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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 사무엘하 3:12-16

오늘은 다윗의 사랑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인생의 7가지 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모든 과제들이 평생 동일한 무게를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평생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지만 가족의 경우에는 어렸을 때에는 그 중요성은 잘 느끼지 못하다가 나이가 들수록 더 소중함을 느끼게 됩니다. 반대로 사랑이란 젊었을 때에는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느끼지만 나이가 들수록, 우리가 흔히 이제는 사랑이 아니라 정 때문에 산다고 말하곤 하듯이 뭔가 부담스러운, 혹은 점점 낯설게 되는 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우리가 애정이라고 말하는 남녀간의 사랑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족간의 사랑, 남녀간의 사랑, 이웃사랑, 나라사랑, 그리고 나아가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사랑을 사랑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포괄해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사랑이든지 그 사랑이 가진 깊이가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모든 사랑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사랑으로 수렴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사랑이라는 주제로 다윗의 삶을 이야기하고자 할 때 한 번쯤 지적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로 다윗과 관련된 구절들을 검색해보면 단 한 번도 다윗이 사랑의 주체로 표현된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원수가 되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사울도 다윗을 사랑했고 다윗의 가장 좋은 친구였단 요나단도 다윗을 사랑했고 사울의 딸 미갈도 다윗을 사랑했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을 사랑했고 심지어 이웃나라인 두로의 왕 히람도 다윗을 사랑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연인지 사실인지 그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을 받은 다윗이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록이 없다고 해서 다윗이 사랑을 몰랐다거나 사랑을 하지 않았다고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일단 그의 주위에 많은 여성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다윗의 사랑이야기는 사울의 딸들과의 관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기 시작하면서 어떻게 든 다윗을 올무로 엮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블레셋과 용감하게 싸우면 자기의 맏딸 메랍을 아내로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에 다윗의 관심은  메랍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같이 미천한 사람이 어떻게 감히 왕의 사위가 될겠는가 수 있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갑자기 마음을 바꿔서 메랍을 다른 사람과 결혼을 시켰습니다. 사울은 메랍을 일종의 미끼로 사용해서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죽게 되기를 바란 것이었는데 다윗의 눈에 메랍이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지 그래서 메랍이 다윗을 유인할 미끼로서는 별로 마땅치 않다고 생각했었는지 어찌되었든 메랍을 다윗에게 주겠다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러던 중 사울은 자신의 또 다른 딸 미갈이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다윗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아예 적극적으로 다윗을 사위 삼겠다고 전하게 합니다. 그리고 당시의 관습으로 신랑이 일종의 지참금을 가져와야 하는 것을 이용해서 아무 것도 가져오지 않아도 되지만 대신 블레셋 사람 100명을 죽여서 증거를 가져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다윗이 그 말을 듣고는 왕의 사위가 되기 위해서 그의 부하들과 같이 블레셋 진영으로 쳐들어가서 블레셋 사람 200명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사울은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 없었고 다윗의 명성은 더 높아졌고 사울의 딸 미갈은 더 그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 대목에서도 다윗이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을 좋게 여겼다는 말만 있을 뿐 미갈을 사랑했다는 말은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목숨걸고 블레셋 진영으로 쳐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어떤 다윗의 열정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윗과 미갈의 결혼은 행복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손을 빌어 다윗을 죽이려 했던 사울의 계략이 틀어지자 사울은 이제 직접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사울을 위해 수금을 타는 다윗에게 직접 창을 던지기도 하고 다윗을 죽이려고 부하들을 보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 때에 미갈은 다윗을 몰래 도망가게 하고 사울이 보낸 사람들에게는 다윗이 아파서 누워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침대에 사람이 있는 것처럼 꾸며서 사울이 보낸 사람들을 속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적어도 미갈은 다윗을 진정으로 사랑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윗의 도망자 생활이 시작이 되었고 다윗과 미갈은 이렇게 뜻하지 않은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사울을 피해 도망을 다니다가 아비가일이라는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다윗과 아비가일의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자세하게 전해드리기로 하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편을 잃은 아비가일을 다윗이 아내로 맞아들였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성경은 이어서 다윗이 아히노암이라는 여인을 또 아내로 맞아들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시점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후에도 다른 아내들을 맞이해서 전에 이미 말씀드린대로 다윗에게는 미갈과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포함해서 모두 8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여러 아내를 맞이하는 경우들을 성경에서 여러 번 볼 수 있기 때문에 뭐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그렇다고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 여러명의 아내를 맞이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삭의 아내는 오직 리브가 한 명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다윗은 아직 왕도 아니었고 사울왕을 피해 도망다니는 신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미갈과 생이별한 다윗이 두 명의 아내를 거느리게 된 것을 보면 적어도 다윗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순정파는 아니었던 것은 분명한 것같습니다. 

