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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 풍성한 생명 / 요한복음 10:7-10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제 사도신경의 마지막 주제를 다루게 됩니다. 바로 영생입니다. 영생이 사도신경의 결론이며 성경의 결론이고 우리 인생의 결론입니다. 사도신경은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하여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영생, 영원한 생명이 하나님의 약속이며 축복이며 성경이 말하고 있는 우리 인생의 결론이라는 것도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천로역정의 첫 장면을 보면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던 주인공이 성경책을 읽고 이 세상이 곧 멸망할 것이고 자기 자신도 죽고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슬퍼하며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하며 울부짖습니다. 그때 전도자를 만나게 되고 전도자는 저기 빛이 보이는 곳으로 가면 좁은 문이 나오는데 그 문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게 될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는 전도자가 가르쳐준 곳을 향하여 “생명, 생명, 영원한 생명”이라고 외치며 뛰어갑니다. 이렇게 그의 여정이 시작이 됩니다. 

저는 천로역정을 처음 읽을 때에 “생명, 생명, 영원한 생명”이라고 외치며 주인공이 뛰어가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는 영생을 얻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 성경에는 예수님을 찾아와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제가 만일 여러분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교회에 오셨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별로 그렇다는 대답을 하는 분들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오늘날 영생을 얻기 위해서라는 이유는 그렇게 일반적이지도 않고 그렇게 마음에 와닿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성경에서 말하는 영생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는 생명이 무엇이며 영원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먼저 생명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이미 우리는 여기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습니다. 그런데 왜 생명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러나 한번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여러분의 삶에 만족을 느끼며 살고 계십니까? 살아있으나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그런 순간들을 경험한 적은 없으십니까? 우리가 무슨 대단한 사명을 이루려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하루 하루 먹고 살려는 것 것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하루 하루 버티고 사는 것도 기적과 같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평범한 삶 속에서 내게 맡겨지고 내게 요구되는 역할들을 감당하는 것도 힘이 벅찰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늘 돈의 문제에 시달리고 관계의 문제 때문에 갈등을 겪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과거의 그림자가 어둡게 내 인생을 드리우고 있고 현재의 하루 하루는 힘겨우며 미래는 불투명하고 불확실하다고 느끼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삶의 스트레스를 잊게 해주는 작은 위안 거리들을 찾아다니다가 좀 더 중독적인 쾌락에 빠져 들어가게 되어 큰 낭패를 보게 되었던 적은 없습니까? 누구 하나 제대로 말 통하는 사람이 없고 내 모습, 내가 안고 있는 고민을 그대로 나누고 받아줄 사람도 없는 외로운 시간들이 있지는 않습니까? 내 인생이 이게 다인가, 그냥 이렇게 살다 죽으려고 태어난 것인가 하는 허무가 밀려오는 시간은 없습니까? 많이 수고한 것 같은데 남는 것은 없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밑빠진 독에 물붓기같은 인생에 피곤하고 지쳐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연로하신 부모님, 말 안듣는 자녀들, 내맘도 몰라주는 배우자, 꼴보기 싫은 사람들 사이에서 내 인생을 찾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여기 살아있습니다. 멀쩡하게 살아있습니다. 그런데 사는 것 같지 않습니다. 뭔가 텅 빈 껍데기만 남은 그런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허전하고 허무하고, 답답하고 절망스러운 그런 시간들에 끌려 다니며 살아가는 시간들도 많습니다. 불면증과 우울증, 공황장애와 강박증상들이 점점 주위에서, 내 자신에게도 일상화되어 가기도 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는 것은 그냥 이렇게 이대로 무한정 삶이 계속될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고생스럽게 살다가 죽으면 그래도 천국에서 모든 것 다 잊고 편안하게 살 것이라는 미래의 위안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으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을 때에 약속하신 생명은 이와 같은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정말로 사는 것 같이 사는 삶, 하나님의 풍성하신 생명의 능력 안에서 설레임이 가득한 가슴벅찬 인생,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성경은 어느 먼 훗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며 그 삶의 기쁨과 행복과 은혜가 넘쳐 흘러서 모든 근심과 염려와 절망을 몰아내고 죽음마저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래서 영원한 그래서 풍성한 그런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성경이 쓰이던 시대에는 평균수명은 30세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기대수명도 5-60세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되는  시간만큼의 삶을 보장받는 사람은 소수였고 인생은 너무 짧고 가볍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영원한”이라는 수식어는 더 나은 삶에 대한 충분한 수식어가 되었습니다. 우리 조상들도 장수를 큰 복이라고 생각했기에 목숨 수(壽)자를 여기저기에 수놓고 붙여 놓으며 살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사정은 좀 다릅니다. 우리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을 하곤 했지만 이제는 예술보다 더 긴 게 인생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나는 지금 아직도 여기 살아있는데 한 시대를 풍미하던 사조들, 예술가들, 작품들은 잊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은 오늘날 우리에게 그렇게 인상적이거나 감동적이거나 바람직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시간이 부담스러운, 어떤 면에는 이미 충분하게 오랜 시간이 주어지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퇴 이후의 삶을 대비하고 노후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도 벅찬데 영원한 삶까지 주어진다는 것이 그렇게 반갑게 느끼지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떠보니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멋진 곳에 와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래 내가 참 착하게 살아서 이렇게 죽어서 천국에 왔구나 하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부족한 것도 없고 아무런 할 일도 없고 맨날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입고 살아가는 것이 좋은 것도 하루 이틀이지 점점 지겨워지고 곧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여기서 영원히 산다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던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천국이 이렇게 재미가 없고 지루합니까? 그랬더니 천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니 당신은 여기가 천국인줄 아셨소”

