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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구덩이에서 끌어내라 / 예레미야 38:7-13

7 왕궁 내시 구스인 에벳멜렉이 그들이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음을 들으니라 그 때에 왕이 베냐민 문에 앉았더니
8 에벳멜렉이 왕궁에서 나와 왕께 아뢰어 이르되
9 내 주 왕이여 저 사람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행한 모든 일은 악하니이다 성 중에 떡이 떨어졌거늘 그들이 그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으니 그가 거기에서 굶어 죽으리이다 하니
10 왕이 구스 사람 에벳멜렉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는 여기서 삼십 명을 데리고 가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죽기 전에 그를 구덩이에서 끌어내라
11 에벳멜렉이 사람들을 데리고 왕궁 곳간 밑 방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헝겊과 낡은 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구덩이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밧줄로 내리며
12 구스인 에벳멜렉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이 헝겊과 낡은 옷을 당신의 겨드랑이에 대고 줄을 그 아래에 대시오 예레미야가 그대로 하매
13 그들이 줄로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끌어낸지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무니라

예레미야서는 예언서이지만 당시의 역사적인 상황을 역사서보다도 더 상세하게 전해줍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과 유리된 말씀이 아니라 당시의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주셨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세계는 대제국들이 연이어 들어서며 중동의 역사에 지각변동이 일어나던 시대였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는 위대한 시대였지만 그 당시에는 블레셋, 모압, 암몬, 에돔과 같은 대부분 도토리키재기하는 것 같은 나라들이 서로 경합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앗수르라는 대제국이 등장하면서 근본적인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앗수르는 당시에 알려진 모든 나라를, 저 남쪽의 애굽에 이르기까지 정복하여 중동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대제국을 세웠습니다.

우리 나라의 역사를 보아도 중국에 대제국이 등장하게 되면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늘 큰 고통을 당해왔습니다. 한반도에 세워진 첫번째 국가인 고조선도 중국이 통일이 되고 한나라라는 큰 제국이 등장하게 되었을 때에 결국 그들에 의해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약소국들이 대제국의 등장으로 얼마나 큰 두려움을 느껴야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앗수르에 의해 북이스라엘이 무너지고 앗수르의 군대가 남유다까지 쳐들어 오게 됩니다. 당시에 유다의 왕은 히스기야였는데 그 때에 하나님이 놀라운 기적을 베푸셔서 18만 5천명이나 되는 앗수르의 군대가 하루밤새 물러가게 되었습니다.

강성했던 앗수르도 결국 쇠퇴하고 그 뒤를 잇기 위해 애굽과 바벨론이 서로 각축을 벌이다가 결정적으로 바벨론이 다시 패권을 차지하게 되던 시대가 예레미야의 시대였습니다. 지난 주일에도 살펴본 것처럼 유다 왕국은 애굽과 바벨론 사이에 끼어서 우왕좌왕하다가 결국은 바벨론에게 정복당한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공격이 군사적, 외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며 율법에 따라 정의를 행하지 않은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임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많은 사람들, 왕들, 고관들, 제사장들,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지켜주신다고 믿었기에 예레미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귀기울여 들으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서 백성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적을 이롭게 하는 자라고 핍박하였습니다. 히스기야의 시대에 하나님이 앗수르를 물리쳐 주시고 예루살렘을 구원해 주셨던 것이 그들의 믿음의 근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시대에 예루살렘을 지켜주신 것은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기도하는 왕 히스기야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왕이 된 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졌던 유다를 다시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기 위한 개혁을 펼쳤습니다. 히스기야의 시대는 회개와 개혁의 시대였습니다. 무엇보다도 히스기야는 기도하는 왕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왕으로서 나라를 위해 기도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간절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후 100여년의 시간이 흘러서 예레미야의 시대에 등장하는 왕들 중에서 그나마 예레미야를 존중했던 왕은 시드기야였고 예레미야를 불러서 하나님의 뜻을 묻기도 하고 기도를 요청하기도 하지만 성경에는 단 한번도 시드기야가 기도하는 모습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시드기야의 마음 속에는 두려움이 가득하고 믿음이 없어서 상황에 따라 주위의 신하들의 의견에 따라 이리갔다저리갔다 할 뿐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가 구덩이에 갇히게 되었던 사건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많은 고관들과 종교지도자들에게 예레미야는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고 매국노였고 반역자로 보였습니다. 그들은 “이 성이 반드시 바벨론의 왕의 군대의 손에 넘어가리니 그가 차지하리라”고 예언하는 예레미야를 왕에게 고발하며 “이 사람이 백성의 평안을 구하지 아니하고 재난을 구하오니 청하건대 이 사람을 죽이소서 그가 이같이 말하여 이 성에 남은 군사의 손과 모든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예레미야 때문에 군사들과 백성들의 마음이 약해져서 바벨론을 이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강경하게 나오는 신하들을 설득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그가 너희 손 안에 있느니라 왕은 조금도 너희를 거스를 수 없느니라”였습니다. 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입니까? 너희 손에 있으니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말아닙니까? 마치 예수님이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대인들의 요구로 십자가에 못박게 내어주면서 자신은 상관없다고 손을 씻은 빌라도를 연상시키는 장면입니다.

이 시대의 역사를 보면 또한 마치 청나라의 대군에 의해 남산한성에 갇혀서 주화파와 주전파로 갈린 대신들 사이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던 인조를 생각하게 합니다. 결국은 군사들과 백성들이 큰 고통을 당하게 하다가 뒤늦게 항복을 하여 많은 고난을 자초했던 상황을 떠올리게 합니다.