성경은 다윗이 두 명의 아내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사울이 다윗의 아내 미갈을 발디, 혹은 발디엘이라고 불리는 사람에게 결혼을 시켰다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울이 강제로 행한 것인지 미갈도 동의한 것인지를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다윗이 이미 새로 결혼한 것을 알게 된 이상 미갈도 혼자서 다윗을 기다릴 이유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200명의 목숨과 맞바꾼 다윗과 미갈의 사랑은 끝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인생에 그 후에도 미갈은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미갈을 찾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때는 시간이 흘러서 사울이 죽고 이스라엘은 한편으로는 사울을 추종하는 잔당들이 사울의 막내 아들인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고 사울의 왕조를 이어가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 다윗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모여서 이렇게 둘로 나뉘어 있을 때였습니다. 다윗은 이제 상당한 세력을 가졌고 어쩌면 정말로 곧 왕이 될지도 모르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때에 사울의 군대장관이었던 아브넬은 아무래도 사울의 가문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몰래 다윗편에 가담하겠다고 사람을 보내 제안을 합니다. 그런데 이때에 다윗이 한 가지 조건을 내겁니다. 바로 미갈을 찾아서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미갈은 블레셋 사람들의 목숨으로 맺어진 사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자 이 대목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윗은 그동안 어쩔 수 없이 고난 중에 다소간의 위로를 얻으려고 다른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하기는 했지만 사실은 미갈을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뭐 순정파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다윗에게 미갈은 그만큼 특별한 존재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문제는 이미 다윗도 결혼하여 여러 아내를 두고 있었고 미갈도 다른 사람과 결혼한 사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아브넬이라는 장군의 힘을 빌어서 미갈을 데려오게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름 미갈과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던 미갈의 남편 발디엘은 자기를 떠나가는 미갈을 울면서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아브넬이 이제 그만 돌아가라고 말하자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갑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성경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발디엘이야말로 미갈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미갈과의 이별을 진심으로 슬퍼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당대의 실력가이며 장수인 아브넬과 맞설 용기가 없었기에 눈물을 버금고 아내를 떠나 보내야 했습니다. 떠나가는 미갈을 울면서 쫓아가는 모습이 슬프고 또 아브넬이 가라고 하니까 비참하게 아무말도 못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더 슬픕니다. 

아, 우리의 다윗이 이런 일을 저지르다니, 우리아를 죽인 일에 비하면 약과라고 할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한 가정을 깨뜨리는 것을 어떻게 좋게 볼 수가 있을까요? 

자, 그러면 이제 다윗은 그토록 그리워하던 미갈을 만나서 다른 아내들보다 애지중지하며 다시 젊은 날의 사랑에 빠지며 그 동안의 이별의 고통을 씻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까요? 그렇게 되었다고 해도 다른 아내들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그리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겠지만 그렇게 되지도 않았습니다. 

