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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 사무엘상 18:1-5

오늘은 인생의 7가지 과제 중 두 번째로 친구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꼭 공자님 말씀이 아니더라도 좋은 친구가 있어서 서로 신뢰하고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인생의 여정을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이며 인생의 큰 즐거움입니다. 가족관계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지만 친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친구는 친밀한 관계지만 가족관계처럼 서로 여러 가지 감정으로 깊이 얽혀서 서로 간섭하고 섭섭해할 일도 별로 없고 어느 정도 성숙한 사람들이라면 서로 간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도 쉽습니다. 

하지만 순수한 친구 관계를 맺는 것은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닙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도 친구가 아니고 이해관계로 연결된 사람들도 친구가 아니고 이성간의 애정으로 맺어진 관계도 친구가 아닙니다. 친구는 오직 순수한 서로간의 선의와 우정으로 맺어진 관계이기에 좋은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우리의 인격의 중요한 척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는 것일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친구라는 주제를 가지고 다윗의 삶을 파헤쳐보려고 합니다. 다윗에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친구가 있었을까요? 서로 신뢰하며 일상의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어려울 때에 위로가 되고 함께 기쁨의 시간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같이 기뻐하며 나눌 수 있는 그런 친구말입니다. 아마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요나단일 것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중국에서는 지음(知音)이라는 고사로 잘 알려진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의 관계, 우리나라라면 오성과 한음과 같이 성경에서 우정을 대표하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과 요나단이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되었고 그들의 우정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다윗과 요나단이 처음 만난 것은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렸던 바로 그 날입니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당시 사울 왕의 아들이었던 요나단도 대단한 용사였습니다. 부관 한명만을 데리고 적진을 누비며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가져오게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 요나단도 골리앗 앞에서는 칼 한번 뽑지 못하고 숨을 죽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목동 하나가 나타나더니 돌팔매로 그 장대한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입니다. 다윗으로 인해 용기백배한 이스라엘 군대는 블레셋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두었고 이날 요나단은 다윗과 평생의 친구가 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물론 당시에 다윗은 온 이스라엘에서 인기가 높았기 때문에 요나단이 다윗과 친구가 되기를 원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생각해보면 그만큼 요나단이 통이 크고 대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중에 사울이 그랬듯이 한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칭송을 받는 용사였던 요나단으로서는 사람들의 관심이 다윗에게 쏠리는 것에 대해 질투심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좀 더 소심한 인물이었다면 안 그런척하면서 그 후로 뒤에서 다윗에 대해 견제하고 사사건건 시비를 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일들은 우리 주위에서도 흔하게 일어나는 일 아닙니까? 

그러나 요나단은 이스라엘의 승리 그 자체를 기뻐할 줄 알았고 용사로서 용사를 알아보고 인정할 줄 아는 배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다윗을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다윗과 요나단이 친구가 된 것은 일종의 운명의 장난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이미 사무엘 선지자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아 앞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으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다윗 때문에 요나단은 사울을 이어서 왕이 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요나단이 그것을 모르고 다윗와 우정을 나눈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시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요나단도 결국은 다윗이 왕이 될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단은 아버지인 사울 왕과는 달리 다윗과의 우정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다윗을 아껴주었고 다윗이 그의 아버지 사울 때문에 위기에 쳐했을 때에도 오히려 다윗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요나단은 자신보다 무용이 뛰어나고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을 합당하게 여겼고 마치 앞으로 찾아올 그의 비극적인 최후를 예감이나 하고 있는 양 사울 왕을 피해 도망을 가는 다윗에게 훗날 자신의 자손들을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보면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요나단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다윗이라는 사람이 그만큼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갈등과 적의로 이어질 수 있었던 관계를 순수한 우정의 관계로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요나단의 신앙과 인격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다윗도 요나단과의 우정을 소중하게 여겼고 그에게 신의를 지켰습니다. 요나단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 다윗은 조가를 지어 그 슬픔을 표현했습니다. 그 노래에서 그는 이렇게 요나단과의 관계를 표현합니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에 요나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여 이 전란 중에 살아남은 요나단의 자손을 찾도록 했고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을 찾아 왕궁에 들이고 사울왕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주고 왕의 식탁에서 함께 먹는 특권을 주었습니다. 부정적으로 보자면 다윗의 입장에서 전 왕조의 자손이라는 것은 그의 왕위에 잠재적인 위험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다윗은 요나단과의 신의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게다가 다윗에게,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므비보셋에게도 다행스럽게도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잘 걷지 못하는 장애가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전란 중에 급히 피난을 가는데 유모가 므비보셋을 안고 가다가 떨어뜨려서 다리를 다친 장애인이었기 때문에 다윗으로서는 므비보셋이 자신에게 큰 위협이 될 인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에 므비보셋이 장애가 없고 훤칠한 인물에 백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용맹스러운 장수였다면 어땠을까요? 그래도 다윗은 요나단과의 신의를 지키고자 했겠지만 그렇게 사심이 없는 호의를 베풀기는 쉽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좋은 이야기인데 성경이 들려주는 그 다음 이야기는 조금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습니다. 후에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서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나게 되었을 때에 므비보셋은 다윗을 따라가지 않고 그냥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을 의아하게 여겼던 다윗에게 므비보셋의 시종이었던 시바라는 사람이 와서 두 사람을 이간질합니다. 시바는 피난가는 다윗의 일행을 위해 먹을 것을 가득 실은 나귀를 두 마리 가져오고는 므비보셋이 어디 있는지를 묻는 다윗에게 므비보셋이 “이제 내 아버지의 나라가 내게 돌아올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고합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준 모든 재산을 시바에게 주었습니다. 