영원이라는 것을 시간의 길이라고만 생각하면 오히려 그런 무한정의 시간은 우리의 작은 짐을 더 크게 만들고, 모든 소중한 것들의 가치를 더 손상시키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생이란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 가서 흰 가운을 입고 맨날 천사의 하프소리만 들으면서 영원히 사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영생은 이런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은 영생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단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고 말할 때의 뜻처럼 교제의 관계 속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유명한 영화배우를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너무 유명한 배우라서 자기도 모르게 마치 아는 사람처럼 친근한 느낌이 들어서 반갑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했더니 그 사람도 너무 다정하게 네, 잘 지내세요하고 인사를 하더랍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사실 우리가 아는 사이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혹시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나를 알고 있었나 싶어서 저를 아세요 하고 물어보았더니 하는 이야기가 하도 그렇게 인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냥 그렇게 인사를 받아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방적인 관계는 아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이 나를 몰라주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를 알고 계신데 내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듯이 하나님이 나를 아시고, 하나님이 나를 아시듯이 내가 하나님을 알고 믿고 신뢰하고 섬기는 관계가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관계에서 영생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며 모든 생명의 창조자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되면,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부어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에게 부어지게 됩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분이 계시며 그 분의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영생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원한 생명은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며, 지금 여기에서부터 누리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예수님은 이 영생에 대해서 “풍성한 생명”이라는 말로 설명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오늘의 본문인 요한복음 10장에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여기서 생명을 더 풍성히 얻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좋은 해석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시간이 무한정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능력을 풍성하게 얻게 되는 것이 바로 영생인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성경에서 영원한이라고 표현할 때에 그것은 단지 무한히 긴 시간만이 아니라 측량할 수 없이 풍성한, 차고 넘치는 그런 생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풍성한 생명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며 우리 각자에게 허락하신 재능과 은사를 마음껏 발휘하며 내 자신의 가능성을 발현하며 기쁨과 만족과 행복은 누리며 살아가는 그러한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으로 인해 주위의 모든 사람이 행복을 느끼게 되는 그런 관계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육신으로는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고 정신적으로는 긍정적이고 기쁨과 평안을 누리고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교제하며 날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며 살아가며 감사하는 그러한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러한 삶을 지금부터 영원토록 누리게 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시고 우리는 사도신경을 암송할 때마다 그 약속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예수를 믿어도 별로 이런 생명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러한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죄가 우리와 하나님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죄가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특별히 대단히 악한 일을 저지르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과 겸손함을 잃어버린 삶,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믿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도 못하고 그래서 구하지도 않고 자기 스스로 안간힘을 내며 살아가면서 다른 헛된 것들을 붙잡고 의지하는 우리의 모습을 성경은 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를 받으면, 그래서 예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의 관계와 교제가 회복이 되면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능력이 임해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풍성한 은혜를 누리고 고백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험하고 있는 이 허무하고 불완전하고 무질서하며 어그러진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선한 가능성들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능력 안에서 우리는 더 나은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질서가 잡히고 정돈되며 더 많은 사랑을 베풀고, 우리는 엉켜있는 관계들을 지혜롭게 풀어내며 소망으로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게 될 것을 믿음으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 자신에 대해, 제 자신의 인생에 대해, 제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도 생각해보면 답답한 일들이 많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별로 큰 기쁨과 위로를 받지 못합니다. 인생의 짐이 무겁고 뭘 어찌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답답함도 많고 미래에 대한 근심과 걱정에 무겁게 짓눌릴 때도 있습니다. 내가 이것밖에 되지 못하는지 한심스러울 때도 많습니다. 