미갈은 다시 한 번 다윗의 이야기에 등장합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에 예루살렘을 점령해서 수도로 삼고 그 동안 다른 곳에 있던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게 되는데 그 이야기 속에 미갈이 등장합니다. 이날 다윗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성경에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겼던 법궤가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여러 가지 우여곡절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는 다윗이 법궤를 가져오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윗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드디어 법궤를 예루살렘성으로 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날 다윗은 너무나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춤을 추었는지 맨살이 다 드러날 지경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미갈은 성경의 표현대로 하면 “그를 없신여기고” 왕이 체신머리 없게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정확하게는 신하들의 아내들이 보는 앞에서 몸을 드러내시냐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미갈에게 “하나님이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았으니 나는 더 천하게 보이더라도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뛰노는 것을 그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법궤의 이야기도 성경에서는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그 이야기는 접어두고 다윗과 미갈의 관계가 지금 어떠한지에만 집중을 해보겠습니다. 먼저 미갈은 다윗을 없신여겼습니다. 그것이 자신은 공주고 다윗은 역시 근본 없는 집안 출신이구나라고 생각했다는 의미일까요? 그런 다윗을 사랑했던 것이 미갈이 아닙니까? 지금 미갈은 다윗을 다시 만났고 다윗 덕분에 다시 왕궁에 들어오게 되었지만 미갈의 말을 들어보면 그녀가 다윗과 재회한 후에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미갈의 눈에 다윗은 예전에 그녀가 사랑했던 그 다윗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미갈과 다윗의 과거의 이야기를 모른다면 체면과 위신만을 중시하는 미갈보다 하나님 앞에서 전심으로 기뻐하며 춤을 추는 다윗의 편을 들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전의 이야기들을 다 알고 있습니다. 미갈의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를 거역해가면서까지 다윗의 목숨을 구해주었지만 자신을 먼저 배신하고 다른 여인과 결혼을 한 것도 다윗이었고, 이제 과거의 상처를 잊고 다른 남자를 만나서 나름 행복을 기약하며 살고 있는 자신을 억지로 끌고 온 것도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이 언제는 자신의 입장, 자신의 생각을 존중했는가? 자기 마음대로 버렸다 주웠다 하는 사람이 아닌가? 그런 미갈의 시선으로 보면, 다윗의 춤은 하나님 앞에서 순전한 동기로 추는 춤이 아니라 이제는 정치적인 권력에 더하여 법궤를 가져와서 종교적인 상징까지 손에 넣고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양 기뻐워하는 모습으로 보인 것은 아니었을까요? 다윗의 춤이 다윗의 속내를 들어내고 그의 야망을 보여준 그런 춤으로 보았던 것은 아닐까요? 미갈이 다윗을 업신여긴 것은 그의 출신 때문이 아니라 예전에 자신이 사랑하던 그 다윗이 이제는 속물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하며 실망했기때문은 아니었을까요?

게다가 다윗의 대답도 이제 내가 왕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았으니”라는 말은 네가 아직도 공준줄 아느냐, 나는 네 아버지 덕을 본 사람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왕이다, 너는 내 덕에 여기서 살고 있는 주제에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는 식의 그런 말은 아니었을까요? 