후에 다윗이 승리를 거두고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므비보셋을 만났을 때에 므비보셋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도 다윗을 따라가려고 했는데 자기 종인 시바가 거동이 불편한 자신을 버리고 자기 혼자 다윗에게 가서 자신을 모함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당시에 므비보셋이 다윗이 다시 오는날 까지 다윗의 안위를 염려하며 수염도 깍지 않고 옷도 빨아입지 않고 있었다고 전하면서 므비보셋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석연치 않은 결정을 내립니다. 시바에게 므비보셋의 재산을 주어버린 자신의 잘못된 결정을 다시 돌이키는 것이 왕의 체면에 손상을 준다고 생각했는지 므비보셋과 시바가 재산을 같이 나눠가지라고 명령을 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한편으로 다윗이 요나단과의 신의를 지켜서 요나단의 아들을 선대하기는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동안 다윗이 므비보셋을 매우 껄끄러운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윗에게 죽은 요나단과의 신의만큼 중요한 것은 자신의 왕권의 안정이었고 또한 그것은 물론 나라의 안정과도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가지고 있는 불신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다른 면으로 보자면 다윗이라는 사람은 그렇게 순수하게 우정과 신의만을 생각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고려를 늘 염두에 두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생각해보면 좀 아쉬운 감이 있지만 그래도 다윗에게 요나단은 자신을 신뢰해주고 마음의 큰 의지가 되었던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과 요나단이 친구로서 서로 우정을 나누며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다윗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사울왕의 시기와 질투는 더 커져갔고 결국 다윗은 요나단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다윗이 오랜 도망자의 세월을 마치고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요나단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후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윗에게 요나단 외에 다른 친구는 없었을까요? 소위 죽마고우라고 할 만한 사람들, 어린 시절 그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같이 우정을 나누고 왕이 된 후에도 다윗의 신뢰를 얻으며 평생을 다윗과 함께 한 그런 친구는 없었을까요? 애석하게도 성경은 그런 사람들에 대해 전혀 전해주는 바가 없습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다윗의 형제들도 왕이 된 이후에 다윗과 어떤 관계였는지 전혀 기록이 없을 뿐아니라 분명히 다윗에게도 친한 친구가 있고 권력을 얻은 후에도 신뢰할 만한 그런 평생을 함께했을 사람들이 있을 법도 한데 성경은 다윗과 그런 친구와의 관계에 대해 어떤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습니다.  

