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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왕 / 예레미야 34:1-5

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통치하에 있는 땅의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과 그 모든 성읍을 칠 때에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가서 유다의 시드기야 왕에게 아뢰어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이 성을 불사를 것이라
3 네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사로잡혀 그의 손에 넘겨져서 네 눈은 바벨론 왕의 눈을 볼 것이며 그의 입은 네 입을 마주 대하여 말할 것이요 너는 바벨론으로 가리라
4 그러나 유다의 시드기야 왕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네게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5 평안히 죽을 것이며 사람이 너보다 먼저 있은 네 조상들 곧 선왕들에게 분향하던 것 같이 네게 분향하며 너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슬프다 주여 하리니 이는 내가 말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

이탈리아의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마지막 황제”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2살에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던 선통제(宣統帝), 아이신교로 푸이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중국에서 최초로 자금성을 서방에 개방해서 촬영에 협조한 일화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2살밖에 안된 아기가 황제가 되어 즉위식을 하는 장면은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영화는 “황제에서 시민으로”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이 영화의 주인공 푸이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각색된 작품입니다. 제국의 멸망에 이은 격동의 시대를 살아왔던 비극의 주인공의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의 마지막 황제는 누구일까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대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입니다. 그는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고종이 일본의 압력으로 강제로 퇴위되고 황제가 되었다가 3년 만에 한일합방으로 폐위된 비극적인 왕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속의 시드기야가 바로 그런 왕이었습니다. 그는 다윗으로부터 시작되어 400여년을 이어온 왕조의 마지막 왕이었습니다. 이 시대는 마치 친일파, 친러파로 갈라져 있었떤 구한말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시드기야는 요시야의 아들이었습니다. 요시야는 유다의 왕들 중에서 히스기야와 함께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던 왕들 중의 하나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나라를 개혁했던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요시야의 시대는 앞서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앗수르가 쇠퇴하게 시작했던 시기였습니다. 당시에 앗수르의 세력이 약화되자 애굽과 바벨론이 서로 그 뒤를 이은 패권 다툼을 버리게 되었고 그 사이에 끼인 나라가 바로 다윗의 자손들이 다스리던 유다였습니다. 요시야는 앗수르의 세력이 약화되자 옛 북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팽창정책을 펼치다가 애굽과 부딪히게 되고 결국 애굽과의 전쟁에서 죽게 됩니다.

요시야가 죽은 후에 유다에서는 애굽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게 되었고 요시야의 아들 중에 애굽에 반대하는 성향을 지닌 여호아하스가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은 여호아하스를 달갑게 여기지 않아서 그가 왕이 된 지 3개월만에 애굽에서 쳐들어 와서 그를 애굽으로 끌고 갔고 요시야의 아들들 중에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워놓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바벨론에서 불만을 가지고 쳐들어옵니다. 바벨론의 침공 중에 여호야김은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들인 여호야긴이 왕이 되었지만 바벨론은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끌고 가고 대신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다고 생각하여 유다의 왕으로 세웠던 사람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드기야입니다. 시드기야도 요시야의 아들이었습니다. 한 세대 안에 외세의 간섭으로 자꾸 왕이 바뀌게 되었기 때문에 요시아의 아들들이 줄줄이 왕이 된 것입니다.

시드기야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나의 의로움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전혀 하나님의 의로움을 따르지 않았고 아버지가 걸어갔던 믿음의 길에서 벗어난 삶이었습니다. 그의 치세는 그야말로 우왕좌왕하고 갈팡질팡하던 시대였습니다.

시드기야는 바벨론이 세운 왕이었지만 바벨론을 견제하기 위해 당시에 쇠퇴해가는 애굽에 일말의 희망을 걸고 곁눈질을 하다가 결국은 바벨론의 화를 불러일으켜 멸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시드기야의 주위에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예레미야는 계속해서 바벨론이 모든 것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이기에 받아들이고 항복해야 한다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만이 선지자였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한편에는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켜주시니까 망하지 않는다,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던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와 같은 신앙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바벨론을 등에 업고 왕을 위협하며 바벨론에게 굴복하라는 친바벨론파가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애굽이 바벨론을 견제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친애굽파도 있었습니다. 이들 사이에서 시드기야는 여러 번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레미야서를 보면 한번은 예레미야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따라 예레미야를 가두었다가, 또 예레미야를 지지하는 신하들의 주장에 따라 예레미야를 풀어주기도 합니다. 예레미야를 반대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편을 들었다가 또 예레미야를 몰래 불러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물어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의 시대에 벌어진 최악의 사건은 종들을 풀어주었다가 다시 잡아들이게 한 것이었습니다. 바벨론이 공격해오고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겠다고 결의를 하고 그 증표로 종들을 풀어주었습니다. 원래 율법에 따르자면 다른 사람의 종이 된 사람들도 7년마다 오는 안식년이 되면 자유를 얻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종이 하나의 신분이 되어 대물림되는 것을 막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제도대로 그동안 시행되지 않았고 힘있는 사람들은 종들을 영원히 소유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의 공격으로 나라가 위태롭게 되자 자신들이 종을 풀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벨론의 종으로 만들려 하신다고 생각하여 종들을 풀어주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를 공격하던 바벨론의 후방에서 애굽이 공격을 하게 되어 바벨론이 잠시 물러가게 되자 시드기야와 당시의 귀족들은 자유를 주었던 종들을 다시 잡아들였습니다.