의심의 꼬리를 물고 생각해보면 다윗이 미갈을 데려오라고 한 것도 미갈을 진정으로 사랑해서가 아니라 지금 사울의 집안의 잔당들이 여전히 세력을 구축하고 있은 상황에서 자신이 왕이 될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과거에 자신이 미갈의 남편, 즉 사울의 사위였다는 것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이렇게 생각해보면 왜 성경에 다윗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지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다윗이라는 사람은 사실은 진정한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예언된 대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이었고 다만 그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에게 출세의 기회가 왔을 때에는 그 기회를 결코 놓지지 않으려 했기에 어떤 어려움도 무릅쓰는 그런 사람이었고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을 쳐죽여서라도 왕의 사위가 되고자 했고 자신에게 필요한 정치적인 상징이 되는 미갈을 자기 곁에 두기 위해 발디엘의 품에서 미갈을 빼앗아오며 그 가정을 깨뜨리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일 정말로 다윗이 미갈을 사랑했다면, 우선은 피난 중에서라도 다른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하지 않았어야 했을 것이고, 미갈이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미갈이 자기 발로 찾아오지 않는한 자신의 권력을 가지고, 지금 누리는 미갈의 행복을 깨뜨리면서까지 미갈을 데려오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생각들은 현대적인 관점에서의 로맨스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한 세대 전만 해도 연애결혼보다 중매결혼이 일상화되어 있었기에 그 옛날에 무슨 순전한 사랑이니 하는 것을 따지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성경은 결코 남녀간의 사랑의 감정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먼저 대표적인 책으로 아가서가 있습니다. 얼마전에 아가서를 새벽에 묵상한 바가 있지만 아가서를 묵상하다보면 난감한 구절이 한 두군데가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는 두 남녀가 상대방의 몸을 매우 애로틱하게 묘사하고 있는 글들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가서의 남자 주인공은 처음에는 목동으로 묘사되고 나중에는 왕으로 묘사됩니다. 물론 아가서에는 그 왕을 솔로몬으로 지칭하고 있지만 목동이었다가 왕이 된 사람하면 그 누구보다도 다윗을 떠올릴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솔로몬이 아가서를 썼다고 하지만 그 이야기의 기본 모티브는 다윗의 삶에서 가져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가서에는 어떤 정략적인 관계, 가족간의 약속, 뭐 그런 것이 아니라 오로지 두 남녀의 정렬적이고 순전한 사랑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그 시대에도 그러한 사랑이 가능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제가 다윗을 너무 몰아붙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다윗은 순전한 마음으로 미갈을 사랑했지만 당시의 상황 속에서, 당시의 관습 속에서 여러 아내를 두게 된 것이었을 뿐이고 그래도 미갈을 잊지 못해서 다시 찾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잊지 못하고 사랑하는 미갈이 자신을 업신여기는 것같이 보이니까 본의 아니게 미갈의 집안을 모욕하는 심한 말을 내뱉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러나 어찌되었건 간에 그 일 이후로 다윗은 미갈과 더 이상의 사실상의 부부 관계를 이어가지 않았고 그래서 성경은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가지 자식이 없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그 많은 우여곡절을 이어온 두 사람의 관계가 겉으로는 이어졌는지는 몰라도 사실상은 여기서 끝이 났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 후에 우리는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또 다른 여인, 그것도 또 다른 한 남자의 아내였던 밧세바를 범하는 다윗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 사랑, 오늘도 다윗은 사랑에 있어서 우리의 반면교사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순전한 사랑의 모델이 아니라 계산적 이기적 정략적 사랑의 모델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성경 속에서 남녀간의 사랑의 이야기를 읽어가는 것은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성경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책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할 때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남녀간의 사랑이 성경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간의 관계를 묘사하는 매우 중요한 비유로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에 거의 전적으로 아버지라는 이미지가 절대적입니다. 물론 예수님도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기에 당연한 것이라고 할수 있겠지만, 그러나 특히 구약 성경의 여러 구절들을 살펴볼 때에 아버지의 이미지보다 더 자주등장하는 비유는 사랑하는 남녀간의 비유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상숭배를 영적인 간음으로 비유합니다. 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신의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으로 묘사하며 비난합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호세아 선지자이지만 우리가 요즘 새벽과 수요일에 묵상하고 있는 에스겔서에서도 매우 노골적이고 낯뜨거운 표현들을 사용해서까지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바람난 여인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성경의 본문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사랑을 원하시는지를 매우 생생하게 알려줍니다. 

