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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집을 지은 솔로몬의 기도 / 열왕기상 8:22-30

솔로몬이라는 이름은 성경의 여러 인물 중에서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이름 중의 하나입니다. 특히 솔로몬의 재판의 일화는 잘 알려져 있고 솔로몬이라는 이름은 지혜로운 재판관의 이미지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고 하나님께서 이를 칭찬하시며 구하지 않은 부귀와 명예를 함께 주셨다는 이야기가 열왕기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 이 때 솔로몬이 구한 지혜는 구체적으로는 백성들을 재판할 수 있는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솔로몬은 성경의 저자로서 잠언과 전도서 같은 지혜서라고 불리는 말씀들을 기록하여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더 분명하게 우리에게 각인시켜 줍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역사의 전개와 관련하여 볼 때에 솔로몬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성전을 건축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신앙의 중심에는 예루살렘에 건축된 성전이 있었고 그 성전을 건축한 사람이 솔로몬이기 때문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구약시대의 신앙의 두가지 축은 율법과 성전이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내산에서 주신 것입니다. 그 율법을 지킴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대로 행하지 못한 죄의 용서를 구하기 위해, 또는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 또는 하나님께 간구하기 위해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상징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십계명 돌판인데 이 돌판을 보관하는 법궤가 바로 성전 한 가운데 있으면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보의 내지에 성전의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해 놓았습니다. 성전의 출발은 성막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성막이란 천막, 텐트를 의미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까지 가는 여정 중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성막을 만들게 하시고 십계명 돌판이 든 법궤를 그 가운데 두게 하셨고 제단을 만들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하면서 이동할 때마다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분해하여 운반하고 다시 조립할 수 있는 그런 구조로 만들어졌습니다. 이스라엘에는 모두 12지파가 있는데 그 중에서 레위지파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주로 하는 지파였습니다. 그런데 레위지파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가 바로 성막을 해체하고 운반하는 일이었습니다.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에도 성막은 어느 한 곳에만 있지 않고 움직였고 게다가 법궤는 전쟁터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기 위해 성막으로부터 블레셋과 싸우던 전쟁터로 가지고 왔다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기고 이후로 이 곳 저 곳으로 옮겨다니며 보관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니까 원래 법궤가 성막 안에 있어야 하는데 한 동안은 성막 따로 법궤 따로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다윗의 시대에 법궤가 다윗이 새로 수도로 삼은 예루살렘으로 옮겨 오게 되었고 솔로몬의 시대에 성전을 예루살렘에 세웠고 그 후로는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성전도 같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포로로 끌려갔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돌아왔을 때에 그들이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성전을 다시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세워진 성전을 제2성전 혹은 당시의 지도자였던 스룹바벨의 이름을 따서 스룹바벨성전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후에 이스라엘이 로마의 지배 아래에 들어가고 로마사람들에 의해 왕으로 세워진 헤롯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성전을 대대적으로 개축하고 확장했습니다. 그래서 이 성전은 헤롯 성전이라고 불렸는데 이 성전에 예수님 당시의 성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성전은 후에 유대인들이 로마의 압제에 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에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진군한 로마군대에 의해 다시 허물어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다시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과거에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곳에는 황금돔 사원이라고 불리는 이슬람교 사원이 세워져 있습니다.

성전은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신다는 눈에 보이는 증거였고 그래서 예루살렘에 함락될 위기에 처했을 때에도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예루살렘성은 함락되었고 성전도 함께 허물어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성전에 계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주시지 않았다면 성전은 왜 지은 것이고 성전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에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고대 시대의 국가들은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여러 가지 거대한 건축물들을 남겼습니다. 그러한 건축물들, 특별히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는 여러 신전들, 신상들은 사실은 신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왕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왕들은 새로운 수도를 건축할 때에 그러한 거대한 종교적인 건축들을 통해서 이 곳이 거룩한 곳이며 신들이 지정한 곳이고 신들이 거주하는 곳이라고 말하며 그곳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자신의 권위를 정당화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다윗이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온 것이나 솔로몬이 그 법궤를 위하여 화려한 성전을 건축한 것도 그러한 차원에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종교적인 권위를 빌어다가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는 그런 정치적인 의도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고대사회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께 봉헌하며 드린 기도의 내용의 일부입니다. 자 여러분이 왕입니다. 그리고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 앞에서 화려하게 지어진 성전을 봉헌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무엇이라고 기도하겠습니까? 아마도 이제 여기 성전을 세웠으니 하나님께서 이곳에 거하시며 이 나라를 지키고 보호해 주시고 하나님이 택하신 왕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놈들은 다 저주하시고 심판하시도록 기도하지 않을까요?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하며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은 솔로몬의 기도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데 예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서서 하늘을 향하고 손을 펴서 기도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기도의 모습,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기도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물론 기도의 내용입니다. 솔로몬은 오늘 본문에서 그 당시의 종교적인 상식에서 벗어나는 놀라운 발언을 합니다.

