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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전도자 바울의 기도 / 빌립보서 1:3-11

우리가 매주일 기도에 대한 말씀들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기도의 본이 되는 인물들을 택해서 그들의 삶과 그들의 기도에 대해 죽 살펴보고 있습니다. 예전에 어느 정치인이 여러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라는 말을 해서 유행이 되었던 적이 있는데 저는 한번 여러분들에게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계속 기도에 대해 묵상하고 있는데 여러분들 기도생활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알면서도 사실 더 기도하게 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상황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고 내 힘으론, 내 생각과 지혜와 능력으로는 도무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그런 일들 가운데로 우리를 몰아가시기도 합니다. 물론 사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셨다기보다는 우리 자신이 어리석고 부족해서, 그리고 이 세상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불확실하고 힘겨운 곳이어서 그러한 일들을 겪게 되는 때가 많습니다.

정신없는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가운데에서 어떻게 어떻게 버티다가 지나고나서 보면 어떻게 헤어나오게 되었는지는 잘 몰라도 그래도 이렇게 또 잘아가고 있구나, 또 어떻게 인생의 한 고비를 넘겼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그저 눈 딱 다물고 이를 악물고 버티기도 하고, 정신없이 여기 저기 도움의 손길을 구하며 각방으로 찾아다니기도 하면서 주여, 주여, 간절히 메달리고 기도하는 가운데 때로는 뜻하지 않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임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의 방법이 우리가 생각한 것과 다르고, 그 모든 일들의 결과가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라도 우리는 또 그렇게 해서 인생의 한 고비를 넘기도 새로운 시작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성장그래프가 그렇듯이 우리의 인생과 신앙의 성장그래프도 일직선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성장해가는 것 같습니다. 평탄할 때에는 그냥 수평선을 그리다가, 아니 약간의 하강선을 그리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서, 고난의 시간들을 통해 성장하여 인생의 다음 단계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고난의 시간들은 우리가 기도를 비축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시간에 쌓아놓은 기도를 평탄할 때에 까먹으면서 살다가 기도가 다 떨어지면 또 하나님이 기도를 비축하도록 우리에게 위기를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합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울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한 사람의 신앙과 인생의 여정, 그리고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대표적인 사람이 다윗이라면 신약성경에서 한 사람의 신앙과 인생의 여정, 그리고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대표적인 사람은 바울일 것입니다.

다윗은 역사서를 통해 그의 행적을 알 수 있고 시가서를 통해 그의 기도와 탄식, 그의 고난과 그의 내면 세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사도행전을 통해 그의 행적을 알 수 있고 서신서들을 통해 기의 기도와 그의 소망, 그의 열정과 격정, 그의 내면의 세계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다윗에 비해서 바울은 좀 인간미가 떨어지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별로 흠을 잡을 데가 없이 완벽한 사람처럼 보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오직 한 길로 달려가는 경건한 사람의 모습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배우고 싶고 존경하게 되지만 별로 곁에 있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람 같은 생각이 들곤 합니다.

사실 바울이 좀 엄격하고 자존심도 강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그런 사람들이 또 대부분 그러하듯이 속정도 깊고 또 겉으로 잘 드러내지는 않지만 많은 고민과 갈등을 안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고린도후서에 보면 바울의 격정과 인간적인 모습들이 많이 드러납니다.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이 직접 인용하고 있는 이야기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편지를 볼 때는 대단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직접 만나보니까 말도 잘 못하고 보잘 것없는 사람이더라는 것이지요. 이런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고린도교회에 있었습니다. 또 바울은 그 말을 듣고 상당히 불편한 마음을 내비칩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주보 표지에는 매우 근엄하고 위엄있고 잘 잘 생긴 바울의 그림을 실어 놓았습니다. 이 그림은 렘브란트의 그림인데 렘브란트는 성경의 인물들 중에서 특히 바울을 좋아해서 바울을 주제로 한 여러편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렘브란트는 자기 자신을 그린 자화상도 많이 남겼는데 어떤 자화상에는 바울풍의 자화상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기도 합니다. 렘브란트는 성경 중에서도 바울의 서신저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렘브란트는 바울을 직접 본적이 없기 때문에 렘브란트가 그린 바울의 그림들은 앞에서 말한대로 바울의 편지만을 읽고 받은 인상대로 그린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서 이렇게 위엄있는 모습으로 그린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말씀드린 고린도후서의 기록을 보면 바울의 실제의 모습은 그렇게 대단해보이지 않았던 것같습니다. 전에도 소개해드린 적이 있지만, 성경에 나오는 기록은 아니지만 상당히 이른 시기에 기록된 “바울과 테클라행전”이라는 책에 보면 바울의 외모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체구​가 작고, 대머리​이고, 다리​가 휘​었고, 몸​이 다​부​지며, 미간​이 아주 좁고, 메부리코였다”고 합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논란을 일이킨 것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특별히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이 된 사람들에게 바울은 일종의 배신자처럼 보이는 사람이었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한 기독교의 가르침을 변질시키고 왜곡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 많은 수고를 하고 넓은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도 교회 안에서도 별로 큰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보기에는 인간관계에 좀 서툰 사람이었고 무엇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 길을 향해 그대로 직진을 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 큰 일을 하고 많은 업적을 남기지만 또 외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보게 되는데 바울도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말년에 순교의 길이 그의 앞에 있는 것을 보면서 디모데후서를 썼는데 그 편지에는 그의 외로움과 또 그러면서 그가 마지막까지 의지하고 사랑했던 그의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 대한 깊은 사랑과 애정이 담겨있습니다.

