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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내리는 간절한 엘리야의 기도 / 열왕기상 18:41-46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람들 중의 하나입니다. 엘리야는 우리가 아는 다른 중요한 성경의 인물들과 비교해보면 사실 성경에서 그렇게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성경에서 엘리야가 등장하는 본문은 6장 정도입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다윗과 같은 사람과 비교하자면 별로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가장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능력을 보여주면서 또한 가장 연약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기도에 대해서 배우고 있는데 엘리야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기도의 능력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서 기도에 대해 강조하며 권면하면서 구약성경의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 중에서 엘리야를 본보기로 예를 들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야고보 사도는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엘리야의 기도의 비결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엘리야의 기도의 비결은 바로 그가 선지자였다는 데에서부터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직책들, 직분들 중에 가장 독특한 것이 선지자입니다. 왕이나 제사장도 중요한 역할을 맡았지만 사실 왕이나 제사장은 고대사회 어느 나라, 어느 시대, 어느 종교에서나 존재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지자라는 단어를 발견하게 되면 아, 이이야기는 성경과 관련되어 있는 이야기구나 하고 바로 알 수 있게 됩니다.

점을 치고 길흉을 살피며 앞날을 예언하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나 어디에나 있어왔고 심지어 우리 동네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이들과는 다릅니다. 우리말로는 선지자라고 하든지 예언자라고 하든지 다 앞날을 미리 알고 전해주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히브리어에서 선지자를 가리키는 나비라는 말은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받아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기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부분적으로는 미래에 대한 예언도 포함이 되지만 그러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든지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촉구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은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이나 제사장은 세습되는 직분들이지만 선지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특정한 계급 혹은 성경에 나오는 어느 특정한 지파, 가문에서 배출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다양한 사람들이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선지자가 선지가가 되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이 그를 택하셔서 선지자로 세우셨다는 이유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엘리야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의 개인적인 배경에 대해 하나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저 디셉 사람이라는 설명만이 그의 이름과 함께 전해질 따름입니다. 아모스 선지자 같은 사람은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예언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한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사람으로 친히 선지자들을 택하시고 그들을 성령으로 감동하셔서 그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게다가 엘리야나 엘리사와 같은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뿐아니라 이적을 행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보여주기까지 했기 때문에 다른 선지자들 보다도 더 위대한 선지자로 우리에게 기억이 되고 있습니다.

신학교를 다닐 때에 흔히 신학교를 “선지동산”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곤 했습니다. 이 시대의 선지자들이 배출되는 곳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어떤 학교에서 어떤 교육과정을 마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시대에 선지자가 있다면 목회자들 중에도 있을 수 있지만 평신도들 중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부르시고 택하시는 사람이 선지자가 되는 것입니다. 목회자들 중에도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모든 목회자들이 다 이 시대의 선지자의 사명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예전에는 목사님들이 너무 세상에 관심이 없고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설교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는데 오늘날에는 이 시대의 선지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졌습니다. 그런 분들이 어떤 사명을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 같은 사람은 그냥 성도들을 섬기며 목회를 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일 뿐입니다.

오늘은 종교개혁 기념주일이기도 합니다. 장로교를 시작한 칼빈은 스스로를 선지자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선지자와 같은 직분을 하나님이 주신 사람은 현재는 없거나 옛날 같이 흔히 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종교개혁을 시작한 루터에 대해서는 복음의 빛을 다시 비추게 하는 특별한 사명을 받은 사람으로서 그 시대에 사도이며 선지자와 같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존경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에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한 시대를 깨우는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받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또한 다른 면에서 보면 선지자들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우리 모두의 신앙의 귀감이며 모범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선지자들은 어떤 인간적인 배경도 중요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 그 직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이제 하나님은 모든 믿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영, 성령을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특정한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면 오순절 성령강림사건 이후에는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고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비록 우리가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지고 여러 가지 역할을 맡아서 살아가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때에 구약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들의 삶은 우리의 신앙의 삶에 중요한 모범이 됩니다.

