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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기도로 / 마태복음 7:1-12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사랑과 기도로>


설교 : 이두희 목사


<도입>

 

성경봉독은 마7:7-12절까지만 했지만, 오늘은 매일성경에서 오늘 분량의 본문으로 제시한 1-12절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시는 대로 성경을 묵상할 때는 정해진 본문의 내용을 그 자체로 이해할 뿐 아니라, 그 본문을 문맥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7:1-12절 본문을 그 내용면에서 살펴볼 뿐만 아니라, 이 본문을 포함하는 마태복음의 더 넓은 문맥 속에서도 살펴보면서 그 뜻을 헤아려 볼 것입니다. 오늘 본문 7:1-12절은 산상설교로 잘 알려진 마태복음 5-7장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산상설교의 문맥 속에서 오늘 본문을 살펴볼 것입니다. 한편 마태복음은 공관복음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에서 마태복음 본문의 병행본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병행본문이 있는 경우에 우리는 병행본문과의 비교를 통해서 본문의 뜻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마 7:1-12절의 경우에는 누가복음에서 그 병행본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필요한 경우에는 누가복음의 병행본문과 비교해 가면서 본문의 뜻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개관>

 

오늘 본문은 그 내용을 중심으로 볼 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7:1-6절은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다음으로 7-11절은 계속해서 끈질기게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기도에 관한 가르침을, 마지막으로 12절은 앞선 가르침의 요약으로서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조금 전 말씀드린 대로 이 세 부분을 산상설교와 마태복음 전체의 맥락에서 그리고 누가복음에 나오는 병행본문과의 비교를 통해서 차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7:1-6, 남을 비판하지 말라>

 

먼저 오늘 본문의 첫 번째 부분인 1-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용의 핵심은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굳이 설명을 붙이지 않더라도 나름대로 은혜롭게 이해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자기 눈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려는 행동은 누가 보더라도 모순적이고 위선적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 본문을 기억하며 이런 다짐을 하기도 합니다. “나에게는 엄격하게,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하게 살아보겠다!” 하고요. 이 본문을 읽고 이 정도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본문을 이해한 사람은, 오늘 본문에서 비판하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이 모든 건전한 비판이나 판단을 중지하라는 뜻은 아니라고 올바르게 생각하고 있는 셈입니다. 당장 오늘 본문 조금 뒤에 나오는 7:15-20절 부분만 보더라도, 거짓 선지자들을 잘 가려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거기서 우리가 거짓 선지자들을 가려내려면 거짓 선지자들의 말이 아니라 그 열매를 보아야 한다고 하면서 판단의 기준까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8:15-18절 말씀에 의하면, 적절한 판단과 권면, 나아가서 필요한 경우에는 단호한 징계까지도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면 잘 권고를 하고, 개인적인 권고가 통하지 않으면 교회 차원에서 권면을 하고, 그래도 잘못을 바로 잡으려 하지 않을 때는 엄격한 조치를 취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마7:1-6절의 말씀을 생각해 보면, 판단은 하되 너무 엄격하게 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점이 있는 듯합니다. 필요한 경우에는 단호하게 판단하여 엄격한 조치를 취하기도 해야 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주님이 남을 비판하지 말라고 하실 때, 명시적으로 언급하시지는 않았지만, 그 이면에 깔려 있는 주님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이 이 말씀을 처음으로 가르치셨을 때 어떤 맥락에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누가복음과의 비교를 통해서 그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산상설교는 예수님이 한 자리에서 하신 한 편의 설교 말씀이 아닙니다. 학자들은 이 산상설교를, 여러 상황에서 가르치신 예수님의 말씀을 마태가 한 데 모아 기록해 둔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공관복음 중에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두 곳에만 병행 본문이 나올 때, 그 본문 뒤에 있는 원래의 역사적 맥락을 더 잘 알려주는 것은 누가복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누가복음에서는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어떤 맥락에서 소개되고 있을까요? 비교표를 한 번 만들어 보았습니다.

마태복음

 

누가복음

5:43-48

원수까지 사랑하라

6:27-36

6:1-4

구제

 

6:5-15

기도

 

6:16-18

금식

 

6:19-34

보물 쌓을 곳과 근심에 대해

 

7:1-5

비판하지 말라

6:37-42

 

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누가복음에서는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가르침 바로 다음에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원래 예수님이 이 말씀을 가르치실 때는, 비판하지 말라는 내용과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내용이 밀접한 관련 속에서 언급되었다고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내용의 가르침을 담은 단락 바로 앞 단락인 눅 6:27-36절에서 말씀하신 내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면, 자기를 사랑해 주고 자기에게 잘 해 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로 소개됩니다. 그런 일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도 누구라도 하는 일로 언급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신 분이라고 하면서,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가르침에 바로 이이서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따라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을 우리는 이런 뜻으로 이해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을 비판하기에 앞서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신 하나님을 기억해라!”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인자하심, 하나님의 사랑을 잊은 채로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그것을 좀 더 긍정적인 진술로 뒤집어보면, 이 말씀은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라!”는 뜻으로 이해해 봄 직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제로 하지 않는 비판은 주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 7:1-6절 단락의 말씀을 이렇게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건전한 판단과 비판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비판하고 판단하다가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버리고 이웃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하는 뜻으로요.

