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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마태복음 9:35-38
제목: 실천하는 믿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
설교: 이두희 목사

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도입>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를 잘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본문의 내용을 여러 가지로 분석도 해보고 공부도 하고 묵상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이 전해주는 메시지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용(what)만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복음서 저자가 그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how)에도 주의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서 저자가 어떤 말씀을 어떤 방식으로 배치하고 구성하여 우리에게 전해주는 지에도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복음서 저자가 그러한 본문의 구성과 배치를 통해서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본문의 구성 방식에 잠시 관심을 기울여 보고자 합니다.

<본문 짜임새를 통해서 살피는 메시지>

오늘 읽은 본문 9:35-38절까지의 말씀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요약구절에 해당합니다. 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의 여러 가르침과 행적을 기록해 나가는 중에 때때로 오늘 본문과 같이 예수님의 사역을 요약해서 정리해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9:35절에 의하면, 예수님의 사역은 한 마디로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쳐주시는 사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요약구절이 나오는 곳이 또 있습니다. 마 4:23-25절입니다. 4:23절은 9:35절과 거의 같은 표현을 사용하며 예수님의 사역을 요약해 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유사한 두 본문은 그 사이에 들어 있는 본문을 하나로 묶어서 연결해 주는 괄호와 같은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4:23절과 9:35절은 수미상관을 이루면서 그 가운데 들어 있는 5-9장의 내용을 한 단위로 묶어서 큰 틀에서 생각해 보도록 초대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짜임새
4:23-25 예수님의 사역 요약
5-7장 산상설교 (Words)
8-9장 예수님의 기적 모음 (Deeds)
9:35-38 예수님의 사역 요약

그런데 이 두 개의 요약 구절 사이에 들어 있는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부분은 5-7장에 해당하는 산상설교입니다. 산상설교는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이 여러 곳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설교하신 내용을 한 데 묶어 놓은 설교 모음입니다. 두 번째 부분은 8-9장입니다. 이 부분에 들어 있는 본문을 자세히 보시면,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에 대한 보도를 모아 놓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10가지의 기적 이야기가 이곳에 모아져 있습니다.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에서는, 여기에 기록된 기적 이야기들이 각각 따로 떨어져서 보도되고 있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8-9장에 나오는 기적 이야기들은 예수님이 여러 기회에 행하신 여러 기적들을 한 곳에 모아 기록해 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태는 왜 이렇게 예수님의 설교 모음인 산상설교를 5-7장에 배치하고, 예수님의 기적 모음인 8-9장을 산상설교 뒤에 나오도록 배치한 것일까요?

조금 전 살펴보았던 예수님 사역에 대한 요약구절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마태가 요약해 둔 것에 따르면, 예수님의 사역은 “가르치시고, 선포하시고, 고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선포하신 사역 곧 말씀으로 하신 사역을 먼저 산상설교에 모아서 기록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고쳐 주신 사역 곧 행동으로 그 말씀을 입증해 보이신 사역을 8-9장의 기적 모음 부분에 모아서 기록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관찰을 하나 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두 가지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말씀으로 하신 사역이고, 다른 하나는 행동으로 하신 사역입니다.
요즘 한국교회를 볼 때 가장 안타까운 것 하나는 교회에 말은 넘쳐나는 데, 실천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성도 개인으로 볼 때나, 교회적으로 볼 때나, 가장 큰 문제는 맞는 말 좋은 말을 하기는 하지만, 정작 그 말을 삶에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마태복음이 기록될 당시에도 사정은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은 유독 실천하고 행동하는 신앙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실천과 행동을 강조했다는 것은, 역으로 생각해 볼 때, 그만큼 그런 실천과 행동이 부족했다는 뜻이겠지요.

마태복음에서 실천하는 신앙을 강조한 본문을 몇 군데 찾아보면 마태가 얼마나 실천을 강조했는지 금방 확인할 수 있습니다.

