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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기도자 느헤미야의 기도 / 느헤미야 2:4-10

여러분은 하루에 몇 번 기도하십니까?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또 그 날이 어떤 날이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것이고 또 우리의 사정이 어떠한 가에 따라서도 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내가 하루에 몇 번 기도하느냐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떤 틀을 가지고 있는가, 어떤 기도의 습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다양한 기도의 시간을 갖습니다. 먼저 아침, 혹은 저녁에 시간을 정해서 드리는 기도가 있습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에, 교회에 나오시거나 집에서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시는 분들도 있고 직장에 도착해서 잠깐의 기도의 시간을 갖는 분들도 있습니다. 혹은 아침 분주한 시간을 지내고나서 오전에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갖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에 기도하며 하루를 정리하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가족들과 함께 일정한 시간에 가정예배를 드리기도 합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나에게 정해진 기도의 시간과 장소가 있느냐가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안정되고 성숙하고 있느냐에 대한 중요한 척도가 됩니다.

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부교역자를 할 때에 담임목사님이 저에게 제가 별로 신앙의 틀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좋은 의미와 그렇지 않은 의미 모두를 가진 말씀이었은데 특정한 틀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신앙생활하는 것은 좋지만 목회자로서 성도들을 지도하는 데에는 좋지 않은 것이라는 의미로 말씀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틀에 매이지 않을 때에 더 자유롭게 더 깊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정한 틀, 일정한 형식이 있을 때에 삶이 안정이 되고 더 깊은 믿음생활을 할 수 있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제게 교역자는 성도들에게 신앙의 습관, 신앙의 틀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사실 저도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배워온 몸에 배어있는 신앙의 틀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 모두가 다 비슷한 과정을 거치게 되지만 그런 틀에 매이기 싫어서 자유롭게 살고 싶은 때도 있고 또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런 하나의 신앙의 틀, 신앙의 습관들이 참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기도의 습관은 내게 최소한의 기도의 시간을 만들어주고 또 내가 누구인지를 내 스스로에게 가르쳐 줍니다. 또 내가 누구인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게 되기도 합니다. 다니엘은 하루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왕이 아닌 다른 신에게 기도하는 것을 왕이 금지했다는 것을 알고도서 그의 기도의 습관을 바꾸지 않으므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세상에 드러내었고 그것으로 인해 큰 고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그렇게 믿음을 지켰기에 하나님이 그를 건져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회사생활을 할 때에 신우회가 있어서 회사 안에서 믿는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많은 도움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같은 부서의 상사들은 대하기가 좀 어려운데 신우회로 모이는 분들은 선배들, 과장님, 부장님들도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좋은 배움의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제가 처음에 신우회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냐고 질문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인사과에서 사원들의 종교를 알려달라고 한 것이냐고 했더니 그냥 알음알음으로 교회다니는 사람들 모아서 만들게 되었고 또 중요한 것이 식사시간에 기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찾아가서 같이 모이자고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은 안 믿는 분들하고 식사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다 잊어버렸지만 생각해보면 학교를 다닐 때나 직상생활을 할 때에 식사기도를 하는 것이 상당히 눈치가 보일 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인데 제 후배가 직장에 들어가게 되어서 식사시간에 늘 기도를 하고 식사를 하니까 같이 식사하던 선배가 밥먹을 때마다 인사를 해줘서 고맙다고 농담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직장에서도 식사기도를 하는 것이 몸에 배여 있는 사람이라면 신우회 활동을 할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기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인지, 아마도 중고등학교 시절 쯤이었다고 생각되는데 다른 사람의 집에 방문하면 먼저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목회자이기에 다른 분들의 집에 들어가면 먼저 축복기도를 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학생 때부터 친구 집에 가서도 먼저 기도를 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때는 목사를 할 생각도 전혀 없었고 지금 생각하면 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우리 집에 놀러오는 우리 아이들 친구들 중에도 그런 애들이 없는데 그때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 몇 번 하다보니까 별로 어색한 느낌도 없어졌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에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나중에 보니까 마태복음 10장 12절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는 말씀이 있어서 그렇게 기도하는 전통이 생겼다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또 공적인 예배나 모임에서 대표기도를 하게 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대표기도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을 합니다. 물론 당연히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공적인 기도, 대표기도는 다른 사람이 내 기도의 내용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기도라는 기도의 본질적인 측면 외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 기도한다는 또 다른 측면이 부가가 되기에 더 부담스러운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표기도가 대표기도이기에 당연한 것입니다. 내 기도를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하는 그런 기도가 아니라 성도들의 마음을 모아서, 성도들을 대표해서 기도하는 것이기에 당연히 들려져야 하는 것이고 공감할 수 있는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예배시간에 가능하면 인도자가 말을 적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런 멘트를 안붙이지만 흔히 인도자가 기도자를 소개할 때에는 아무개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 목사님이 기도인도해 주시겠습니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런 의미에서 하는 말입니다. 그 시간은 나 혼자 기도하는 시간이 아니라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는 시간, 기도를 인도하는 시간이라는 의미입니다.