 

신약에 보면, 남을 판단하다가 사랑을 잃어버려 책망 받은 사례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바로 에베소교회입니다. 요한계시록 2:2-4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에베소교회는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용납하지 않았고,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드러내었습니다. 7:15-20절의 가르침처럼 거짓 선지자를 그 열매로 잘 판단하여 가려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다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에베소교회가 잃어버렸던 처음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가졌던 하나님 사랑, 또 이웃을 향하여 가졌던 이웃 사랑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단과 거짓을 가려낼 정도로 날카로운 교리적 이해와 판단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을 잃어버리면 곤란하다는 것이 책망의 포인트입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7:7-11, 기도의 자세>

 

다음으로 두 번째 주요 단락인 7-11절을 살펴보겠습니다. 내용은 너무나 유명해서 많은 분들이 암송까지 하는 구절입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라는 말씀은 모두가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기도 응답의 확신을 가르치는 데에 자주 인용되기도 합니다.

 

열심히, 간절히,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떼를 쓰듯 끝까지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좋은 분이셔서 반드시 응답하실 터이니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라, 그러면 반드시 응답될 것이다.”

 

이런 뜻으로 이 구절을 이해하시는 분들이 꽤 계실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교회에서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우리가 무엇이든 구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다 응답하실까요? 기도해 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우리가 구하는 대로 그대로 백퍼센트 응답되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이나 바울의 기도도 응답되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것 기억하시는지요?

 

고후 12:7-8절에 보면, 바울이 자기 육체의 가시를 없애 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구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세 번 기도했다는 것은 실제로 딱 3번 기도했다는 뜻이라기보다 충분히 할 만큼 기도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문헌에는 그런 용례가 많이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바울이 간절히 기도했는데 결과는 어땠습니까? 고후 12:9절에 보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시면서 바울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겟세마네 기도를 기억하시지요?

26:36-4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신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26:39절에 보면, 예수님은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하셨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아시는 대로입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단락을 다 읽어보면, 주님께서는 그런 내용으로 세 번이나 기도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대로, 하나님은 예수님의 원대로 응답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응답되지 않는 것도 일종의 응답이라는 해석을 합니다.

 

바울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들어주시지 않았는데도, 고후 12:9절 하반절에 보면, 바울은 오히려 크게 기뻐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바울은 이렇게 생각한 듯합니다. ‘하나님은 육체의 가시를 없애 주시지 않고 그대로 머물게 하셨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게 하심으로써 바울 자신의 연약함을 분명하게 하셨다. 그렇지만 그런 약함 중에도 하나님은 바울 자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게 해 주셨다. 그리하심으로써, 바울 자신이 행한 모든 일들은 결국 자신의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하셨다라고요. 사실 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없애 달라고 기도한 목적이 무엇이었을까요?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기를 간구했던 바울의 모습을 생각하면, 분명 바울이 드린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의 일을 더 잘 감당할 수 있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있는 육체의 가시가 복음 사역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이 바울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바울 자신이 원하는 대로는 아니지만, 자신이 간절히 기도한 바를 실제로는 이루어 주신 셈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예수님 입장에서는 십자가를 지는 고난이 지나가기를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을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간절한 바람에 응답하시지 않고 자신을 십자가로 이끄신 하나님께 기꺼이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주님이 십자가를 피하고 싶어 하신 것이라고 보기 보다는 십자가를 지시는 일이 그토록 고통스러운 일이었음에 대한 호소였다고 보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그것이 정말로 하나님의 뜻인지에 대한 재확인을 하고 싶으셨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해 주시는 응답을 하신 셈인 것이지요.

우리 자신들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욕심을 채우고 우리의 욕심대로 쓰려고 잘못 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에는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4:3절에는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우리는 영적으로 아둔해서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엉뚱하게 불필요하거나 오히려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들을 인간적인 욕심을 따라 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은 것이 더 좋은 응답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경우에 우리의 요구대로 응답 받지는 못했지만,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유익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더 좋은 응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생각해 본 내용을 종합해 볼 때, ‘간절히기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기도하느냐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르게 기도하기 위해서 무엇을기도해야 하는지 기도할 내용도 배워야 하고, 또 그것을 어떻게기도해야 하는지 기도의 방법도 배워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 두 가지를 다 가르쳐 주셨고,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마7:7-11절은 기도의 방법, 기도의 자세에 관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도할 지에 대해서 가르치신 내용은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요? 그것은 마 6:5-15절에 나오는 주님 가르치신 기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누가복음

6:5-15

주기도

11:1-4

6:16-18

금식

 

6:19-34

보물 쌓을 곳과 근심에 대해

 

7:1-6

비판하지 말라

 

7:7-11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끈질기게 기도하라

11:5-13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마 7:7-11절 단락에 대해서도 누가복음에 있는 병행구절과 비교를 해 보면 중요한 관찰을 할 수 있습니다. [표에서 보시는 것처럼,] 누가복음에서는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가르치신 주기도에 바로 이어서 간절히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기도해야 한다는 기도의 방법에 대한 가르침이 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포기하지 말고 끈질기게 간절히 기도하라는 말씀은 아무것이나 우리 욕심대로 원하는 것을 그런 식으로 구하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주기도의 간구에 들어 있는 내용들이 이루어지기를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라는 뜻이라고 봄이 더 적절하겠습니다. 기도하실 때 오늘 본문 말씀대로 간절히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도하실 때 올바른 내용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실 수 있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들이 있는데, 어떻게 그런 고상한 기도만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주님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2-33).

