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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에는 경계가 없습니다 / 마태복음 15:21-28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이번 주 금요일은 삼일운동 10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인구의 1.3%밖에 되지 않았던 한국 교회가 삼일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16인을 차지하고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이끌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처음에 종교지도자들이 모여서 만세운동에 대해 논의하고서 민족의 대표자로 더 힘있고 영향력있는 사람들을 모으려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옛 조선왕조(대한제국)의 고관들을 비롯하여 여러 인사들을 접촉했지만 모두가 다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결국 처음에 발의를 했던 종교지도자들이 스스로 민족의 대표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는 천도교가 훨씬 더 교세가 컸고 대략 기독교의 10배정도인 200만의 교세를 가지고 있었다고 추산합니다. 재정적으로도 천도교가 더 여유가 있어서 삼일운동준비 과정에서 기독교계가 5000원, 오늘날로 하면 2억 5천만원을 천도교로부터 꿨다고 합니다. 최근에 어느 원로 사학자가 삼일운동에 대해 발표를 하면서 이제라도 기독교계에서 그 빚을 갚아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하여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기독교는 교세도 부족하고 자금도 부족했습니다. 가지고 있었던 것은 오직 믿음 뿐이었습니다.

당시에 천주교의 경우에는 대략 개신교의 절반 정도의 교세를 가지고 있었는데 선교사들과 신부들은 신자들의 독립운동 참여를 금지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사과하고 반성하는 글을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똑같이 서구의 선교사들에 의해 선교가 이루어졌고 선교사들의 영향력이 컸던 개신교 교인들의 40%가 삼일운동에 참여했다는 것은 당시 성도들의 민족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어떠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오늘 주보의 내지에 소개해드린 자료는 “독립단통고문”입니다. 33인중 한명이었고 상해임시정부에서도 활동을 하셨던 김병조 목사님이 편찬한 한국독립운동사력이라는 책에 실려 있는 글로서 당시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독립운동참여의 지침입니다.

“이날에 우리 백성들에게 통고문을 알리니 이르기를 우리 공경 존귀한 독립단 제군이여, 무슨 일이든지 일본 사람을 모욕하지 말고, 돌을 던지지 말며, 주먹으로 때리지 말라. 이는 야만인들이 하는 바이니 독립의 참뜻을 훼손할 뿐인즉 각자 주의하기를 바라며, 신도는 매일 세 번 기도하되 일요일은 금식하며, 매일 성경을 읽되 월요일은 이사야 10장, 화요일은 예레미야 12장, 수요일은 신명기 28장, 목요일은 야고보 5장, 금요일은 이사야 59장, 토요일은 로마서 8장으로 돌아가며 읽을 것이라 하였더라.”

여기에 분명하게 기독교의 비폭력 정신이 담겨 있고 독립운동에 참여하되 말씀과 기도로 준비하여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번주간에는 삼일운동 100주년 기념일 뿐만 아니라 27일에 또 한번의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번 주에 우리도 말씀과 기도로 우리 민족의 미래위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임하시기를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가나안 여인의 딸을 고쳐주신 예수님의 이적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사역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한 이방 여인의 간청을 거절하시고 심지어 이방인들을 개에게 비유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여러 가지 해석을 해보지만 어떻게 보면 그냥 예수님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기 위해 억지로 짜 맞추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큰 틀에서 보면 복음서라는 책은 그렇게 서로 모순되는 예수님의 일화들을 아무 생각 없이 모은 책이 아닙니다. 네 권의 복음서를 비교해보면 예수님의 여러 말씀과 사역 중에서 각 복음서의 저자가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선별하여 모아 정리한 흔적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서들도 그렇지만 마태복음도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는 분명한 선교명령으로 끝나게 됩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기록에서도 이방인들인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경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라 오히려 이방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며 예수님도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도 예수님이 이방인들을 차별하시고 은혜 베푸시기를 거부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한 가나안 여인의 딸도 고쳐주셨다는 것, 이방인들에게도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에 주목하여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첫구절을 보면 예수님이 먼저 이방인들이 사는 지역으로 가셨습니다. 우연히 이방여인과 마주치신 것이 아니라 일부러 이방인들이 사는 곳으로 가신 것이기 때문에 이 사건은 오히려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경륜이 나타나는 사건으로 보며 말씀을 깊이 살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민족들을 향해 열려있는 것이지만 복음 전파를 위한 하나님의 경륜의 때가 있었습니다. 구약시대가 지나고 신약시대가 온 것처럼 먼저 유대인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전달자가 되었고 하나님의 경륜의 때가 되어 이제 모든 열방을 향한 은혜의 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이 기록되던 당시에 이방인들이 중심이 되어가는 교회에서도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로마서를 보면 당시에 오히려 이방인들이 이제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버림을 받아 뽑혀져 나가고 이방인들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도 바울이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먼저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이 유대인들을 통해 나타났다는 것이고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천국의 백성이 되는 것은 아무런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베풀어주시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보냄을 받았다는 것을, 그러나 또한 이방인들도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신을 낮추며 온전히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문이 열려 있음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걸림이 될 수도 있지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주여 옳습니다”라고 말했던 이 여인의 고백은 제게는 많은 감동과 은혜와 도전을 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자존감이 너무나 높지 않습니까? 우리가 시험에 드는 이유는 늘 내 자존감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할 때에 상처받고 하나님이 나를 외면하시고 내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느낄 때에 시험에 듭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고 겸비하게 엎드린다면 내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 느낄 수가 있겠지만 내 스스로 대단한 존재로 여기기에 아무리 은혜를 주셔도 자신의 기대를 채우지 못하며 시험에 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감히 나를 이렇게 대하실 수 있는가, 그것이 늘 우리의 시험거리가 되었던 것은 아닙니까? 