사실 여러분 모두 기독교 하면 사랑이라는 단어를 생각하실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이 기독교의 전매특허는 아니지만 저는 불교를 믿는 분들이 부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유학자들이 공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빼면 남는 것이 없을 정도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이야기는 성경을 조금만 읽어본 사람들도 다 알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그 사랑은 때로는 매우 격렬하고 열정적이며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놓는 그러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배우며 또한 그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목숨까지도 내어버리며 그 사랑과 믿음을 지키며 순교자의 길을 갔다는 이야기를 수도없이 들어 왔습니다. 

그럼 다시 우리의 주인공 다윗에게로 돌아가 봅시다. 다윗은 누구를 사랑했을까요? 애석하게도 우리는 아직 다윗이 어떤 사랑을 베풀었는지 찾지를 못했습니다. 다윗은 사실 인간관계에도 서툰 사람이었고 제대로 된 사랑을 하지도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윗에 대해 성경의 어떤 인물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다윗이 이스라엘의 전설적인 영웅으로 이스라엘의 전성기를 구가한 왕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순한 역사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단지 군사적인 정치적인 업적만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왕들에 대한 업적과 평가가 나오지만 아무리 세속적으로 대단한 업적을 남긴 왕들도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의 매서운 신앙적인 기준과 선지자들의 신랄한 비난을 빗겨가지 못합니다. 

다윗이 다윗이 된 이유는,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사랑에 서툰 다윗을, 어쩌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것 같은 그 다윗을 하나님이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먼저 택하셨고 다윗을 보호하고 지켜주셨고 때로 다윗을 책망하시고 다윗에게 매서운 채찍질을 하시기도 했지만 그러나 다윗을 버리지 않으셨고 다윗을 떠나지 않으셨고 다윗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신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셨습니다. 

다윗의 인생을 관통하는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다윗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 사랑을 알고 있었고 그 사랑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성경이 다윗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분량을 통해 들려주는 이유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우리들 모두에게도 매우 버거운 말입니다. 정말로 나는 순수한 사랑을 하고 있는가?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사랑이란 아무리 순수한 것 같아도 결국은 그 밑바탕에 자신의 욕구가 있고 계산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시적이고 또 때로는 수많은 남성들이 결혼 전에 공수표를 날리듯 무책임하기도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사랑을 명령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명령합니다. 사실 우리는 별로 그런 명령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랑이 가능할 것 같지도 않고 우리의 인생이란 사랑이라는 주제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메마르고 지쳐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의 세계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서 사랑이라는 주제를 생각해 본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가장 중요한 사랑에서 우리는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자꾸만 다윗의 허물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성경에 영웅따위는 없습니다. 수많은 허물과 연약함과 불의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 성경에 등장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펴고 사랑의 짐을 얻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우리는 사랑을 해야 하고 성경은 사랑을 명령합니다. 그러나 그 전에 우리가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먼저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그 누구도 제대로 사랑할 줄 몰랐던 다윗도 하나님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사랑스러운 존재로, 사랑받을 만한 존재로 빚어가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허물을 아시고 잘못을 아시고 실수를 아시고 거짓됨을 아십니다. 그러나 다윗의 이름이 성경에 있듯이, 우리가 오늘 지금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사랑이라는 과제가 가진 첫 번째 의미는 어떤 사랑을 해야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사랑을 받고 있는지를 깨달았는가에 있습니다. 그 자리가 우리의 인생이 완성되는 곳이며 또 우리의 인생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이 사랑을 받고 살았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좌절하고 절망하고 외로워하고 우울해하고 슬퍼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받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살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삶이 완성이 됩니다. 그리고 그 때에 우리의 삶은 진정으로 시작이 됩니다. 사랑받은 자라는 정체성을 갖게 될 때에 우리의 삶이 완성이 되는 것이고 그때에 우리의 삶은 진정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을 받은 사람만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명령 이전에 사랑받은 사람으로서의 나의 존재의 깨달음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우리 인생의 과제가 아니라 이미 우리가 받은 축복이라는 것을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이 함께 깨닫고 누리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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