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교회 :::
현대교회 로고
신앙으로의 초대 현대교회 이야기 예배와 모임 나눔과 섬김 참여와 헌신
예배안내 양육과정 안내 매일묵상 교회학교 목장안내


서브메뉴 안내 - 섬기는 이들


댓글 0
전능자 앞에 선 욥의 기도/욥기 42:1-6

오늘 본문은 욥의 기도입니다. 욥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동방의 우스 땅 에 살았던 매우 부유하면서도 경건했던 욥이라는 사람의 삶에 일어난 고난에 대해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간단하게 정리해보자면 욥은 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고난을 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경건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탄의 시험의 대상이 되었고 의아하게도 하나님도 욥이라면 어떤 시험에도 이겨낼 것이라며 사탄의 제안에 동의를 합니다. 그래서 욥의 삶에는 갑자기 재난이 닥쳐오고 그가 가졌던 모든 것을 다 잃게 됩니다. 욥이 그 모든 시험을 잘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듯했지만 곧 이어 욥은 자신의 삶에 벌어진 일들로 탄식하고 원망하며 이해할 수 없는 일들 가운데 괴로워합니다. 그러자 욥의 친구들은 그를 위로하기는커녕 이 모든 것이 그의 잘못 때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종용합니다. 욥기는 욥의 친구들과 욥 사이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욥과 분명히 그의 잘못이 있었을 것이라는 친구들 사이의 지리한 논박으로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욥의 편을 들어주시고 욥이 잃었던 모든 것들을 갚아주시는 이야기로 끝나게 됩니다. 

성경과 또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이야기들 속에서 전형적인 인생에 대한 설명은 무언가 결핍되어 있는 사람이 자신의 비전을 성취해가는 과정으로 보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요셉이나 모세나 다윗과 같은 사람들은 처음에 등장할 때는 평범한 사람, 혹은 위기 속에 처한 사람이었지만 점차 고난을 이겨내고 중요한 지위를 획득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욥은 시작부터 완전했습니다. 세상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갖추어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욥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성취로서의 인생이 아니라 오히려 위기와 상실로서의 인생의 이야기이고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근원적으로 성찰하게 해주는 이야기입니다. 

욥의 이야기는 성경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우리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어찌되었든지 간에 믿음을 가짐으로 믿기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얻기 위한 것인데 욥이 신앙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신앙이 좋았기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욥의 이야기는 또한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일상에서의 경험의 한 가지 축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고백이지만 그러나 또 한 가지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축은 인생이 우리가 수고한 대로 그 결과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인생이란 부당한 일들, 의미를 알 수 없는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시련의 연속이라는 또 하나의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욥의 이야기는 우리가 별로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우리 인생의 또 다른 측면에 대해 우리를 직면하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구약성경을 살펴보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경험도 이와 같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렸지만 결코 그들의 삶이 평탄하거나 형통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바벨론 군대에 의해 나라가 무너지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모든 것이 강탈당하고 무너지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것을 보아야 했고, 요행히도 죽음을 면한 사람들은 이역만리 타국으로 끌려와서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의 죄에 대한 심판으로 하나님이 이 모든 고난을 주셨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지만, 또 한편으로 왜 하나님의 백성이 이렇게 고난을 겪어야 하는가, 더 악한 저 이방 족속들은 왜 지금 번성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욥기 뒤에 이어지는 시편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인의 고난과 악인의 형통이라는 삶의 부조리에 대한 탄식의 소리들을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욥의 이야기는 구약성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난을 대변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제로 겪어야 했던 고난과 그 가운데 담긴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자 하는 고뇌가 바로 욥기에 담겨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욥의 이야기는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바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됩니다. 

우리들도 막연히 우리의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가 행한 일들에 대한 보응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욥의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 한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는 거기에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이 횡재를 했을 때에는 거기에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인정하기 보다는 그야말로 횡재라고, 우연적이고 혹은 부당한 일이라고도 생각하며 그 사람의 행운의 이유가 그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인색한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건 남들의 삶에 일어난 어려움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그것이 그 사람의 탓이라는 생각에 쉽게 동의하게 됩니다. 그러나 막상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어려운 일에 대해서 똑같이 생각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삶에 벌어지는 어려운 일들에 대한 우리들의 첫 번째 반응은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데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라는 원망일 것입니다. 

욥의 이야기는 우리의 그러한 원망을 부정하고 억누르며 인과응보의 틀 안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그러한 부당함, 부조리함에 대한 호소를 받아주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예전에 전도사로 사역하던 교회에 한 청년이 있었는데 예배시간이면 늘 방송실에서 봉사하는 조용하고 성실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청년에게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자기는 사실 교회 오는 것이 너무나 두렵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맨날 축복에 대해 이야기하시고 예수 믿으면 인생이 형통한다고 말하는데 자신의 삶에는 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지도 못했고 원하는 직장을 얻지도 못했고 답답한 일들의 연속일 뿐인데 목사님 말씀대로라면 자기는 저주받은 인생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목사님의 말씀을 틀렸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교회에 가지 않으면 더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날 것 같고, 그래서 자기가 선택한 것이 교회에 가지만 설교를 듣지 않을 수 있는 곳이 방송실이라고 설교시간이 되면 거기에 숨어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 기억에 그 목사님이 늘 그런 축복의 설교만은 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목사님의 설교 탓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 청년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어려서부터 마치 산타클로스와 같은 하나님, 늘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만 듣고 배워왔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다가 자라나면서 삶의 현실을 대하게 되면서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는 다 하나님의 부재와 세상의 부조리를 경험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한 삶을 그 청년은 더 예민하게 느끼고 겪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욥의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 우리들 모두의 이야기가 됩니다. 우리가 덮어두었던 이야기, 우리가 차마 드러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욥은 큰 소리로 하나님 앞에서 외치며 부당함을 호소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요구합니다. 