27절에서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라고 말합니다. 아니 지금 성전을 건축해 놓았는데, 누가 생각해도 성전이란, 신전이란 신이 거하는 곳,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어야 하고 그래서 그렇게 공을 들여서 지은 것이고, 또 왕으로서의 권위와 정치적인 의미, 상징을 생각한다면 내가 지은 이 성전에 하나님이 영원토록 계셔달라고 그렇게 기도해야 하는 것일텐데, 솔로몬은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솔로몬의 이 기도가 솔로몬의 모든 지혜로운 이야기들 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 한 마디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도 제약할 수 없고 통제할 수없습니다. 여기 계시라고 우리가 요구한다고 거기 계시는 분이 아니며 또한 어디에도 안 계시는 곳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화려하게 지었다해도 달랑 이 땅의 어느 곳에 건물 하나 지어놓고 이제 여기에 하나님이 계십시요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하나님께는 집이 필요없습니다. 하나님께는 성전이 필요없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이 우주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고 이 온세상을 하나님의 손길로 돌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도무지 성전은 왜 지은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 나온, 그리고 그 뒤로 계속 이어지는 솔로몬의 기도를 들어보면 성전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집이 필요해서 집을 지어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하나님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모으고 우리가 하나님을 향할수 있는 곳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우리의 기도를 돕기 위해 성전을 지은 것입니다. 30절에 매우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구약시대에 성막과 성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제사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곳이 성막이요 성전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좀 더 생각을 해보면 제사라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이고 내면적으로는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마음이 드려지는 것입니다. 마음의 진심이 있을 때에 외면적인 행위들이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진심이 없이 드리는 모든 제사와 제물들은 하나님께 상달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선지자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하는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는다고 성전을 찾아오지만 마당만 밟고 가는 것이라고 책망하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성전이 여호와의 집이라는 것은 거짓말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성전을 가리켜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이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을 향해 우리의 간절한 마음을 올려드리며 기도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은 성전의 의미에 대해서 “이 곳을 향하여”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솔로몬의 표현대로 하면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아니 사실은 하늘도 하나님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들 인간은 육체가 있습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그대로 믿고 섬기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도울 수 있는 눈에 보이는 만져지고 경험할 수 있는 상징들이 필요합니다. 성전은 바로 이러한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돕기 위한 것입니다. 인간인 우리는 우리의 시선이 향하며 우리의 마음이 향하는 곳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삶의 질서를 잡으며 하나님을 전심으로 향하고 간절히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을 모아서 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이지 않는 은혜에 대한 보이는 상징”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육신을 가진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기억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고 우리가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도구, 상징들이 필요합니다.

세례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장로교에서는 세례를 받을 때 물을 뿌리지만 침례교에서는 물속에 들어가게 합니다. 물 속에 들어가면 더 큰 은혜를 받을 것 같기도 한데 장로교에서는 물을 뿌리는 것은 그 물이 실제로 우리의 죄를 씻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의 양이 많으면 더 많은 죄를 씻게 되고 물의 양이 적으면 죄가 적게 씻기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시간에 뿌리는 물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죄가 씻겨졌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경험하며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물의 양이 많든지 적든지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은혜를 느끼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성전도 보이지 않은 하나님을 향해 우리의 마음을 모으는 것을 돕는 역할을 하기 위해 지어진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어지는 기도에서 누구든지, 그 어디서든지 이 성전을 향해서 간절히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하늘에서 들으시고 응답해달라고 간구합니다. 성전을 봉헌하는 솔로몬의 기도에는 전적으로 기도에 대한 이야기만이 담겨 있습니다. 제사를 드리고 제물을 드리고 하는 성전에서 벌어지는 모든 행위들은 기도하는 사람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도의 응답을 구하며 드리는 것이여야 하는 것이며 이 때에 기도가 모든 것의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솔로몬의 기도의 대부분의 경우는 성전을 찾아올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래서 성전을 향햐여 기도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후에 예루살렘 성전이 함락된 후에, 그리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 중에 다니엘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니엘도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그 때에는 예루살렘에 성전이 없었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에 의해 허물어져 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며 기도하고 자신의 삶이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섬기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하며 자신의 믿음을 비난하고 조롱하고 박해하는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예루살렘을 향해 간절히 늘 하루 세 번을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솔로몬의 기도를 생각해 볼 때에 오늘날 교회가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솔로몬에게 있어서 성전이 그러했듯이 오늘날에도 교회는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는 곳,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모으게 하는 곳, 무엇보다도 기도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드려지는 여러 가지 봉사와 섬김이 있고 나눔과 교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핵심에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와 찬양이 있어야 하고 그 핵심에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한 순간도 온전히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죄인됨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를 향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고 부르짖는 그 마음을 통해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건물이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교회일까요?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모인 성도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교회일까요? 그렇게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중심이 되지 않는다면 성령의 능력을 믿지 못한다면 사람들이 모였다고 해서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 나아가 오늘 본문과 함께 생각해본다면 성도들의 모임이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나게 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도들의 공동체는 오히려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하는 것을 가로막고 방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런 공동체를 우리가 교회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솔로몬의 시대에 솔로몬이 간절히 바라며 기도했듯이 오늘날에도 교회는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는 기도의 집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공동체는 함께 하나님을 향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서로 서로의 기도를 돕고 힘을 모아서 함께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 교회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도의 집, 기도의 공동체가 되게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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