①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② (마7:24, 26)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니라.”
③ (마21:28-31) “28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29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31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④ (마 22:11-14)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 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참고. 여기서 예복은 성도의 행실을 가리킴.]
⑤ (마 25:31-46) 양과 염소의 비유

쉽게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 본문만 해도 이렇게 많습니다. 그밖에도 더 세밀하게 분석을 해 보면 실천을 강조하는 마태의 의도가 드러나는 본문은 더 많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 5:17절에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5:20절에서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이신칭의 곧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해서 삶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어리석은 결론에 경종을 울리는 말씀들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더욱 그 행실을 은혜 받은 자의 모습에 걸맞게 하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 대해서도 중요한 책을 썼습니다. 수사학은 단순화시켜 정의해 보자면 ‘설득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효과적으로 설득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를 그의 수사학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 요소는 3가지입니다. 로고스, 에토스, 파토스입니다. 로고스는 설득의 내용을 가리키고, 에토스는 화자의 품성을 가리키고, 파토스는 청자의 마음 상태를 가리킵니다. 효과적인 설득을 위해서는 설득의 내용이 참되고 믿을만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전달하는 사람이, 자신이 전달하는 내용과 모순되지 않는 품성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내용을 상대방에게 설득시키려는 사람이 평소에 거짓말만 하는 사람이라면 설득에 방해가 됩니다. 그리고 화자는 듣는 사람의 마음에 감동이 일어날 수 있도록 호소력 있는 목소리와 몸동작을 구사하며 효과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효과적으로 작동할 때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의 의도에 맞추어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설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교를 자주 강조하는데, 선교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물론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편에서 역사해 주시는 일입니다. 한편 사람 편에서는 선교의 도구인 우리들이 선교의 장애가 되지 않도록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내용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에토스가 바르게 형성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에토스는 우리의 평소 행동에서 형성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한국교회 성도들이 복음의 내용을 깊이 깨달아 알기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복음대로 실천하는 삶을 잘 살아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말씀이 뜻 없는 소리로 끝나버리지 않고, 열매 맺는 케리크마, 선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그러면 이러한 믿음의 실천, 행동을 일으키는 출발점은 무엇일까요? 행동은 생각과 마음에 뒤따라 나오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생각,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른 생각을 가지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바른 마음을 갖기 위해 경건의 훈련을 합니다. 특히, 주님의 마음을 본받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이 품으셨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품으셨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그것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9:36절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고 합니다. 무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을 보셨던 까닭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어지는 9:37-38절에서, 제자들에게 명하시기를 추수하는 주인에게 요청하여 추수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하라 하십니다. 여기에 언급된 “추수”는 구약에서 흔히 최후 심판을 뜻하는 상징으로 쓰이곤 했습니다. (사17:5, 27:12; 욜 3:13). 신약에서도 그런 뜻으로 쓰인 경우들이 있습니다. (마3:12; 13:30, 39; 계 14:15 등). 그러나 지금 이 단락에서 “추수”는 무리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여 무리들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고 모아 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선교가 되겠지요. 그런 일을 할 일꾼들을 많이 허락해 달라고 기도할 것을 제자들에게 명하신 것입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은 무리를 보신 뒤에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리고 아프셨으면 이런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속히 목자 없는 양과 같은 무리들을 하나님 나라로 모아들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예수님이 품으셨던 마음을 표현하는 동사 ‘불쌍히 여기다’는 신약에서 총 12회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아홉 번은 예수님이 품으셨던 마음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두 번은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을 용서해 주는 주인의 마음을 표현할 때와 돌아온 탕자에 대해 아버지가 품었던 마음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두 경우는 비유 이야기로서 하나님의 마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번은 하나님이나 예수님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 아니고,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품었던 마음에 대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을 품었던 것으로 제시된 유일한 사람입니다. 눅 15:20절에서는 “측은히 여겼다”고 번역되어 있는데, 오늘 본문 마태복음에서 “불쌍히 여겼다”라고 번역된 단어와 원문은 같습니다.

① (마 9: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② 마14:14=③막 6:34 (오병이어 기적 단락 바로 앞 구절)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④ 마 15:32=⑤막 8:2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⑥ (마 18: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⑦ (마 20:34)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⑧ (막 1:41)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⑨ (막 9: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⑩ (눅 7: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⑪ (눅 10: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⑫ (눅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 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이 말씀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품으셨을 때, 치유가 일어납니다. 시각장애인의 눈을 뜨게 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죽은 자를 일으켜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품으셨을 때 오병이어의 기적이, 사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품으셨던 그 마음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마음속에 생겨났을 때, 강도 만나 거의 죽어가던 사람을 살리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사장도, 레위인도 외면하며 버려두고 갔던 강도 만난 사람, 그렇게 죽어갈 수밖에 없었던 강도 만난 사람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마음에 예수님이 품으셨던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겨났을 때 생명을 얻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누군가를 향하여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품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안에 이런 마음이 생겨날 때, 우리 가운데서도 주님께서 일으키셨던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서로를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서로 안에서 기적을 맛보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율법의 경계도 뛰어넘게 만듭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놀라운 기적의 역사로 이어졌다는 점에 주목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놀라운 기적의 역사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일어났던 파격적인 행동들입니다. 그 과정에는 율법의 경계를 허물고 뛰어넘는 행동들이 있었습니다.

