운 일이 히스기야의 기도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고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앗수르 왕은 예루살렘으로 군대를 보내고 히스기야에게 편지를 보내 최후의 통첩을 전합니다. 앗수르 왕은 이 세상 어느 민족의 신이 앗수르 왕의 공격에서 그 민족을 구원한 적이 있느냐고 도발적으로 질문하고 네가 믿는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지켜주신다는 말에 속지 말라고 말합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의 편지를 들고 성전에 가서 하나님 앞에 그 편지를 펴놓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편지의 내용을 보시고 긍휼히 여겨달라는 간절한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앗수르 왕이 무너뜨린 나라의 신들은 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들이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보여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셔서 히스기야에게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이 성을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은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그게 다 우연의 일치라고 이야기하고 싶겠지만 왜 그 우연이라는 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기도하는 바로 그 때에 일어나는지에 대해 어떻게 설명을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히스기야의 또 한번의 기도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앗수르의 대군을 물리친 히스기야였지만 그도 인간적으로는 연약한 사람이었고 큰 병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사야 선지자가 찾아와서 이 병으로 죽게 될 것이니 이제 삶을 정리하라고 말씀을 전합니다.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듣고 낙심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택합니다.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라고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의 내용을 보면 그는 내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았는데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는 억울한 심정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의 모습도 그의 그의 답답함과 억울함을 함께 표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보통 당시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하늘을 우러러 보며 두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벽을 보고 앉아서 기도합니다. 스님들이 면벽수도를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았지만 기독교에도 면벽기도가 있는데 그 창시자가 히스기야입니다. 그는 너무나 절망하여 차마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없었고 앞이 꽉막힌 것 같은 심정으로 막힌 벽을 바라보면서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탄식하며 기도한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기도에서 주목하게 되는 특징은 이렇게 그의 기도의 자세, 기도의 방법이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앞에서 앗수르의 위협 속에서 기도할 때에는 그는 앗수르 왕이 보낸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펴놓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병으로 인해 기도할 때에는 자신의 방에서 벽을 바라보고 기도합니다. 이러한 기록들은 그의 기도의 역사성, 사실성을 밝혀주는 것이고 그의 기도가 형식적, 의례적인 기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했던 기도였음을 보여줍니다.

이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든지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병으로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이사야 선지자가 아직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하나님이 다시 그를 돌이켜서 왕궁으로 가게 하시고 히스기야를 고쳐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기도의 응답을 얼마나 빨리 받아 보셨습니까? 제가 기억하는 가장 빠른 기도의 응답은 제가 대학부 수련회를 갔을 때였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제 기도가 아니라 제 친구의 기도였는데 사정은 이렇습니다. 대개 수련회를 가면 마지막 날은 늦게까지 기도회를 하고는 밤새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든지 게임을 하든지 아무튼 거의 밤을 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때도 그랬고 그래서 마지막 폐회예배때는 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었고 그래서 폐회예배의 설교시간에 무슨 말씀인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졸고 있었는데 그 때 제 옆에 있던 제 친구 한 명이 설교 말씀이 참 좋은데 옆에서 제가 졸고 있는 것이 불쌍해보였는지 하나님께 기도를 했답니다. “하나님 명윤이를 깨워서 저 말씀을 꼭 듣게 해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는데 바로 그 순간에 제가 “악”하고 소리를 지르며 졸음에게 깨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벌이 제 다리를 쏘았기 때문입니다. 저도 놀랐지만 제 친구는 더 놀랐습니다. 자기가 기도하자마자 갑자기 제가 깨었기 때문이지요. 저는 지금도 궁금합니다. 그 벌이 어디서 왔다가 왜 그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바로 그때 저를 쏘았는지.

여러분 히스기야의 기도도 그렇고 그 때 제 친구의 기도도 그렇고 즉각적으로 응답을 받는 기도에는 기도하는 사람들의 순전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도 기도하지만 우리는 그런 순수한 마음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세상에서 때가 많이 묻었고 기도하면 꼭 이루어진다는 확신도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기는 하지만 되도 좋고 안되면 할 수 없고 하는 식의 기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물론 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그 순간 만큼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역사하신다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로 순전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했을 때, 정말로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전심으로 기도했을 때에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응답해주시고 인도해주셨습니다.