제가 어제, 그제 두 분의 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별로 다른 목사님들 설교를 듣지 않습니다. 설교를 하는 사람이 되고나니 다른 설교를 들어도 별로 은혜를 받지 못할 때도 있고 또 은혜가 될 때는 비교하는 마음이 들어서 별로 편치 않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편으로는 설교자로서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왜 나는 저렇게 하지 못할까 하는 생각이 들고, 성도님들에게도 매우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목사님의 설교는 정말로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 진리에 대한 권위를 가지고, 그러나 차분하고도 설득력있게 하나 하나 가르쳐주는 것같은 느낌을 받았고 또 한 목사님의 설교는 진정성과 열정과 애정과 확신이 느껴지는 그런 설교였습니다.

저는 매우 궁금해졌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어떻게 느끼시는지 정말로 은혜가 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저는 설교에 대해 성도님들에게 피드백을 받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을 때가 많지만 안좋은 소리를 들을까봐, 그렇게 되어서 저도 상처를 받을까봐 두려울 때도 있고 또 한번 그렇게 묻기 시작하면 성도님들이 설교를 들을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은혜를 받으려하기 보다는 뭔가 코치할 일들만 생각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물을 수 있는 사람은 집사람밖에 없는데 저희가 결혼할 때에 저희 어머니가 저희 집사람에게 그냥 다 잘했다고 하라고 이미 코치를 해주셨기 때문에 설교를 들고 좋게 평가하는 것을 그대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제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압니다. 언젠가 어떤 분이 우리 교회를 찾아왔다가 설교가 너무 빠르고 어려워서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다시는 오시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생각해봅니다. 더 준비를 잘해야겠고 더 노력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가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제가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생명의 풍성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뭘 꾸며대거나 치장하는 것없이, 어떤 설교의 기교나 태크닉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을 약속하시며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시고 공급하시고 채우시며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의 표적이 되고 간증이 되며 우리의 눈앞에 기적이 펼쳐지며 치유가 일어나고 회복의 은혜가 임하며 하나님의 강한 손과 펴신 팔이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 다는 것이 경험되는 그러한 설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설교를 잘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오늘날 별 매력이 없는 일입니다. 그것보다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진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이 되는 것, 그런 생명이 있다는 것을 굳이 보여주려 하지 않아도 나타나고 드러나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떤 사람은 가까이에만 가도 사람의 김이 빠지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운이 빠지고 나도 우울해지게 만들고 입만 열면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곁에 다가가기만 해도 기운이 나고 아무런 말을 안 해도 손만 잡아도 힘을 얻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가까이에 있고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부족하고 연약하고 실수많고 허물이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고치시고 위로하시고 꿈을 꾸게 하시고 소망을 갖게 하시고 그런 사람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그 소망과 사랑을 나누고 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오늘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다짐을 합니다.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다. 나에게는 더 나은 미래가 있다. 나는 내 안에 있는 선한 가능성들이 실현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나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누리고 기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과거의 실수와 실패에 무너지지 않고 지나친 욕심과 헛된 기대에 사로잡히지 않고 내 모습 그대로, 내 허물과 연약함 그대로 내 자신을 사랑하고 더 나은 모습으로 스스로를 가꾸어가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고 소망의 근거가 되는 그런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저에게도 그런 미래가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미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영생입니다.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삶입니다. 그것이 사도신경의 결론이고 성경의 결론이며 우리의 인생의 결론입니다. 

우리가 암송했던 말씀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주셨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의 인생은 절망하여 멸망에 이르지 않고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지만 그 사망은 우리의 인생의 결론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은사로, 선물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길의 등불이 되어 주실 것이고 우리에게 평안과 안식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땅끝까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신경의 고백을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시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으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받는 자녀들입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그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대신 감당하시고 고통당하시므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심으로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모든 어둡고 부정적이며 절망적인 현실을 깨뜨리셔서 우리의 영원한 소망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오늘도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고 우리를 도우시며 우리가 더욱 간절히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기도하게 하십니다. 성령은 교회 안에서 역사하시며 하나님의 자녀들을 불러 모으시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모든 죄와 허물이 사함을 받고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상처가 고침받고 치유를 받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을 우리에게 부어주셔서 부활의 소망과 영원한 생명의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고 이러한 믿음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고 이러한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선택받고 축복받고 은혜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 믿음의 고백이 우리의 삶이 되고 우리의 현실이 되고 우리의 미래가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살아있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생명의 능력으로 넘치는, 희망과 미래가 있는, 꿈이 가득한, 위로와 사랑이 가득한, 하나님 나라가 여기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될 것이고 우리 모두는 우리의 삶에 베풀어 주신 생명의 능력으로 그런 인생을, 그런 교회를 함께 만들어 갈 것입니다. 

사도신경에 대해 그동안 공부해왔지만 사도신경은 딱딱한 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 우리에게 약속하시는 축복을 우리가 인정하고 믿고 고백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 사랑을 알기 원하고 그 믿음 안에 거하기 원하고 그 소망 안에서 살아가게 되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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