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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교제 / 야고보서 5:13-20

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19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오늘 같이 나눌 주제는 성도의 교제입니다. 여러분은 성도의 교제라는 말을 들을 때에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가볍게는 해마다 봄나들이를 가서 함께 나누는 교제를 생각하실 수도 있고 좀 더 진지하게는 매 주일 목장 모임에서 받은 은혜를 나누며 기도하는 모임을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교회의 활동들이 다 사도신경에서 말하는 성도의 교제 안에 포함이 되는 것이지만 성도의 교제라는 말이 처음 사용되었을 때의 의미는 우리의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성도의 교제를 영어로는 communion of saints라고 번역을 하고 사도신경의 원문이라고 할 수 있는 라틴어로는 communio sanctorum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이 처음 사용되었을 때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성도들, 구체적으로는 죽음으로서 믿음을 지킨 순교자들과 지금 여기에서 있는 성도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말이었습니다. 순교자들은 이미 그들의 믿음의 증거를 통해 구원을 완성하고 그리스도의 품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는 아직 그런 믿음을 가졌다고 말하기에 부끄러운 불완전하고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죽음으로 믿음을 지킨 순교자들과 여기에 있는 우리가 근본적으로 함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이며 모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며 하나의 거룩한 성도들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성도의 교제”라는 말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기독교가 초기에 박해받던 시기에는 따로 예배를 드리기 위한 건물을 갖지 못했습니다. 성도들의 가정에서 모여서 예배를 드렸고 또한 순교자들의 무덤에서 그들의 신앙을 기억하고 계승하기를 바라며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때로는 로마의 카타콤 교회가 보여주는 것처럼 이 두 공간이 하나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후로도 이어져 내려오던 전통 중의 하나는 교회 곁에 바로 성도들의 무덤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교제의 본래적인 의미가 시작된 배경입니다. 순교자들의 믿음이 우리의 본보기가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 이미 누리고 있는 구원의 축복을 우리도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 소망 안에서 서로 위로하고 서로 격려하며 박해를 이겨내고 복음을 증거하던 것이 바로 초대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구분할 때에 싸우고 있는 교회(church militant)와 승리한 교회(church triumphant)로 나누기도 합니다. 싸우고 있는 교회는 지금 지상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는 성도들의 교회이며 승리한 교회는 달려갈 길을 다 가고 선한 싸움을 마치고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를 누리며 안식하고 있는 성도들로 이루어진 교회입니다. 그리고 이 둘이 근본적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 두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연결되어 있고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령의 전으로서 과거의 성도들과 현재의 성도들과 미래의 성도들은 모두 함께 하나의 교회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후대에 이렇게 순교자들과 살아있는 성도들이 함께 공동체를 이룬다는 생각에서부터 우리가 면죄부라고 부르는 문제가 생겨나게 됩니다. 성도의 교제라는 말은 성도들 사이의 교제라는 말이 될 수도 있지만 라틴어에서 성도라고 사용된 말인 sancta는 거룩한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거룩한 것들을 가리키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성도의 교제라는 말은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것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라는 의미가 됩니다. 교회는 점차 온전한 신앙을 보여주며 순교자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만을 특별히 성자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들이 쌓은 신앙의 공덕이 그들만의 것이 아니기에 교회의 보고 안에 쌓여 있으며 교회가 그것을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헌금과 연결이 되면서 소위 종교개혁을 촉발시킨 면죄부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즉 헌금을 내면 성자들의 공덕을 얻어서 나를 위해, 혹은 나의 가족들을 위해 사용할 수가 있다는 이상한 결론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을 이끈 지도자들은 이러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순교한 성인들과 일반 신자들을 구분하여 인식하는 전통을 버리고 모든 신자들이 다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이며 모두가 어떤 공덕을 쌓음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임을 분명하게 가르치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 성자들을 숭배하고 의지하고 성자들에게 기도하는 잘못된 신앙을 바로잡고 성도들 각자가 온전한 믿음의 고백을 하는 신앙에 이르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비록 교회가 타락하면서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기는 했지만 처음에 성도의 교제라는 말이 가졌던 의미에는 우리가 오늘날 간과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은연중에 내 믿음, 내 기도, 내 봉사, 내 헌신, 내 섬김, 내 봉헌이 나를 위한 상급을 하늘에 쌓는 것, 혹은 내 자녀들을 위한 복을 하늘에 쌓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교제라는 말의 원래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면 성도들은 거룩한 것을 서로 공유하는 공동체, 즉 성도와 성도들이 서로 서로의 믿음과 기도와 헌신의 열매들을 함께 공유하는 공동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가 각자 다른 모습으로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한 몸을 이룬다고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들로서 함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교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때 우리들 각자의 다른 모습들은 서로 서로를 위한, 서로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섬김의 도구가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지식에 있어서는 참으로 탁월한데 열정에 있어서는 부족한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참으로 본보기가 될 만한 믿음의 열정을 가지고 있지만 성격적으로 사람들과 부딪히는 경우가 많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믿음의 확신이 있는 것 같지 않아도 봉사와 섬김의 자리에서는 오히려 더 신실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의 연수나 경륜이 많지 않은 데도 지혜롭게 자기 자신의 자리를 잘 찾아서 섬기기도 합니다.