물론 왕이 된 후에 다윗에게 가장 힘이 되었던 사람들로서 성경은 다윗의 용사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명단을 보여줍니다. 성경에는 모두 37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윗을 신뢰하고 다윗과 함께 이스라엘을 세운 대단한 무용을 지닌 용사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다윗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을 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사울에게 다윗이 박해를 받을 때에 사울의 폭정으로 괴로움을 당하던 사람들이 다윗의 곁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 숫자가 모두 600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 사람들 중에는 이전부터 다윗을 잘 알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다윗의 친구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이 당시에 아무런 힘도 없이 도망자 신세였던 다윗을 찾아와 다윗에게 그들의 운명을 의탁하고 함께 동고동락했다는 것은 그만큼 다윗이 그들의 신뢰를 받을 만한 인격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또한 다윗이 그만큼 인간관계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이 위대한 왕으로 한 시대의 영웅이 된 이면에는 이들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윗을 위해 목숨을 마칠만큼 충성된 사람들이었지만 그러나 다윗은 이들의 충성에 큰 상처를 안기는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 사건이 바로 우리가 잘아는 다윗과 밧세바의 간음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부정을 저지른 대상인 밧세바는 바로 앞에서 말한 다윗의 37명의 용사들 중의 하나인 우리아의 아내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사건과 관련하여 다윗의 인생에서 가장 큰 치부를 드러내고 우리를 매우 실망시키는 참으로 끔찍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자신의 침실로 데려올 때에 밧세바가 자신을 위해 충성을 바치는 용사인 우리아의 아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우리아는 다윗의 명령으로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밧세바를 데려오게 해서 부정한 일을 저지릅니다. 그리고 밧세바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되자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기 위해서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불러옵니다. 그래서 그의 아내와 같이 밤을 보내게 하려고 했지만 이 순수한 충정과 의리의 사나이인 우리아는 자신의 동료들이 전장에서 고생하는데 자신만 편안하게 집에서 잘 수가 없다며 왕의 호의를 거부하고 왕궁 문에서 근위병들과 함께 밤을 보냅니다. 자신의 계략이 수포로 돌아가자 다윗은 더 악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는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는 우리아에게 당시 전쟁을 이끌고 있던 총사령관인 요압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하게 합니다. 그 편지에는 적군을 공격할 때에 우리아를 맨 앞에 서게 하고 다른 군사들은 뒤로 물러나게 해서 우리아를 죽게 하라는 참으로 비열한 계획이 담겨 있었습니다. 게다가 자기를 죽게 하라는 편지를 우리아에게 들고 가게 하는 최소한의 양심도 저버린 처사를 행한 것입니다.

결국 우리아는 전쟁터에서 죽었고 다윗은 밧세바를 데려와서 자신의 왕비로 삼았습니다. 물론 이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은 요압밖에 없었지만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우연의 일치와 같은 일을 보면서 다윗의 용사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자신들은 다윗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데 다윗은 죽은 자신들의 동료의 아내를 차지했다는 것을 그들이 그저 순전한 우연의 일치로 받아들였을까요?

그들은 몰랐을 수도 있지만 다윗은 다 알고 행한 것입니다. 자신의 충성스러운 부하를 죽음의 자리에 내몰면서까지 자신의 잘못된 욕망을 채우며 자신의 위신을 지키는데 급급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앞에서 요나단과 므비보셋의 경우에서도 보는 바와 같이 다윗은 참으로 매력적인 사람이고 사람들의 우정과 충성을 이끌어낼 만한 사람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그들과의 신의를 지키는 데 있어서는 늘 자기 자신의 위신과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어두운 그림자를 지닌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다윗이 가장 신뢰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또 그 누구보다도 다윗의 가려진 속마음을 다 알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앞에서 말씀드린 요압입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지만 요압은 다윗의 누이인 스루야의 아들, 즉 다윗의 조카였습니다. 다윗이 자신의 조카인 요압을 가장 중요한 요직인 군사령관에 임명했다는 것은 다윗의 전적인 신뢰를 받을 만한 사람이 그의 인척외에 별로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사울왕도 그의 사촌인 아브넬을 군사령관으로 임명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특이한 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다윗과 사울이 그런 면에서 유사성이 있다는 것이 다윗의 명성에 비하면 좋은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저는 비록 다윗의 조카이기는 하지만 어떤 면에서 요압도 다윗의 친구 중의 하나이며 그것도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요나단과는 참으로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었지만 다윗의 일생에서 요나단과 함께 했던 시간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일생에서 요압처럼 다윗을 잘 알고 또 다윗의 전적인 신뢰를 받았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우리아의 사건에서 보듯이 다윗은 남들에게는 가리고 있었던 자신의 치졸하고 불의한 모습을 오직 요압에만 보여주었습니다. 요압은 그런 다윗의 모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다윗의 이중성과 속마음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일종의 다윗의 해결사를 자처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요압을 통해 지저분한 일들을 처리하고 자신의 이미지는 늘 정의롭고 신실한 사람으로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사울의 군대장관이었던 아브넬이 다윗에게 투항을 하고자 찾아왔을 때에 아브넬을 죽여서 뒷날의 후환을 없앤 것도 요압이었고 우리아를 죽게 하여 다윗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가려준 것도 요압이었고 반란을 일으킨 자신의 아들 압살롬을 다윗이 차마 어쩌지 못할 때에 압살롬을 죽인 것도 요압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압은 한편으로는 다윗에게 충성을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매우 간교하게 자신의 이익을 도모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요압은 다윗을 위하고 나라의 앞날을 걱정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자신의 경쟁자나 정적이 될 만한 사람들을 죽이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이런 요압을 다윗이 가까이하고 자신의 속내까지도 내어보였다는 것은 어쩌면 다윗과 요압이 서로 닮은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다윗에게 요압은 서로가 서로의 생각을 다 들여다보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고 그러면서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너무 잘 알아서 불신하고 경계하는 그런 사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요압의 눈에 다윗은 어떻게 보였을까요? 적어도 남들이 보듯이 그렇게 의롭고 신실하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요압에게 다윗은 서로 신의를 나누는 이상적인 관계가 아니라 자신이 누리는 모든 권세와 영화의 현실적인 배경이며 원천이었습니다. 그래서 결코 멀리 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세월이 흐를수록 평생 2인자로서 다윗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살아온 것에 대한 불만도 커져 갔을 것입니다. 