다른 교회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우리 교회에서는 짧게나마 예배시간에 기도하는 시간들을 드립니다. 참회기도시간을 드려서 한 주간의 삶을 돌아보며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대표기도후에 잠깐의 기도시간이 있는 것은 그 시간동안 대표로 기도한 내용을 되새겨보며 또 잠시 자신만의 기도의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교후에 기도시간은 설교말씀을 듣고나서 내가 기도로 하나님께 응답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 중에 연합으로 중보기도의 시간을 잠시 갖고 또 목장 모임 시간에도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때에 다른 성도들을 위해 중보하는 시간들을 갖게 됩니다.

전에 한번 생각해보니 주일에 특별히 시간을 내어서 교회에 왔는데 막상 기도하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배드리고 찬송도 부르고 설교도 듣고 봉사도 하고 이야기도 많이 하는데 기도하는 시간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어가 가능한 여러분들에게 잠깐이라도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드리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도의 시간은 한편으로는 기도부탁을 받고나서 실제로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의 짐이 되어 버릴 수 있으니 여러분들이 기도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려는 것이고, 또한 그렇다고 이걸로 주일에 와서 기도 다 했다고 생각하시지 말고 한주간의 기도의 시동을 거는 그런 시간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들은 정해진 시간에 어떤 형식을 따라서 드리는 그런 기도들입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의 일상 속에서 다급한 순간에 드리게 되는 기도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속의 느헤미야는 특별히 우리에게 일상 속에서 기도하는 모범을 보여줍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다가 다시 돌아오던 시절에 몇 번에 걸쳐 귀환을 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 세 번째 귀환을 이끌었던 사람이고 페르시아 왕에 의해 예루살렘의 총독으로 임명이 되어서 백성들을 다스렸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느헤미야서를 보면 그는 귀환하기 전에 페르시아왕의 궁정에서 왕에게 술을 따르는 관원이었습니다. 과거의 왕국들에서 술이나 음식을 왕에게 드릴 때에는 왕의 안전을 위해서 가장 신뢰하는 사람들이 관장을 하여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당시에 상당히 왕의 신임을 받는 중요한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을 한 후였지만 또한 아직도 남아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연변에 있을 때에 조선족의 역사를 배우게 되었는데 중국 동포들이 대부분 구한말부터 일제시대에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혹은 독립운동을 위해서 중국으로 이주한 분들이신데 해방이 되고나서 50% 정도가 귀국을 했다고 합니다. 다 귀국을 못한 이유가 해방하는 시점에서 이미 오래된 분들은 한세대, 두세대를 중국에서 보냈기 때문에 이제는 생활을 터전이 중국에 있고 돌아가도 아는 사람도 없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70년이라는 포로생활을 하는 동안에 이제는 그 곳에 정착하게 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다시 삶의 기반을 만드는 결단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고 게다가 느헤미야와 같이 좋은 관직을 얻은 사람들은 더더욱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돌아온 사람들로부터 예루살렘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지금 귀환해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예루살렘 성벽도 무너진 그대로 있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거 봐라, 돌아가봐여 고생만 하는데 뭔하러 다시 가서 그 고생을 하는가하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야기가 자신에게 사명을 주시는 이야기로 들었습니다. 에스더가 그러했던 것처럼 내가 지금 이렇게 왕의 총애를 얻는 자리에 있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내 동족들을 위해 내게 맡기실 일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왕의 신임을 얻은 자리라는 것은 또한 잘못하면 왕의 심기를 거슬를수 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창세기에도 보면 왕의 술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이 감옥에 끌여와서 요셉과 만나게 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있던 자리는 왕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좋은 기회를 타서 잘 말씀드려서 왕의 호의를 입게 되면 백성들을 위해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자리였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의 구절을 보면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왕에게 술을 바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때에 우리가 사극에서 보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왕에서 술을 따라 바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얼굴을 대하여 보고 왕이 느헤미야의 낯빛에서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정도의 관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함을 보고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라고 말하며 관심을 표현합니다.