우리도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고 순종하고 싶어도 순종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어도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과 대면하는 시간들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쉽게 포기하고 낙심하고 시험에 들고 믿음의 자리에서 멀어져갑니다.  

우리가 신앙을 잃어가는 그 순간에 욥은 기도하는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다가갔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풀리지 않는 인생의 모순들을 안고 그는 여전히 기도했고 탄식하면서도 하나님 앞에 머물렀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해 대해 묵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기도할까요? 왜 기도해야 할까요? 우리에게 기도는 많은 경우에 무언가를 얻는 수단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결핍된 것이 없으면 기도제목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기 난감해집니다. 그런데 만일 기도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얻기 위한 수단이 된다면 어쩌면 그것은 하나님도 우리의 인생에서 하나의 수단이 되어버린다는 의미는 아닐까요?

욥기에서 사탄은 어떤 면에서 하나님과 사람의 명예에 도전을 합니다. 사탄은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유가 하나님께서 주신 소유물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본래 인간에게 하나님은 별로 필요없는 존재이고 단지 인간은 물질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것을 공급해 줄 때에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있어 별로 의미가 없는 존재라고 하나님의 명예에 도전을 합니다. 또한 그 하나님이 선하게 지으신 인간은 근본적으로 결국은 돈밖에 모르는, 세속적인 존재라고 비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의 고난은 하나님과 인간의 명예를 위한 고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욥이 이 고난에서 승리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고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이 그저 속물이 아닌 거룩함에 대한 열망을 가진 존귀한 존재임이 나타나게 되고 욥이 이 고난에서 결국 신앙을 잃고 실패하게 되면 하나님은 재물보다 하찮은 존재가 되며 인간은 결국은 물질에 대한 욕망 만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로 낙인이 찍히게 되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욥은 무언가를 얻어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상실에 대한 이야기, 상실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욥기를 통해 배우는 기도의 의미는 무엇을 얻기 위한 방법론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인생의 의미를 위한 몸부림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인생의 부조리함에 무릎꿇지 않고 희망없는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러면서도 의연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버거운 삶의 무거움과 우리의 연약함 사이에서 우리는 저항하고 괴로워하고 탄식하고 다시 일어서며 우리의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그 속에서 다시 하나님을 만납니다.  

오늘 본문 속의 욥의 기도는 욥기에 기록된 욥의 마지막 말이기도 합니다. 앞에서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심지어 자신의 인생을 저주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면서 친구들의 힐난 속에서 수많은 말들을 쏟아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 대답해주시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들어주시고 자신의 질문에 응답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막상 하나님께서 그의 앞에 나타나셨을 때에, 하나님의 전능하심 앞에 서게 되었을 때에 그는 그동안 자신이 했던 말들을 거둬들입니다. 무지한 말이었고 이치를 가리는 말이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무언가를 주장한 것 같으나 사실은 혼란 속에서 주절거린 독백과 같은 것이었고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연약한 인간의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답변을 원하지만 이제 그가 원하는 것은 귀로 듣는 대답이 아닙니다. 인생의 부조리함 자체가 다 해명될 것을 기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대신 그는 하나님을 뵈었다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고 그가 저항하던 일들에 대해 이제는 받아들입니다. 자신의 짧은 지혜로 헤아릴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결국 하나님은 선하시며 그 계획하시는 일들을 이루심으로 그 선하심을 나타내 보이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기로 작정을 합니다. 

이렇게 욥기의 결말은 우리의 예상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욥의 친구들 앞에서 욥의 편을 들어주시지만 욥의 항변은 대부분 대답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습니다. 욥에게 주어진 가장 큰 응답은 하나님의 전능하심,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심이었습니다. 그 앞에서 욥은 자신의 모든 질문을 내려놓고 다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무관심과 침묵으로 받아들이기에 우리의 인생이 너무나 무겁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이 외로운 고난의 길을 갈 때에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욥의 기도를 통해 배우는 것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아도,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때에도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만이 그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어떠한 순간 속에서도 기도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고 하나님의 더 크신 계획 속에 내 인생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림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림절이란 기다림의 절기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눈물과 한숨과 아픔이 그치지 않지만 대림절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시며 우리의 삶의 자리로 찾아오셨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고 또한 다시 이 땅을 찾아오실 것을 믿고 간구하고 기다리게 합니다. 

우리가 12월에 암송하는 말씀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는 욥의 고백과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는 말로만 듣던 그 분을 뵙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연약함과 한계와 고난을 결코 외면하지 않고 우리 가운데 찾아오신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욥의 기도를 생각하며 우리의 기도를 돌아봅니다. 알 수 없는 우리의 인생길 가운데 찾아오셔서 우리가 볼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깨우쳐 주시기를 원하며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전능하시고 선하신 계획 안에 있음을 믿고 의지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주일 설교 영상   ADMIN 2020.04.19 33
공지 매일묵상 안내   ADMIN 2017.03.11 223
160 2020.1.26(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20.01.26 15
159 2020.1.19(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20.01.19 20
158 2020.1.12(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20.01.12 19
157 2020.1.5(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20.01.05 21
156 2019.12.29(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9.12.29 16
155 2019.12.22(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9.12.22 12
154 2019.12.15(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9.12.15 13
» 2019.12.8(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9.12.13 4
152 2019.12.1(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9.12.01 9
151 2019.11.24(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9.11.24 9
150 2019.11.17(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9.11.17 9
149 2019.11.10(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9.11.10 56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Next ›
/ 16
Designed by hikaru10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