다윗의 말년에 다윗의 후계 자리를 놓고 갈등이 일어납니다. 다윗은 밧세바의 아들인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려 했지만 다윗의 다른 아들인 아들인 아도니야가 먼저 선수를 쳐서 반란을 일으키고 스스로 왕으로 선포했습니다. 이때 요압은 다윗이 지지한 솔로몬의 편이 아니라 다윗에게 반기를 든 아도니야의 편에 가담합니다. 어쩌면 우리아를 죽게 한 장본인으로서 도저히 양심상 밧세바의 아들인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는 것을 지지할 수 없었을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우리아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는 자신을 솔로몬이 왕이 된 후에 그의 어머니 밧세바가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을 염려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왕이 되면 결국 평생을 다윗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만 자신이 아도니아를 지지해서 아도니아가 왕이 되면 이제는 왕을 자기 손아귀에 놓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찌되었든지 간에 요압은 다윗의 말년에 다윗을 배신하였고 다윗은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겨서 그동안의 요압의 악행을 알려주며 요압을 처형하라고 합니다. 결국 다윗의 어두운 그림자의 역할을 맡았던 요압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보낸 브나야라는 장수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보면 다윗은 친구관계에 있어서도 그렇게 후한 점수를 받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윗이 매력있는 사람이고 영웅이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만한 사람이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유명한 요나단과의 관계도 사실은 다윗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요나단의 통큰 결단과 선도적인 우정에 의해 다윗이 일방적으로 은혜를 입은 관계였습니다. 또한 다윗은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장수의 뒤통수를 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간교한 요압과 짝이 되어 그를 이용하고 또 이용당하다가 결국은 요압을 죽여버리게 합니다. 다윗은 인간관계에서 큰 복을 받고 많은 인기를 누린 사람이기도 하지만 헛된 욕망에 빠져서 신의를 저버리기도 하고 겉으로 보여지는 자기 자신의 위신을 중시하며 의심과 두려움에 싸여서 살았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시편에는 다윗에게 사실 인간관계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고백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시편 35편에서는 “내가 나의 친구와 형제에게 행함 같이 그들에게 행하였으며 내가 몸을 굽히고 슬퍼하기를 어머니를 곡함 같이 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넘어지매 그들이 기뻐하여 서로 모임이여 불량배가 내가 알지 못하는 중에 모여서 나를 치며 찢기를 마지아니하도다”라고 말합니다. 시편 38편에서는 “내가 사랑하는 자와 내 친구들이 내 상처를 멀리하고 내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라고 말합니다. 41편에서는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라고 말하고 시편 55편에서는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그는 곧 너로다 나의 동료,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고백 속에는 배신의 상처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반당하고 자신이 선대했던 사람들에게 받았던 상처가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다윗이 언제 그런 배신의 고통을 당했는지는 잘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오랫동안 도망자의 신세로 살아가면서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어려움을 당했을 것을 짐작하게 하는 이야기들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윗이 어려서부터 겪었던 일들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다윗은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지난 주에도 보았지만 형제들과의 관계도 그렇게 도탑지 않았고 가장 좋은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요나단과의 관계는 요나단의 죽음으로 비극적으로 끝났고 그나마 의지하던 요압은 간교한 인물이었고 언제 자신을 배신할지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하기야 목동에서 왕이 되었으니 죽마고우라고 할만한 친구들도 곁에 없었을 것이고 왕으로서 백성들의 인기를 얻고 칭송을 받았지만 그러나 왕으로서 외롭고 고독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다윗에게 유일한 친구, 진정한 벗이 되어주신 분은 하나님이었습니다. 다윗이 많은 글을 남겼는데 그가 남긴 글은 어떤 친구나 연인을 위해 쓴 글이 아니라 대부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쓰인 글들입니다. 다윗은 누구보다도 많은 찬송시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들은 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이며 감사와 찬양의 노래이지만 또한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토로하는 이야기들이기도 합니다. 

