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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1 / 마태복음 6:9-15

오늘은 대림절 넷째 주일입니다. 대림절은 2000년 전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또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맘때가 되면 좀 시간이 더디 갔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을 합니다. 크리스마스가 좀 천천히 왔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산타 클로스 할아버지는 저를 잊으신지 오래되었지만 저는 아직도 어린아이같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고 삽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멀 때에는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빨리 지나가버리는 것이 싫어서 시간이 천천히 흘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누가 제게 왜 예수를 믿느냐고 질문한다면 크리스마스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세상이 이것보다 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을까요? 하늘에 별이 반짝이고 하늘에서 천사들이 아름다운 노래를 부릅니다. 그리고 하늘의 신비한 빛이 땅에 비췹니다. 그 빛이 비취는 곳에는 한 아기가 구유에 누워있고 그 곁에 목자들과 동방박사들이 이 아기에게 경배합니다. 이들과 함께 이 세상에서 상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던 사람들이 그 아기를 보며 위로와 평화를 느끼고 기쁨을 느낍니다. 사람들뿐 아니라 동물들까지도 같이 그 구유를 둘러싸고 그 아기를 보며 그 평화를 함께 느낍니다. 그 고요하고 거룩한 밤, 그 신비하고 아름다운 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선물로 준 것만 가지고도 저는 기독교라는 종교가 이 세상에 엄청난 기여를 한 것이고, 그 이야기 하나만을 가지고도 평생을 예수를 믿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따뜻한 이야기, 이 세상 가운데, 우리의 삶속에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은혜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입니다. 

성탄절이 지나가는 것이 아까운 이유 중에 하나는 성탄 찬송들이 너무 좋은 곡들이 많은데 다른 찬송하고 달리 이 찬송들은 꼭 이 시즌에만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마음 같아서는 예배시간에 성탄 찬송을 한 열곡 쯤 부르고 싶은데 그러면 예배가 제대로 진행이 안되겠지요. 성탄 찬송들은 가사와 곡조가 아름다운 것도 있지만 또한 기독교의 복음의 내용의 진수가 그 안에 다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 그렇게 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 것, 그래서 이 날을 기억하고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그 찬송들이 우리에게 끝임없이 기억하게 해줍니다.  

또한 예수님의 탄생과 성탄의 찬송들이 증거하는 그 의미 속에서 우리는 기도가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매우 소중한 교훈을 얻을 수 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계속해서 기도에 대해서 생각하고 묵상해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 주와 다음 주는 주기도문을 가지고 그동안 기도의 사람들의 기도를 통해서 배워온 것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근본적으로 기도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로 기도에 대해서 정의를 할 수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기도는 소망의 언어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 우리가 바라는 세계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소망하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이루어지는 것에 늘 초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 낙심하고 그러면서 기도를 경험해갑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 그리고 우리가 기도의 능력으로 살아갔던 사람들의 삶을 통해 배우는 것은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루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바라는가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모든 기도의 가장 큰 문제가 있고 오해가 있고 도전이 있습니다. 가장 단순하게 말해서 여러분들도 미리 짐작하시겠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이 기도라면, 내가 바라지도 않는 것을 어떻게 내가 구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등장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은 사실 우리에게 전혀 기도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지요. 그건 그냥 하나님 뜻대로 하나님이 하시면 되는 것이고 우리의 인생에 힘들고 어려운 것은 우리가 바라는 바들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 아닙니까? 

교회에서 한편으로는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고,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라고 하면 이거 뭘 어떻게 하라는지 알 수가 없게 됩니다. 이게 박자가 잘못 맞게 되면 기도 안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신다고 하고, 그래서 기도하는데도 안 이루어지면 간절하게 기도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고 그래서 간절히 기도했는데도 안 이루어지면 그때에 가서야 그건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해버리면,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으면 기대도 않했을텐데 괜히 바람만 넣고 마는 것이 아닌가, 그냥 기도해봤자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여러 가지 핑계를 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여기서 우리가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정말로 무엇이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드는가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삶에 가장 결핍된 것은 무엇인가? 왜 이 세상은 이렇게 어지러우며 그 속에서 왜 우리의 인생은 이렇게 피곤하고 우리의 마음은 이렇게 자주 상처받으며 살아가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기를 원하고 그 결과로 우리의 삶이 더 나아지고 더 평안해지고 더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 기도가 하늘로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고 비유를 해드린 적이 있는데 우리가 하늘을 향해 기도의 화살을 쏜다면, 뭔가 정조준된, 그래서 과녁의 정 중앙을 맞히는, 그래서 10점 만점의 기도, 하늘이 울리고 하나님의 보좌가 움직이는 그런 더 의미있고 능력이 있는 그런 기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덮어놓고 내가 믿는 것은 다 이루어진다고 우기는 것이 신앙입니까? 인간의 온갖 욕망의 허상들을 바라보면서 그것들을 이루어 얻기 위해 끊임없이 믿습니다라고 주문을 외워대는 것입니까?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기독교라는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이 세상의 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결방법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에도 말씀을 드린 적이 있는데 요즘 의사선생님들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라고 합니다. 복음서를 기록한 의원 “누가”가 아니라 병원에 오는 사람들이 의사 말은 안듣고 다 “누가 그러던데요, 누가 그러던데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병이 있어서 병원의 문을 두드릴 때에는 우리의 병에 대한 진단과 처방에 대해 의사의 말을 따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병이 고침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 자기 스스로 의사가 되어서, 아니면 근거도 없는 말들을 믿고 그대로 처방해달라고 의사에게 요구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교회에서 이와 같은 일들을 하곤 합니다. 기독교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성경이 이 세상과 내 자신에 대해 진단하는 것과 처방하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내가 스스로 진단하고 처방한 것을 이루기 위해 오는 곳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의 진단과 처방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이 이미 잘 아시는데로 성경은 이 세상의 모든 문제가 인간의 죄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인간의 죄로부터 구원을 받고 행복에 이르는 길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은혜를 의지하며 그분의 말씀대로 따라 살아가는 것임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오늘 본문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주기도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모범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너무나 답답하셔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주기도문을 자주 암송합니다. 그런데 주기도문에서 “기도”가 빠지면 주문이 됩니다. 그렇게 외우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주기도문이 진정한 기도이며 우리의 기도의 모범이고 기준이 되도록 그 의미를 새겨보면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기도회를 마치고 우리가 주기도문을 외우는 이유는, 우리의 불완전한 기도를 주기도문으로 보완한다는 의미를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과 다음 주에 주기도문의 내용을 크게 정리를 보겠지만 일단 큰 틀에서 보면 주기도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첫 번째 기도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기도이고 두 번째 기도는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 안에 우리의 신앙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로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것이 첫 번째 기도라면 두 번째 기도는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고 거룩해져서 이 세상의 모든 악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나라의 은혜와 기쁨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의 시작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부르는 것입니다. 앞에서 기도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을 바라는가라고 말씀드렸지만 그 이전에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 우리가 누구에게 기도하는 가입니다. 우리는 사실 모든 것이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초점이 가있으면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기도해야 하는지는 부차적인 문제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주기도문의 시작은 내가 누구에게 기도하는지를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 기도합니다. 