엘리야가 위대한 기도의 사람이 되었던 비결을 그가 선지자였다는 것을 통해 찾아야한다고 말씀드린 이유는 기도의 응답의 비결이란 근본적으로 얼마나 나의 인생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된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와 직결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속에서 엘리야의 기도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줍니다. 야고보서에서도 말씀하고 있듯이 비를 내리지 않게 하기도 하고 또 비를 내리게 하기도 합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들에 맞서서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서 하늘에서 불이 내리게 하기도 하고 가난한 과부의 집에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도 하고 심지어 죽은 아들을 다시 살려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모든 기도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 세상에 이루기 위한 그의 사명 속에서 드려진 기도였습니다. 엘리야에게는 자기 자신의 개인의 삶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 명하심, 인도하심에 따르는 삶이었기에 또한 그는 위대한 기도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엘리야의 시대는 영적으로 매우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조금 더 당시의 배경을 말씀드리면 당시에는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을 때였습니다. 갈라진 두 나라 중에서 북쪽에 있는 나라를 성경은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고 남쪽에 있는 나라를 유다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되면 분열 이전의 나라를 또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 남북 전체를 일컬어서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기도 하기 때문에 혼란을 막기 위해서 성경을 해설할 때에는 갈라진 두 나라 중에 북쪽의 나라를 북이스라엘, 남쪽의 나라를 남유다라고 흔히 부릅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열왕기는 갈라진 두 나라의 역사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책인데 열왕기를 보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두 나라 중에서 그래도 남유다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들이 드문드문 나타났지만 북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는 왕들이 없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악한 왕으로 일컬어지는 사람이 아합이었는데 엘리야는 바로 북이스라엘의 아합왕 때에 사역했던 선지자였습니다.

아합의 시대는 세상적으로 볼때에는 상당히 번영을 했던 시대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은 하나의 왕조가 계속 이어지지 않고 반란이 끊이지 안았었는데 그래도 아합의 아버지 오므리가 시작한 이른바 오므리 왕조는 4대를 이어져서 상대적으로 정치적인 안정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는 바알이라는 우상 숭배가 전 이스라엘에 퍼져 있을 때였습니다.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고 한 나라의 번영과 한 가정의 축복이 바알에 의해 주어진다고 믿으며 바알을 섬겼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진 시대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으며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며 오직 이 세상에서 복을 받기 위해 우상을 숭배하는 시대에 다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영광을 온 이스라엘 위에 선포하고자 하는 사명으로 가지고 살았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의 시대에 중요한 문제는 비와 가뭄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왕의 시대에 갑자기 등장해서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누가 비를 내리는가를 통해 바알이 참된 신인가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이 참된 신인가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바알을 섬겼던 이유는 바알이 하늘을 주관하고 비를 내려서 풍요를 가져다 주는 신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과거에 그들의 조상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는 가나안의 신을 섬겨야 복을 받는다는 생각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바알을 섬겨야 바알이 비를 내려주고 그래야 농사가 잘되고 축복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누가 진정으로 이 땅에 비를 내리며 누가 우리의 삶을 주관하는지를 깨닫게 하기 위해 아무리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을 섬겨도 하나님이 막으시면 이 땅에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도 때로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당연하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우리가 의지하는 모든 것을 흔드시고 우리가 당연하게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거둬가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도 모르게 섬기는 이 세상의 권세들, 이 세상의 우상들을 버리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의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아굴의 기도에서 보았던 것처럼 우리가 형통할 때에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허락된 것임을 잊어버리고 마치 내가 잘나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된 것처럼 생각하고, 이 세상의 힘있는 사람들과의 인간관계가 내 인생의 버팀목인양 생각하고, 마치 하나님이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을 것처럼 착각을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마치 엘리야의 시대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던 것처럼 우리의 삶을 메마르게 하시고 우리가 다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에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누가 하늘을 주관하는 진정한 하나님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기도의 대결을 펼칩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이 비를 내리는 권능이 있으심을 보여주기 위해 다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비가 오게 합니다.

오늘 본문은 엘리야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비를 내리시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엘리야는 이제 하나님이 비를 내리실 때가 되었다는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그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먹지도 못하고 걱정하던 아합왕에게 이제는 하나님이 비를 내리실터이니 먹고 마시라고 말합니다. 성경의 표현대로 하면 “비소리가 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아직 비가 오지 않고 있지만 엘리야에게는 비소리가 들렸던 것입니다. 아합왕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왕으로서 기근 속에서 근심하며 어디서든지 물의 근원을 찾기 위해 사방을 찾아 다니고 있었습니다. 아합왕이 엘리야의 말을 듣고 왕궁으로 올라갔고 엘리야는 산 꼭데기로 올라가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엘리야의 기도의 자세를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엘리야는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참 엘리야가 다리가 긴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흉내를 내보았는데 어떻게 해도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을 수가 없습니다. 웬만큼 허리가 짧고 다리가 길지 않고서는 이런 자세가 나올 수가 없는데 그것을 보면 엘리야는 참 다리가 길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엘리야는 비소리를 들을만큼의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비를 내려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기를 일곱 번을 했을 때에 그의 사환이 말하기를 저기 바다에 손바닥만한 구름이 보인다고 말을 합니다. 엘리야는 이제는 되었다고 생각하며 아합왕에게 비가 쏟아질테니까 걸어서 가기는 어려울 것이고 꼭 마차를 타고 가라고 믿음으로 전하게 합니다. 그러자 곧 구름이 몰려오고 바람이 불면서 큰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아합왕은 그 비를 맞으면서 마차를 타고 당시에 아합왕이 머무르던 궁궐이 있던 이스르엘(이스라엘이 아니라)을 향해 가는데 엘리야는 간절히 기도하면서 얼마나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받았는지 아합왕의 마차보다 더 빨리 달리면서 이스르엘까지 달려갔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엘리야의 다리가 길기는 길었던 것같습니다.