이 얼마나 어의없는 일입니까?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 같은 진실성이 없는 개혁은 시드기야 시대의 위기의 본질을 잘 보여줍니다. 믿음도 없고 진정한 회개도 없고 뭐가 잘못됐는지도 알지 못하고 애굽과 바벨론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우왕좌왕하다가 결국은 바벨론의 분노만 더 키우게 되어 유다 왕국은 완전한 멸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시드기야에게 주신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성은 무너지게 될 것이고 그는 사로잡히게 될 것이고 그가 입게 될 유일한 은혜는 칼에 죽지 않는 것, 그리고 백성들의 애도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것뿐이었습니다. 성경에는 바벨론에 의해 유다가 멸망하고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는 기록이 남아있지만 시드기야가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기록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드기야와 함께 다윗왕조는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벌어진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바벨론에게 멸망한 후에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은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패권을 차지한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의 칙령에 의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그때에는 왕이 없었습니다. 그 후에 다시 페르시아가 마케도니아에게 무너지고 유다는 마케도니아의 뒤를 이은 나라들의 각축장이 되었다가 한때 독립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다윗의 자손들이 아니라 레위지파인 제사장들이 정치적인 권력을 가지고 왕이 되어 다스렸습니다. 이 왕조를 하스몬 왕조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결국 그들도 로마에 의해 멸망하게 되고 로마는 유다를 헤롯가문에게 주어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헤롯가문은 거슬러 올라가면 유다의 조상인 야곱의 형제인 에서의 자손들이었기에 다윗의 자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다윗의 집안이 몰락하고 역사에서 사라진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말씀하셨고 예레미야와, 이사야, 스가랴 같은 선지자들은 다윗의 집안에서 새로운 의로운 가지를 일으키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 약속을 따라 다시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를 이루실 왕이 오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런 믿음을 메시야 사상이라고 부릅니다.

메시아 사상을 지닌 사람들의 기도와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신약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다윗의 자손 중에서 새로운 왕을 일으키셨음을 보게 됩니다. 마태복음의 첫 장에는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찾아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라고 묻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누가복음에서는 가이사 아구스도가 다스리던 때에 천사들이 나타나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고 선포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주”라는 말을 헬라어로 소테르(soter)라고 하는데 이 말은 당시에 황제들이 스스로를 가리키는 또 다른 칭호였습니다. 자신들의 대적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두어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왔다는 의미에서 붙인 칭호였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시는 장면에서 빌라도와 예수님의 대화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여기서 예수님은 분명하게 이 땅에 왕으로 오셨다고 선언하십니다.

복음서는 이 세상의 진정한 왕은 헤롯이나 아우구스투스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우리 왕이여”라는 찬양도 있지만 사실 우리는 예수님을 위로해 주시는 분, 사랑해주시는 분, 함께 하시는 분,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으로 여기기는 하지만 왕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부르기를 주저하는 것은 그 분이 다스리시는 나라가 권력과 다툼과 정쟁의 나라가 아니라 사랑의 나라, 평화의 나라, 섬김의 나라, 진리의 나라였고 우리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진정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우리가 섬기는 왕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 대신 죽으신 분이시며 다시 오셔서 이 땅에 사랑의 나라, 섬김의 나라를 완성시키실 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진정한 왕이며 이 땅에 오실 마지막 왕이십니다.

시드기야의 나라도 무너졌고 그 나라를 무너뜨린 바벨론도 무너졌습니다. 페르시아도 마케도니아도 로마도 다 무너졌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나라, 모든 권세는 무너지는 것이지만 오직 하나님의 나라의 권세만이 영원합니다. 우리는 이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그 분이 이 땅의 진정한 통치자이며 이 세상에 오실 마지막 왕이시며 그의 통치가 영원할 것을 믿고 기다리며 그 나라를 환영하고 영접하며 그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진정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분이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으로, 그 나라의 백성답게 사랑과 평화와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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