 

마태복음 7:7-11절로 다시 돌아와서 이번에는 마태복음 자체의 문맥에서 이 단락의 역할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러려면 이 본문 앞에 나온 내용들이 무엇인지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6장을 보면, 구제, 기도, 금식, 하나님만 의지하고 염려하지 말 것에 대한 가르침이 나옵니다. 조금 더 앞으로 가서 5장의 내용을 보면, 살인, 간음. 이혼, 맹세, 보복, 원수사랑 등 6가지 율법의 가르침을 예수님이 새롭게 해석해 주신 내용들이 있습니다. 이 내용들은 율법을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온전히 성취하기 위해서 행할 필요가 있는 더 나은 의”(5:20)의 기준에 대한 설명입니다. 형제에게 아무런 욕도 하지 않고 사는 것, 성적으로 잘못된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사는 것, 항상 진실하고 거짓 없이 사는 것, 손해를 보더라도 되갚지 않고,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하며 살아가라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산상설교에 나오는 가르침이 실제로 우리더러 지키라고 요구하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까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나게 어려운 요구들을 가르치신 주님께서 그런 요구들 끝에 붙이신 내용이 마7:7-11절이라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힘으로 실천하기 불가능한 주님의 가르침 앞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주님은 7:7-11절 말씀을 통해, “그러므로 기도하라고 말씀해 주시는 듯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으니 그렇게 살 수 있는 힘을 달라고 끈질기게 기도하라. 그러면 주님께서 주님의 능력으로 그런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실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는 듯 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악한 세상 속에서 주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주일날 설교를 듣고, 또 성경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의 뜻을 찾으려 하지만, 그렇게 살다가는 우리 삶이 유지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바보라는 소리 듣기 딱 좋은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지키며 주님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능력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는 듯합니다. 주님께서는 마 19:2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7:12, 황금률>

 

이제 마지막으로 황금률에 대해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이 말씀이 명언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누구라도 이 말씀대로 살면 좋은 사람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너무 순진하게 문자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의도하지 않은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에게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적용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방식과 타 문화권에서 온 사람이 대접받고 싶은 방식은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황금률의 말씀이 의도하는 바를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황금률이 의도하는 바는 무엇이겠습니까? 나의 유익만 추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도 고려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남이야 어찌되든 나만 좋으면 된다는 식이 아니라, 남의 마음/남의 사정도 헤아리며 행동하라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살다보면, 나의 이익과 남의 이익이 상충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대답의 힌트를 마7:12의 병행구절인 눅6:31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동일한 황금률이 눅 6:31에도 나오는데, 누가복음의 황금률이 나오는 문맥은 마태복음과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황금률이(6:31) 원수 사랑과 보복 금지를 다루는 단락(6:27-35)의 중간에 나옵니다.

마태복음

 

누가복음

5:43-48

원수까지 사랑하라

6:27-30

6:31 (=7:12)

6:32-36

 

너희를 원수로 여기는 사람까지 사랑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도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을 위해 축복하고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너의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마라. 너에게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주며 너의 것을 가져가는 사람에게 다시 달라고 하지 마라.’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주님은 황금률을 말씀하십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그리고는,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면 무슨 칭찬이 있겠느냐 그런 일은 죄인들도 다 하는 일이 아니냐?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렇게 하지 않느냐? 하나님은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누가복음의 문맥에서 황금률은 자기 이익 계산을 뛰어 넘어 행동하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손익 계산에 따른 행동은 이방 죄인들도 다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황금률은 원래 자기 이익과 남의 이익이 상충하는 경우에 자기 이익을 포기하고 남의 이익을 더 앞세우라는 뜻을 내포한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즘같이 복잡한 사회에서는 이익의 충돌이 극한 대립을 낳고 그 결과 비극적인 사건들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끝없는 갈등과 반목의 악순환 속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들도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럴 때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황금률의 말씀을 기억하며 그 말씀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흐름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신선한 놀라움을 주고 세상을 이끌어 갈 수 있는 믿음의 선한 영향력을 보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미국이나 유럽에서 나타나는 자국 이익 우선주의를 보면서 걱정이 됩니다. 미국 대통령이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칩니다. 그러면서 삶의 주변부에서 고통 받는 이웃의 외침에는 냉정한 정책을 지향하는 듯합니다. 그런 선택이 현실에서 살아남는 지혜인지는 모르겠지만, 성경의 정신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대에 물들지 말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구별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남을 비판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먼저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이 쉽지 않은 길이지만,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기도하여 그렇게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유익과 남의 유익이 상충할 때에는 기꺼이 나의 유익을 포기하고 남의 유익을 우선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새 힘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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