신앙은 결국은 자기 자존감과의 싸움입니다. 우리가 내 자존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간절함이 있을 때에 진정한 믿음의 길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부끄러운 존재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연약하고 비천한 존재이기에 더욱 더 주님의 은혜가 간절히 필요합니다라고 고백할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앞에서 말씀드린 우리 민족의 이야기가 겹쳐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100년 전에 우리 민족의 처지는 그야말로 다른 열강들이 보기에 개만도 못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이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 그야말로 극동의 한반도에 까지 전파되었고 그 복음 안에서 이 땅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며 새로운 믿음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역사적인 순서로 말하자면 1907년에 평양에서부터 한반도 전체로 퍼져나간 대부흥운동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풍전등화와 같은 나라의 운명 속에서 전통적인 종교들이 백성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지 못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교회로 몰려 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가 경험하게 된 것은 1910년에 나라를 잃은 것뿐이었습니다. 제가 만일 그 시대에 살았다면 우리가 간절히 기도했지만 하나님이 은혜 베푸시기를 거절한 것과 같이 느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흉악한 귀신이 들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어 달라고 기도했던 저 가나안 여인처럼 저 흉악한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게 되었던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지만 우리에게 찾아온 것은 나라의 멸망이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었고 하나님의 자녀로 큰소리치던 민족들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영국, 프랑스, 미국 같은 나라들, 당시에 정점에 있었던 서구의 열강들, 오래된 하나님의 백성들임을 자랑하던 백인들에게만 한정된 것이고 이렇게 힘없는 아시아, 아프리카의 민족들은 예수를 믿고 은혜를 구해도 자녀의 상에는 끼어들어갈 수 없는 열등한 이류, 삼류 민족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삼일운동이 보여주는 것은 그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들의 처지가 다른 열강들이 보기에는 정말로 비참한 지경이라고 할지라도, 경멸받을 수밖에 없는 지위에 있다고 하더라도, 마치 하나님이 은혜 베푸시기를 거절하신 것 같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결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었고 하나님이 결코 우리의 간구를 외면하시지 않을 것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믿고 구하며 오히려 더욱더 크게 목청껏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것입니다.

원래 독립만세라는 것은 독립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외침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삼일운동의 독립만세는 어떤 정치적인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무슨 임시정부라도 세우고, 이제 우리도 독립했다라고 선언하며 만세를 불러야 할 텐데, 먼저 만세운동이 있었고 그리고 나서야 임시정부가 세워졌고 한참 후에야 진정한 독립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대한독립만세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간절한 부르짖음이었고 믿음의 선언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러한 믿음의 도전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더 이상 교회가 성장하지 않으며 교회가 이 세상을 향한 영향력도, 능력도 존경도 잃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을 떠난 것입니까? 하나님은 이제 우리를 버리셨습니까? 결코 그러실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믿음이 부족할 따름입니다.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며 이 땅의 교회들이 영적인 권세를 회복하고, 이 나라, 이 민족의 미래를 하나님이 은혜가운데 붙들어 주시기 위하여 기도하는 기도의 중보자들, 한 알의 밀알들이 필요합니다.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이든지간에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믿고 간구하는 곳에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경계도 없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 한 주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이 땅의 교회들과, 이 나라, 이 민족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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