① (마 9:29), 예수님이 두 시각 장애인의 눈을 만지시다
② (막 1:41),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다
③ (눅 7: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다
④ (눅 10: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제의적으로 볼 때 부정한 일로 간주되어 피해야 했던 일들이 예수님의 행동 속에,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행동 속에서 발견되는 점이 놀랍습니다. 바리새인들을 포함한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경계를 허물고 뛰어넘으시면서 하나님 나라가 어떠한 나라인지를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저는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종교적으로 규정된 교리의 울타리에 갇혀서 복음의 능력을 제한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서 부정함을 피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부정한 것마저 거룩하게 바꿀 수 있는 참된 거룩함, 능력 있는 거룩함이 우리 안에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생명, 새로운 통찰력, 새로운 말>

이제 다시 마태복음 본문으로 돌아와 봅니다. 오늘 묵상하도록 정해진 본문은 9:27-38절까지입니다. 9:35-38절과 관련해서는 충분하지는 않지만 앞에서 잠시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남은 본문 9:24-34절을 좀 살펴보려고 합니다.
9:27-34절에는 두 가지 치유 기적이 소개되는데, 하나는 두 시각장애인을 고쳐주신 기적이고, 다른 하나는 말 못하는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주신 기적입니다. 그런데 오늘 묵상할 분량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그 앞에 나오는 9:18-31절도 같이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8-9장에는 예수님이 행하신 10가지 기적이 적혀 있다고 말씀 드렸는데, 마태는 이것을 셋으로 나누어 전하고 있는 듯합니다. 먼저 8:1-17절에서, 세 가지 기적을 전해 줍니다. 나병환자를 고치신 기적(8:1-4),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신 기적(8:5-13),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신 기적(8:14-17)이 그것입니다. 그러고는 “나를 따르라”는 초청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그런 연후에 다시 세 가지 기적이 연속적으로 전해집니다.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신 기적(8:23-27), 귀신 들린 두 사람을 고치신 기적(8:28-34), 중풍병자를 고치신 기적(9:1-8)이 그것입니다. 그러고는 다시 중간에 “마태를 부르신 이야기와 금식 논쟁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그런 연후에 다시 세 가지 기적이 소개됩니다. 한 관리의 딸을 살리신 기적(9:18-26), 시각장애인 두 명을 고치신 기적(9:27-31),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신 기적(9:32-34)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관리의 딸을 살리신 기적 보도 중간에 혈루증 앓는 여자를 고쳐주신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어서, 기적의 숫자로는 4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 합쳐 10가지 기적이 8-9장에 걸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마 8-9장 짜임새

<첫 번째 기적 묶음>
① 나병환자를 고치신 기적(8:1-4),
②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신 기적(8:5-13),
③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신 기적(8:14-17)
삽입 1: “나를 따르라”(8:18-22)]
<두 번째 기적 묶음>
①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신 기적(8:23-27),
② 귀신 들린 두 사람을 고치신 기적(8:28-34),
③ 중풍병자를 고치신 기적(9:1-8)
● 삽입2: “마태를 부르신 이야기(9:9-13)와 금식 논쟁에 대한 이야기(9:14-17)”
<세 번째 기적 묶음>
① 한 관리의 딸을 살리신 기적(혈루증 여자를 고치신 기적)(9:18-26),
② 시각장애인 두 명을 고치신 기적(9:27-31),
③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신 기적(9:32-34)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세 번째 묶음에 포함된 세 본문을 같이 살펴보는 것이 마태복음 저자의 의도에 더 적절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 관리의 딸을 살리신 기적은 예수님이 죽은 소녀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기적에 해당합니다. 시각장애인 두 사람을 고쳐주신 기적은 새로운 눈, 새로운 통찰력을 주신 기적에 해당합니다.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신 기적은 새로운 말을 주신 기적에 해당합니다. 마태는 새로운 생명, 새로운 통찰력, 새로운 말을 주신 예수님의 기적을 함께 묶어 전하면서,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새로운 생명, 새로운 통찰력, 새로운 말을 주시는 분임을 깨닫도록 하고자 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새 생명을 소유한 자로서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가치관과 통찰력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새로운 언어로 믿음을 노래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끝맺는 말>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말로만 아니라 행동으로 우리의 믿음을 보여줄 수 있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품고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기 바랍니다. 새로운 생명을 주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새로운 통찰력과 새로운 말로 무장하여 믿음의 삶을 살아내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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