이때에 느헤미야는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매우 조심스럽게 대답을 합니다. 왕이 관심을 보이기는 했지만 왕의 심기를 거스르게 되면 오히려 큰 화를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라고 대답을 합니다.

왕은 그의 대답을 듣고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묻습니다. 이 순간은 사실 그동안 느헤미야가 기도하며 기다려온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의 형편을 듣는 순간부터 탄식하며 기도해왔고 하나님이 그를 통해 무언가 이루실 일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이 왕의 마음을 열어주셨고 기회가 왔습니다. 이때에 어떻게 대답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그런 순간이 되었습니다.

이때에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잠시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왕에게 아뢰되”(4-5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왕 앞에 있는 그 순간에 그는 잠시 짧게 하나님께 기도하며 지혜를 구합니다.

이런 기도를 “화살기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가 필요한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긴급하게 화살을 쏘아 알리듯 기도하며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는 느헤미야가 어떤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는지를 알려줍니다. 그는 처음에 예루살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따로 경건한 기도의 시간을 가진 사람이었을뿐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도 늘 기도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잠시 왕이 눈치채지 못하게 기도한 후에 그는 왕에게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라고 그의 소원을 아룁니다. 이번에는 왕의 마음이 열린 것을 확신했기에 그 성을 다시 건축하고자 하는 그의 소원을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느헤미야가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했습니다. 첫째로는 예루살렘을 관장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했고 둘째로는 실제로 성벽을 쌓을 수 있는 자원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로 이 순간에 왕에게 구하여 예루살렘에 가서 그 곳을 다스릴 수 있는 허락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왕의 삼림감독이 필요한 목재를 공급해주도록 하는 조서까지 받아내게 됩니다. 이것을 보면 이미 예레미야는 많은 생각을 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왔기에 기도하며 그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를 구했던 것입니다. 이 과정을 느헤미야는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왕의 허락이라는 매개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가 기도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왕의 마음을 열어주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서를 보면 이 외에도 느헤미야가 삶의 현장에서 바로 바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성을 건축하는 것을 비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하나님께 “우리가 엄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컨대 저들의 욕하는 것들이 자기의 머리로 돌아가게 하소서” 기도합니다. 총독으로서 가난한 백성들을 돕게 되었을 때에도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하나님 앞에 집중하여 드리는 기도도 필요하고 일상 속에서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며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드리는 기도도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기도가 호흡이 되고 삶의 일부가 되어서 뗄 수 없는 습관이 되어갈 때에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의 의미를 알게 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처음에 드렸던 질문을 다시 드려봅니다. 여러분은 하루에 몇 번 기도하십니까? 이제 대림절 첫 주일을 맞이하고 또 새해를 준비하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의 습관을 돌아보며 새롭게 결단함으로 기도가 우리의 호흡이 되고 우리의 삶의 일상이 되어서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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