다윗의 시편은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였는지를 보여줍니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다윗의 시편에는 그의 개인적인 감정들이 매우 적나라하게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다윗의 시편은 매우 놀라운 글입니다. 오늘날 신앙의 문제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무엇을 믿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입니다. 한 가족들 간에서 서로 신앙이 다른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고대로부터 대부분의 시대와 나라들에서 종교라는 것은 전통과 권위와 사회제도와 국가의례와 연결이 되어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개인적인 감정을 하나님 앞에 토로하며 친밀한 관계를 느끼며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그런데 지금부터 무려 3000년 전에 쓰여진, 그것도 왕이었던 사람이 쓴 종교적인 글인 시편은 매우 개인적이고 감정적이고 역동적인 것을 보게 됩니다. 다윗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원수를 저주하고 자신의 상처와 아픔과 고통을 토로하다가 또 불연듯 하나님 앞에서 받은 위로를 노래합니다. 다윗의 시편들은 다윗의 신앙이 형식적이고 제도적, 의례적인 신앙이 아니라 개인적이고, 감정적이고, 인격적이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다윗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은 요나단처럼 먼저 다윗을 찾아와 다윗을 인정해주고 사랑해주셨지만 그러나 요나단처럼 자신의 곁을 떠나지도 않았고 요압처럼 남들이 알지 못하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셨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불의를 지지하고 악한 길을 갈 때에 모른척하는 분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개인적인 친구였고 목자였고 스승이었고 인도자였습니다. 시편 18편에 있는 다윗의 고백을 인용하자면 하나님은 다윗의 반석이시며 요새시며 방패시고 피할 바위셨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다윗의 인생의 가장 큰 소망은 시편 23편의 고백처럼 여호와의 집에 영원토록 거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영원토록 계속 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의 인간관계에는 많은 실수와 허물이 있었지만 그러나 다윗의 인생은 찬양으로 시작해서 찬양으로 끝나는 인생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나는 인생이었습니다. 다윗뿐만이 아닙니다. 성경은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벗이었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친구가 자신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바로 예수님의 친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전에는 아이들 사이에서 왕따라는 말이 유행하더니 요즘은 인싸, 아싸라는 말이 유행합니다. 인싸는 인싸이더(insider) 그러니까 친구들의 관계를 주도하는 영향력있는 아이들이고 아싸는 아웃싸이더(outsider), 그러니까 그런 관계에 끼지 못하는 아이들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다 큰 성인들도 누군가를 친구로 끼워주고 또 배제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힘과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비열한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어쩌면 교회에서 우리가 시험에 드는 원인 중에 하나도 그런 일들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연 이 세상에 진정으로 순수한 인간관계가 있겠는가 의심합니다. 결국 인간은 모두 계산적이고 결코 손해를 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우리는 또 한편으로 그래도 누군가는 늘 내편이 되어주기를, 내가 별로 보탬이 되지 못하는 사람일때에도, 내가 별로 매력이 없고 내 성격이 까칠하고 내가 관계에 서툴고 내가 별로 미덥지 못하고 내가 이기적이고 내가 별로 먼저 다가가지 못하더라도 내게 다가와주고 나를 이해해주고 아무런 조건이 없이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을 좋아해주는 그런 사람을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우리에게 그런 친구가 있습니다. 우리가 서툰 입술로 기도할 때에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내가 어디 답답해서 호소할 때가 없을 때에도 내 곁에 계시고 나의 은밀한 비밀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나의 과거를 다 이해해주시고 나의 열등감과 상처를 이용하지 않고 감싸시고 위로하시는 친구가 있습니다. 다윗은 그런 친구를 만났고 우리에게 그의 시와 노래로 그런 친구를 소개해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요나단이 아니라, 요압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우리도 다윗이 가졌던 친밀함을 하나님과 누리는 그 축복을 함께 받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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