기독교를 핍박하던 사람에서 누구보다도 극적인 회심을 경험한 후에 평생을 전도자로 살았고 신약성경의 거의 절반을 기록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의 내면에도 갈등과 고민과 아픔이 가득한 격정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인 빌립보서는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 쓴 서신이라서 옥중서신이라고 분류되는 서신들 중의 하나입니다. 바울은 복음전파의 여정 가운데 여러번 감옥에 갇혔습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면 그는 적어도 네 번 정도 감옥에 갇혔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에는 특별히 “기쁨의 서신”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서신습니다. 기쁨 혹은 기뻐하다라는 표현이 열 여섯 번이나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옥중서신”과 “기쁨의 서신”이라는 두 가지 표현은 별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감옥에 갇혀서 편지를 쓴다면 비통함, 슬픔, 절박함 같은 표현들이 더 어울리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감옥에서 그의 기쁨을 말합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물론 바울이 너무나 신앙이 좋은 사람이어서 감옥 생활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늘 하결같은 믿음을 지킨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바울이 감옥에서도 “기쁨의 서신”을 쓸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감옥이 그가 기도하는 장소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보기에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가지고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여행을 다녔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3차에 걸친 선교여행을 보게 되는데 그 출발점이며 종착점은 안디옥교회였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2차 선교여행과 3차선교여행 사이의 기록을 보면 그냥 한 문장으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2차선교여행을 마치고 얼마 쉬지도 않고 바로 또 3차선교여행을 떠난 것입니다.

그런 바울에게 잠깐 멈춰서는 시간, 자신의 삶과 사역을 돌아보는 시간,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섬기며 전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짚은 묵상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 바로 감옥에 갇혔던 시간이었습니다. 바울에게 감옥이란 결코 평안한 곳이 될 수 없었습니다. 당시의 불완전한 사법제도 하에서 바울이 감옥에서 언제 나올 수 있을지, 그가 받게 될 형벌이 무엇인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감옥에 갇히는 것은 형벌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재판을 기다리는 대기장소 정도의 의미였지 형벌로서의 “징역형”이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감옥에 갇혀있는 시간은 아직은 형이 확정이 되지 않았을 때이고 과연 어떻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는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특히 빌립보서를 기록할 때에 지금이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도 불안했을 것이고 그가 평생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결국 그 결과가 이러한 삶의 종말로 찾아오게 되는 것인지 회의가 들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감옥에서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감옥에서의 기도시간은 매우 특별한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기도를 요청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바울은 감옥에서 감옥 밖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감옥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묵상의 장소였고 자기 자신의 사명에 대한 확신을 더하여 주는 곳이었으며 성도들을 위해 축복하고 기도하게 하는 장소였습니다.