우리들 누구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누구도 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의 역할을 감당하며 함께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서로 비판을 하려고 하면 찾아낼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다른 모습들은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고 부족함을 채워주는 모습들이기도 합니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해외의 드라마 중에 김씨네 편의점(Kim's Convenience)이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캐나다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인 가족을 배경으로 한 일종의 시트콤인데 인기를 끌어서 지금 시즌 3까지 마치고 시즌 4를 제작중이라고 합니다. 제가 잠깐 보았던 장면 중에 매우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엄마가 딸의 연애에 불만을 갖고 이야기합니다. 왜 너는 cool christian Korean boy friend를 사귀지 않느냐고 잔소리를 하니까 딸이 말합니다. cool christian이면 Korean이 아니고 cool Korean이면 christian이 아니고 cool christian Korean이면 boy가 아니고 girl인데 어떻게 하냐고 말대답을 합니다. 그러니까 부모의 기대를 채울만한 완벽한 남자친구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우리들 모두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아니 우리들이 서로 서로를 보기에도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잔소리를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장점을 보면서 칭찬하십니다. 다만 우리가 서로 서로 부족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서로 연합하여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래서 나에게 있는 것이 저 사람에게는 없습니다. 그 사람에게 있는 것이 나에게는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을 비난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내가 더 열심을 내어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내가 보고 있고 그 사람이 잘 하지 못하는 것을 내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누군가 다른 사람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이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깨닫게 하며 나를 더 온전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도 못하고 그 사람도 못하는 것을 위해 하나님은 또 다른 사람들을 불러서 우리 모두의 부족함을 채워주십니다. 이 모든 것이 서로 서로를 위한 선물이라는 것,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은혜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조금씩 하나님의 시선에서 교회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깨닫고 있든지 그렇지 못하든지 우리가 믿음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고 성도로서 교회의 일원이 되는 순간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시는 거룩한 공동체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하고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며 함께 성령이 거하시는 전으로서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교회는 구원을 받은 성도들의 모임이 아니라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 바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길인 것입니다.