옛날 이야기를 한 가지 더 해드리겠습니다. 저하고 고등부시절부터 매우 친했던 교회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저는 대학교를 바로 갔는데 그 친구는 재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 친구의 형편이 좀 어려워서 혼자서 자취를 하면서 공부를 했는데 그 방에는 전화도 없었습니다. 그 친구는 자취하면서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니까 그 친구를 만나려면 그 집에 가는 수밖에 없었는데 공부하다 늦게 오곤 하니까 언제 가야 만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가끔은 한참을 기다리다가 그냥 가게에서 간식거리 같은 것을 사서 문 앞에 걸어놓고 오곤 했습니다. 어느날 저녁에 한번은 그 친구가 참 보고 싶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그 친구를 꼭 만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얼마 지나서, (이날은 바로는 아니고 좀 시간이 지나서였습니다.) 갑자기 현관 벨이 울리더니 그 친구가 문 앞에 서있는 것입니다. 웬지 우리 집에 가고 싶었다는 것이지요. 뭐 우리가 핸드폰, 스마트폰 없을 때에도 다 사는 법이 있었지만 이렇게 하나님이 기도에 바로 응답해 주신 경험은 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일들이 제게도 별로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때에는 그런 일들이 일어났던 것은 그만큼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가 기도할 때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셔서 이사야 선지자의 발길을 돌리신 것은 그만큼 히스기야의 기도가 간절했으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에게 떠오르는 의문점이 있습니다. 그렇게 바로 고쳐주실 것이면 애시당초 왜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병이 들게 하셨을까요? 왜 그 병으로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히스기야가 유다 왕국을 위기에서 구원한 위대한 왕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이기는 하지만 히스기야도 인간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처음부터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앗수르왕이 처음 쳐들어 왔을 때에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에게 달라는 것은 다 드릴테니 군대를 물려 달라고 청원을 하였고 앗수르 왕은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을 요구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나라 안의 모든 금과 은을 모았고 심지아 하나님의 성전에 도금했던 것까지 다 긁어서 앗수르 왕에게 바쳤습니다. 그런데 앗수르 왕이 약속과는 달리 군대를 물리지 않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오면서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은 기도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처음부터 기도에만 의지한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방법을 다 동원해도 해결되지 않는 궁지에 몰린 상황 속에서 히스기야가 간절하게 기도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는 히스기야의 실책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앗수르를 물리친 다음에 그 당시에 떠오르던 신흥 강국이었던 바벨론의 사자가 예루살렘을 방문합니다. 앗수르를 대항하는 동맹국을 모으려고 한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의 나라가 바벨론에게 인정받을만한 힘이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서 자신의 군대의 무기들을 군기고를 열어서 다 보여주고 왕궁에 있는 것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보여주었습니다. 그 순간에는 히스기야도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어떻게든지 바벨론을 동맹으로 확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때 바벨론에게 나라의 모든 것을 내어 보여준 결과는 결국 예루살렘은 후에 바벨론에 의해 함락이 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히스기야가 경건한 왕, 기도하는 왕이 된 것은 그가 늘 언제나 한결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도 여러 가지 계산으로 머리가 복잡한 사람이었고 현실에서 누가 힘이 있는지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연단하셔서 그로 하여금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셨고 적어도 히스기야는 기도해야 할 때에, 기도할 수밖에 없을 때에 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았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언제든지 교만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언제든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은 그를 깨우시고 그의 믿음을 바로 세우시기 위해서 나라를 큰 위기에서 건져 주신 후에도 그의 육신의 병을 허락하셨고 그가 다시 간절히 하나님을 찾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전에 다윗의 인생을 살펴보면서 배웠던 것처럼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위인들이란 본래부터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늘 확실한 믿음 가운데 거했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도 다 계산적이고 때로는 이기적이고 다 불완전한 신앙과 인격의 소유자들이었지만 하나님이 그들의 인생 가운데에서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을 연단하시고 기도하게 하심으로 그들의 삶을 변화시켜가셨던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를 생각하며 오늘 또 우리의 기도를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부르실 때에 순전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역사하심을 보는 기쁨이 이 한주간도 우리의 삶 가운데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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