엘리야가 기도했던 갈멜산에서부터 당시에 아합왕의 왕궁이 있던 이스르엘까지는 직선거리로 26km라고 합니다. 마라톤 경기가 42.195km를 달리는 것을 생각해보면 달려가지 못할 거리는 아니지만 말이 끄는 마차를 앞질러 달렸다는 것은 엘리야를 통해 나타난 또 하나의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여러분들이 잘 믿지 못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전에 육이오 전쟁에 참전하신 어느 장군의 회고록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을 하고 전세가 반전이 되어서 북진을 하게 되었을 때에 미군은 트럭을 타고 평양으로 가고 한국군은 걸어서 갔는데 평양에 한국군이 더 먼저 도착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지만 당시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군인들은 이제는 통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그 열정을 가지고 이제 평양만 점령하면 전쟁이 끝나고 통일이 된다는 생각으로 달려가니까 트럭을 앞질러 가게 된 것입니다.

아합은 믿음이 없으니까 마차를 타고 가더라도 반신반의하며 출발을 했겠고 아합왕의 마차를 모는 사람은 빗속에서 마차를 모느라 고생을 했겠지만 엘리야는 일곱 번의 기도를 통해 큰 은혜를 받았을뿐 아니라 이제 온 이스라엘에 비가 내리므로 해갈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증거가 온 백성들에게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을 때에 그 기쁨에 사로잡혀서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마차를 앞지르며 달려가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이 비를 내리시기로 작정하셨다면 엘리야의 기도가 없이도 비를 내리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야가 간절히 일곱 번 기도하기까지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그렇게 간절히 기도한 후에도 겨우 손 바닥만한 작은 구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그 구름을 보고 실망하기는커녕 이제 곧 비가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아합에게 선포하자 그 작은 구름이 큰 비구름이 되고 장대비를 내리게 하셨습니다.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꾸만 하나님이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셔도 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지 않겠느냐는 사람들이 있는데 제발 성경을 읽으면서 기도하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혼자서 하나님의 능력을 자랑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은혜를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 역사하기를 원하시고 그래서 우리의 믿음을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기뻐받으십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온전히 붙들린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야의 시대는 결코 믿음을 가지기 쉬운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없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참된 믿음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러한 시대이기에 오히려 더욱 간절하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소망했습니다. 불신의 시대에 믿음의 증거를 나타내는 삶을 살기를 원했고 어두운 시대이기에 어두움을 밝히는 등불과 같은 삶을 살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왜 성경에는 기도하면 다 응답이 되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데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않는가 의문을 가지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그 시대에는 하나님이 역사하셨지만 우리 시대에는 그렇게 역사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기도에 소극적이 되고 별로 큰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시대도 영적으로 매우 어두운 시대였고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기도했던 사람은 극히 적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도 엘리야와 같이 믿음을 가지고 기도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우리 시대도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이지만 그러나 우리 시대에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다만 우리가 엘리야와 같은 믿음이 없을 뿐입니다.

엘리야가 일곱 번 간절히 기도한 것은 오직 이 땅에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누가 진정으로 이 땅에 비를 내리는 분이신지를 깨닫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통해 역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는데도 당장 비가 내리기는커녕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밖에 보이지 않아도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응답임을 깨닫고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기뻐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종교개혁기념 주일입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지 502년이 지난 오늘날 이 땅에 여전히 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정말로 이 땅의 교회들이 바알이 아닌 하나님만을 섬기는 교회들이라고 정말로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이 땅의 교회들이 점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읽어버리고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고 자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우리 교회에 대해 생각할 때에 무엇을 자랑하고 무엇을 부끄러워합니까?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실 때에 무엇을 자랑하고 무엇을 부끄러워하십니까?

이 시대에도 엘리야처럼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을 의지하며 하나님이 살아계신 표적이 되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그런 믿음의 도전자들, 그런 교회들이 나타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교회들을 비판한다고 우리 교회가 더 좋은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고 남들의 신앙을 비판한다고 내가 더 바른 신앙을 갖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남들이 어떻든, 다른 교회가 어떻든 그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엘리야와 같은 믿음이 필요하고 그런 교회가 필요합니다. 아니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간절히 그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바로 우리가, 바로 우리교회가 이 시대에 하나님의 살아계시는 표적이 되고 능력의 증거가 되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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