처음에 예수님과 함께 모인 공동체도 사람들이 보기에는 문제가 많은 공동체였습니다.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당시에 스스로 잘나고 온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바리새인들이 보기에는 제대로 된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들 눈에는 다 죄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예수님 곁에 있었고 그들은 왜 예수님 같은 분이 그런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시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왜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냐고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대답을 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사실 이 말씀은 예수님과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도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그렇다 여기 모인 이 사람들은 병이 들었고 죄인이다”라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한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필요하고 나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왔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교회 안에는 몸과 마음에 병이 든 사람들, 자신의 죄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들이 병이 든 사람들이며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를 원하십니다.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말을 듣기 싫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막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비난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우리의 본 모습을 깨닫고 인정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에게는 이런 질문을 하고 있는 그 바리새인도 마음의 병이 든 죄인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예수님 곁에 있던 사람들과의 차이는 예수님 곁에 있던 사람들은 자신이 병이 들었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고침을 받고 변화를 받고자 예수님을 찾아왔고 이 바리새인은 아직 그것을 깨닫고 있지 못하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함께 읽어보아야 하는 매우 중요한 또 다른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14절부터 16절까지의 말씀을 다시 봉독하겠습니다.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예수님은 당신께서 친히 말씀하신 대로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지상에 계실 때에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고 예수님을 찾아온 죄인들에게 네 죄가 사함을 받았다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지상에서의 사역을 마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은 바로 우리가 예수님이 이 땅에서 시작하신 일을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까지 감당하도록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병을 고침을 받고 죄의 사하심을 받는 방법이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성도들의 기도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병이 든 사람은 자신의 아픈 곳을 알리며 기도를 요청합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기도를 요청합니다. 이것은 교회 안의 어느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병원에서는 의사와 환자가 서로 나뉘어 있지만 교회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서로 고백하며 서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불완전함과 연약함을 인정하고 자신의 죄와 허물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서로를 위한 치유자가 되며 구원의 중보자가 되어 줍니다. 오늘 본문의 표현대로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의인이 됩니다. 그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교회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교회는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이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간절히 필요한 사람들이고 또한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전해주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내가 고침을 받고 구원을 받아야 하는 죄인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며 또한 그동안 서로 서로 가리고 살아왔던 서로 서로의 죄와 허물을 보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교회 안에서는 내가 인정하고 고백하려고 하지 않아도 나의 허물과 연약함이 드러나게 되고 또 보고 싶지 않아도 사람들의 허물과 연약함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또한 초대교회부터 이어져 온 성도의 교제에 참여하는 것이며 성도들의 기도와 사랑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며 또한 우리들의 기도와 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온전하게 세워가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내 눈에 다른 사람의 허물이 보인다면, 아주 잘 보인다면, 아주 속속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면, 그것은 사실 나와 그 사람의 생각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그 사람의 모습을 통해 내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며, 나로 하여금 그 사람과 내 자신을 위해 기도하도록 나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또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도무지 말이 안 된다고 생각이 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심각한 문제 가운데 있으며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는 것이며 또한 내가 누군가의 처지를 이해하는 것이 부족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때 내가 기도하면, 나와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 결국은 나와 그 사람 모두, 아니 우리 모두가 은혜를 받게 되지만 내가 기도하지 않으면 나와 그 사람 모두, 아니 우리 모두가 시험에 들게 됩니다. 이런 일들을 여러분들 모두가 다 한번쯤은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사실 나도 너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하나님은 바로 그런 우리들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치유받고 고침을 받고 구원을 받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지만 또한 우리는 치유하고 고치고 구원을 하는 사역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우리를 치유하시고 우리로 치유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게 하시고 우리로 구원을 받게 하십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거룩한 공교회, 즉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현재 이 지상에 있는 교회는 그리 거룩하지도 않고 이 세상 모든 곳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역을 향해 열려있지도 않습니다. 세상과 구별된 공동체도 아니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공동체도 아닙니다. 그저 자기 개교회의 울타리 안에 머물면서 세상의 여느 공동체들처럼 자기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골몰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이 왜 그러냐, 혹은 믿는 사람이 더하다는 말을 하게 되는,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현실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런 말들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실망의 표현일수도 있지만 미래적인 소망의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한 고백이기도 하고 서로 서로를 향한 기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을 통해 매주일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를 믿는다고 고백할 때에, 우리가 이 세상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믿듯이, 우리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에수님을 믿고 그 분이 다시 오실 것을 믿듯이, 성령이 우리 가운데 계시며 역사하셔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이며 우리 연약한 자들이 서로 서로를 돕고 붙들어 주며 온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게 될 것임을 함께 믿고 소망 중에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예수님이 다시 오시지 않으셨듯이 아직 우리는 온전한 교회를 이루지 못하였고 아직 우리는 온전한 성도의 교제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약속하셨듯이 우리가 믿고 고백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에 이 모든 것을 친히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때로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고, 예수님을 보고 신앙생활을 하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사람들을 보지 않을 수 없고 사람들을 보아야 합니다. 그들의 은혜로운 모습을 보며 도전을 받고 그들의 연약함을 보며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나도 나의 연약함을 감추고 가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고백하며 다른 성도들로부터 은혜와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부족함과 연약함 속에서 서로 서로 기도해줄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를 더 온전한 성도들로 변화시켜 주시는 곳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교제를 믿는다는 고백은 우리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며 또한 그 부족함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손길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고 우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대로 서로의 연약함을 나누며 서로 기도해주고 함께 더 온전한 교회로 세워지는 은혜가 모든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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