옥중서신들인 빌립보서와 에베소서, 골로새서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에 대한 깊은 묵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감옥 안에서 그가 평생을 섬겨오며 지금도 증거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깊이 묵상했고 그가 깨달은 바를 감옥 밖에 있는 성도들에게 전하며 가르치게 된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동역해준 성도들을 위해 축복하면서 기도합니다. 바울에게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있어서 기도의 동역자였습니다. 자신은 최전선에서 복음을 전하지만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바울을 사랑하고 동역하며 후원하고 기도해주었기 때문에 바울은 넓은 곳을 다니며 사역할 수 있었고 또한 이렇게 고난을 당할 때에도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캄보디아에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지난 주일 저녁, 캄보디아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작고하신 세계적인 전도자 빌리 그래함의 아들인 프랭클린 그라함이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서 계속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지난 주일 저녁에 캄보디아 역사에서 처음으로 대형 전도집회가 열려서 2만3천명이 보였고 그날 저녁에 1300명의 회심했다고 합니다. 빌리 그래함이 많은 나라를 다녔는데 캄보디아는 가지 못했고 이번에 캄보디아 역사상 처음으로 그러한 대형 전도집회를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그날 전도집회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프랭클린 그라함 목사님이 매우 온화하고 차분하게 복음을 전하고 통역하는 캄보디아 목사님이 더 열정적으로 통역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설교가 그렇게 길지 않았고 통역을 포함해서 40여분 정도의 설교였습니다. 저는 그래서 좀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저 설교를 듣고 1300명이 회심을 했을까? 뭔가 눈물을 쏙 빼게 하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예화로 든 것도 아니고 복음의 내용을 진솔하고 담담하게 전한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회심을 했다는 것이 금방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곧 두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는 그만큼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의 진심이 담겨있다는 것이고 또 한가지 더 중요한 것은 이날 하루의 집회를 위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협력하고 동역하며 기도했기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캄보디아에서도 여러 교회들이 연합하여 기도하면서 이날의 집회를 준비했고 미국과 전세계에서도 캄보디아에 복음이 전파되기를 위하여 중보하며 이날의 집회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설교하고 있는 사람은 프랭클인 그라함 한 사람이지만 수많은 성도들의 기도의 동역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도 자신이 많은 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의 기도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감사하며 그들을 축복하며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며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도 해마다 선교약정을 하면서 후원할 선교사님과 선교단체들을 작정하고 매월 후원을 합니다. 우리가 후원하기로 결정하고 표시를 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매월 재정의 후원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도의 후원을 약정하는 것입니다. 기도없이 물질만 가서는 그 물질이 능력이 될 수 없습니다. 얼마를 후원하든지 기도하면서 동역하는 마음으로 후원을 할 때에 그 물질이 하나님의 능력이 되어서 복음 증거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분들을 위해 후원하고 기도하는 것뿐아니라 우리들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의 인생에는 여러 가지 과제가 있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 증거의 사명이 있습니다. 이 사명을 위해서 기도하고 이 사명을 위해서 협력하고 이 사명을 위해서 헌신할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더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하면서 왜 하나님이 내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지, 과연 하나님이 살아서 역사하시는지 확신이 들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언제 가장 큰 응답을 받을 수 있는가? 언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가장 분명하게 경험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고자 할 때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해외선교팀을 보내고 또 농촌선교팀도 보냅니다. 내년 초에 농촌선교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런 선교사역을 할 때에 그 곳에서 보내는 몇 일간의 시간도 중요하지만 미리 모여서 준비하면서 함께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또한 모든 성도들이 그 사역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구할 때, 그렇게 기도로 함께 동역할 때에 하나님의 큰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바울의 서신들은 다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서 기록된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기록을 이해하기 위해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은혜를 그대로 체험하기 위해서는 우리들도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고자 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방해하는 사탄의 세력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고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사탄의 능력보다 크셔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에게 능력을 주신다는 것도 알수가 있고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각자의 삶에 다양한 과제들이 있고 사명들이 있지만 우리 모두는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기도를 드리고 간구를 하지만 하나님이 더욱 기뻐하시는 기도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도 확신할 수 있으며 우리의 삶의 다른 과제들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게 됩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서도 기쁨의 서신을 쓸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투다가 감옥에 갇혔다면 그 곳에서 억울해하고 자기의 신세한탄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죄를 짓고 감옥에 갇힌 것이라며 그곳에서 그가 기뻐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곳에서 죄를 누우치고 죄의 대가를 고통스럽게 치러야 합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삶을 살다가 감옥에 갇혔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감옥 안에서 자신이 받은 은혜를 생각하며 오히려 감옥 안에서 감옥 밖에 있는 성도들을 축복하며 은혜를 전하는 편지를 쓰게 된 것입니다.

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복음을 전하는 삶은 다양합니다. 가까운 이웃들, 가족 친지들에게 전도할 수도 있고 멀리 있는 해외의 다른 나라, 다른 민족들에게 전도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직접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냥 그렇게 머물러있지만 말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 단체들을 후원하고 기도하며 동역함으로 복음증거의 사명을 감당할 수도 있습니다. 해외선교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왜 꼭 해외에까지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느냐고 묻는 분들도 있지만 그게 더 쉽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에서 매월 동네에 전도지를 돌리지만 별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가까운 곳이라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가장 어려운 것이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내가 아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든지 어떤 방법으로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고 또 그 사명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역사하시며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것을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은혜가 모든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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