왕의 허락을 받았다고 생각한 고관들은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집어넣었습니다. 성경에 자주 구덩이들이 등장합니다. 이 구덩이들은 기본적으로 우물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 우물도 종종 등장하지만 건조한 기후이기에 땅을 파서 물을 얻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구덩이를 파서 우기에 빗물을 저장했다가 건기에 그 물을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구덩이의 물을 다 사용하게 되어 비게 되면 다양한 용도로 사용이 되었는데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이렇게 사람을 가두는 감옥과 같이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창세기에서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넣었다가 애굽에 종으로 팔아버렸던 이야기는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갇혀 있던 구덩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 구덩이에는 물이 없고 진창뿐이므로 예레미야가 진창 속에 빠졌더라”(6절) 본래 물이 가득차있었다가 그 물을 거의 다 길러내어서 이제는 진창만이 남아 있는 상태의 구덩이였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 갇힌 예레미야는 앉을 수도 없고 누울 수도 없는 상태에서 먹을 것도 없이 고통 속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이들이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넣었다는 것을 그들도 하나님의 사람인 예레미야를 직접 죽이는 것이 두려웠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그래서 구덩이에 넣어놓아서 죽도록 방치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레미야를 죽이지 않았다, 구덩이에 넣어놓았는데 그가 죽어 버렸다”라고 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전한 것뿐 아닙니까? 그런데 이제 예레미야는 구덩이에 갇혀서 이렇게 죽게 되는 것입니까? 이런 일들이 당시에는 드문 일이 아니었기에 수렁에 빠지고 구덩이에 빠졌다는 말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기도 하였습니다. 시편 88편은 예레미야가 쓴 글은 아니지만 이런 상황에 있던 사람의 탄식을 들려 줍니다.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와 어둡고 음침한 곳에 두셨사오며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가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 주께서 내가 아는 자를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고 나를 그들에게 가증한 것이 되게 하셨사오니 나는 갇혀서 나갈 수 없게 되었나이다 곤란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

이 말씀을 통해 당시 예레미야의 심정이 어떠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레미야가 절망 속에서 기도할 때에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친 사람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 사람이 왕궁 내시 구스 사람 에벳멜렉이라고 말합니다.

구스라는 나라는 종종 에디오피아와 동일시되기도 하는데 지금의 이집트 밑에 있는 수단 지역에 있던 나라였습니다. 때로는 강성하여서 애굽을 정복하고 유다까지 쳐들어오기도 하였지만 당시에는 국력이 쇠퇴하여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나라였습니다. 그가 왕궁 내시라는 것은 그가 이방인이었지만 왕과 가까운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에벳멜렉이라는 이름은 “왕의 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스 사람인 그가 히브리어로 된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것이 그의 본명이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가 왕의 호의를 입어 왕궁에서 일하게 됨으로 왕이 내린 이름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제 유다의 사람이 되었으니 왕에게 충성을 다하라는 뜻인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왕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왕에게 실망하여 왕의 뒤에서 왕이 비겁하다고 욕만 하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왕이 허락했으니 예레미야를 죽게 내버려두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왕을 불의하게 만들고 왕의 명성에 더 큰 손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까? 에벳멜렉은 이방인이었지만 오히려 이 시대에 믿음의 모범을 보이는 사람이었고 왕의 종이었지만 하나님의 종이었고 진정한 충성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최근에 북미 지역에서 주목을 받은 세 편의 작품이 있습니다. 미국 영화인 서치(Searching),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Crazy Rich Asians)과 캐나다의 시트콤인 김씨네편의점(Kim’s Convenience)입니다. 이 작품들의 특징은 모두 아시아계가 주연을 맡고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영화에서 조연으로, 주변적인 인물로만 등장하던 아시아계 배우들이 주요 배역을 맡았고 특히 서치와 김씨네 편의점은 내용이나 등장인물에서 한국계가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이 작품들을 통해 그동안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아시아계가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북미에서 아시아계는 길게는 100년 이상의 이민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이제야 이런 작품들이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소수자로 살아가며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게 합니다.

구스인 에벳멜렉이 왕에게 예레미야를 이대로 방치해서 죽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은 왕의 호의에 힘입어 살아가는 소주민족인 그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그가 소수민족이었기 때문에 다수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상황을 분별하며 지혜롭게 판단할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에벳멜렉은 왕의 곁에 있던 사람으로서 왕의 고민을 알았고 왕이 가진 일말의 선의에 기대를 걸고 용기를 내어 예레미야를 이대로 죽게 해서는 안된다고 간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시드기야는 에벳멜렉의 말에서 용기를 얻어서 예레미야를 그를 구덩이에게 끌어내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에벳멜렉의 충심이 왕의 마음을 움직여서 선한 일을 하게 한 것입니다.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건져낼 때의 성경의 표현을 보면 에벳멜렉이 어떤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헌옷을 가져와서 먼저 예레미야에게 내려주어서 그것으로 겨드랑이에 대게하고 그 위에 밧줄을 걸게 해서 그동안 쇠약해진 그의 몸이 끌어올려지는 과정에서 상하지 않도록 배려할 정도로 세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세심함으로 그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왕의 마음을 살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선의를 이루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용기있는 사람, 따뜻한 마음이 있는 사람, 믿음이 있는 사람, 자신의 처지보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그 어두운 시절에도 등불과 같이 비춰서 하나님의 사람 예레미야를 곤경에서 건져내고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히스기야나 예레미야는 아니더라도 에벳멜렉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자리, 우리의 여건, 우리의 상황이 늘 불리한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크고 작은 영향력을 통해, 그리고 우리의 용기와 결단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선하신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오늘도 진정으로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우리의 인생 가운데, 우리가 속한 공동체 가운데, 우리의 이웃들에게 이루어가는 은혜가 모든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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