하늘에 계시다는 것은 우리의 세계를 초월해 계신, 전능하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아버지라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존재의 근원이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같이 있어야 우리는 그 분에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하늘에 전능하신 분이 계셔도 그 분이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으면 그분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 있어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능력이 없다면 우리의 기도는 이루어지지 못할 것입니다. 기도를 시작할 때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에게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도할 수 있고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자주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분에게 기도한다면 먼저 우리는 하늘에 있는 것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습니다. 이 땅에 속한 것은 이 땅의 권세를 가진 자들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가 하늘에 있는 것을 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진정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역을 시작하실 때에 사탄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그때 사탄이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말합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여러분, 예수님이 이때 사탄의 유혹을 거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네가 무슨 그런 능력이 있다고 사기를 치느냐 생각하셔서 그러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사탄은 예수님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줄 수 있는 능력은 사탄에게도 있습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사탄에게 절을 해서 그 능력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 사탄의 방법을 따라서 이 세상에서 큰 권력을 얻었고 큰 영화를 누리고 살았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얻고자 한다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습니다. 아니 그 길이 더 빠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할 때에 늘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우리에게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살기에 힘든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너무나 이 세상 속에 속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살기가 힘든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지 못하고, 하늘에 속한 것을 구하지 못하고, 이 세상이 전부인양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근심이 있고 염려가 있고 불안이 있고 고통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주기도문의 시작은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아야 하고, 하늘에 우리의 아버지가 계시며 그분이 하늘의 창고의 문을 여시고 우리를 위한 놀라운 하늘의 선물을 예비하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구하는 것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것,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도하러 나선 우리의 기대가 처음부터 깨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내 이름을 높이고 내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려는데 예수님은 먼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기를, 그리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무슨 하나님과 우리가 자존심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더 높은가 보자 하고 되지도 않는 대결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첫시간에 기도에 대해 말씀드릴 때에 사람들이 기도가 무슨 줄다리기쯤 되는 것처럼 생각해서 어떻게든지 떼를 써서 내가 원하는 쪽으로 그 줄을 당겨야 이기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라면 하나님이 이기는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좋은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줄다리기를 해서 우리가 이기면 우리의 인생은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과 우리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사랑으로 맺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구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우리 인생을 위한 가장 좋은 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려는 것은 정신 차리고 똑바로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행하고 답답하며 이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인 것은 이 세상이 하나님을 더 이상 거룩한 분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이 세상이 멀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원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그래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서 먼저 우리가 예수님의 거룩한 구원의 사역의 동역자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고, 이 땅의 아픔을 알고, 이 땅의 근본적인 문제를 보고 그것이 고쳐지고 치유가 될 때에 그 속에서 우리들의 인생의 문제들도 해결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세상, 하나님의 자리를 인간들이 차지하고 있는 세상, 옳고 그름의 기준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욕망의 한계를 제한하지 않으며 언제든지 악이 선으로 둔갑할 수 있는 그런 세상 속에서 우리가 가앙 먼저 드려야할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탓하기 전에 나도 먼저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믿음의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뭔가 제대로 된 기도가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밤에 천사가 나타나서 목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시작이 된 것, 그것이 온 세상 모든 만민들에게 가장 좋은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때에, 하나님의 뜻이 이 땅가운데 이루어지는 그런 세상이 될 때에 우리 인생과 이 세상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이고 우리가 진정한 은혜와 행복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사역을 시작하실 때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탄절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해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부르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기념하고 기뻐하는 날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의 소망이 되고 우리의 기도가 될 때에 우리의 인생이 변화하고 이 세상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가 모든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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