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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할 수 없었던 사람들 / 예레미야 43:1-7

1 예레미야가 모든 백성에게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 곧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를 보내사 그들에게 이르신 이 모든 말씀을 말하기를 마치니
2 호사야의 아들 아사랴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오만한 자가 예레미야에게 말하기를 네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는 애굽에서 살려고 그리로 가지 말라고 너를 보내어 말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
3 이는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너를 부추겨서 우리를 대적하여 갈대아 사람의 손에 넘겨 죽이며 바벨론으로 붙잡아가게 하려 함이라
4 이에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군 지휘관과 모든 백성이 유다 땅에 살라 하시는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5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군 지휘관이 유다의 남은 자 곧 쫓겨났던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유다 땅에 살려 하여 돌아온 자
6 곧 남자와 여자와 유아와 왕의 딸들과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맡겨 둔 모든 사람과 선지자 예레미야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거느리고
7 애굽 땅에 들어가 다바네스에 이르렀으니 그들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교회력으로 11월은 한 해를 마감하며 정리하는 때입니다. 12월이 되면 대림절이 시작되고 교회력으로 새로운 해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감사절은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며 정리하며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다리는 절기인 대림절은 성탄절을 준비하는 절기이지만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믿으며 미래의 소망을 바라보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감사는 은혜에 대한 고백이지만 또 한편으로 의무이자 부담이기도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의 말씀은 우리에게 소중한 가르침이고 은혜로운 말씀이지만 늘 의문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말씀입니다.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은 시간을 내어 기도에 힘쓰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고 어떻게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기쁨과 감사라는 것은 우러나와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기뻐할 이유가 없는데 어떻게 기뻐할 수 있으며 감사할 이유가 없는데 어떻게 감사할 수 있습니까?

성경의 66권 전체에서 감사라는 단어는 188개의 절에 등장합니다. 성경 전체로 보면 그리 많이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도 대부분은 시편에 등장하고 성경의 다른 책들에서는 슬픔과 절망과 두려움과 근심의 이야기들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성경에서 가장 감사와 거리가 먼 책이 예레미야서일 것입니다. 예레미야서는 우리가 그동안 보아온 것처럼 멸망에 대한 예언, 그리고 실제로 이루어진 멸망에 대한 기록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고 역사서에도 기록이 되어 있지 않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루살렘의 멸망 후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예레미야와 여러 선지자들이 경고했던 멸망이 찾아오고야 말았습니다. 바벨론의 군대가 1년 반동안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공격을 하여 결국 예루살렘성은 함락이 되었고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는 도망을 가다가 붙잡혔습니다. 많은 귀족들과 고관들이 죽임을 당했고 시드기야 왕과 남은 사람들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끌려가지 않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오늘 본문은 그들에게 일어났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드기야 왕과 여러 귀족들, 고관들, 바벨론이 보기에 쓸모 있다고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간 후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해 바벨론은 그다랴라는 사람을 총독으로 세웠습니다. 그는 바벨론 사람이 아니라 유다 왕국에 속했던 사람으로서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이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아히감이라는 사람은 유다의 역사에서 마지막으로 선한 왕으로 평가되는 요시야 왕의 시대에 요시야 왕의 명을 받아 유다를 개혁하고자 했던 의로운 인물이었습니다. 아히감은 예레미야를 대적하는 사람들로부터 지켜주기도 했습니다.

그다랴도 그 혼란스러운 시대에 흩어졌던 백성들을 다시 모으고 백성들을 위로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권한을 최대한 사용하여 비록 바벨론의 지배 아래에 있지만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신망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바벨론의 공격으로 흩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었고 희망의 조짐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다랴를 신뢰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찌되었건 그는 바벨론이 세운 인물이었고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는 바벨론의 앞잡이, 바벨론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지배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던 사람들 중에 그에 대한 암살 음모를 꾸미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왕족이었던 이스마엘이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바벨론을 적대시하던 유다 왕국의 이웃나라인 암몬 왕 바알리스의 사주를 받아서 그다랴를 죽이려 했습니다.

이 첩보를 알게 된 요하난이라는 사람이 그다랴에게 경고했고 자신이 먼저 이스마엘을 죽여서 화근을 없애겠다고 했지만 그다랴는 선한 사람이었기에 그 말을 신뢰하지 않았고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하난의 경고가 옳은 것이었고 결국 이스마엘에 의해 그다랴가 죽게 됨으로 유다는 다시 한 번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이스마엘은 유다에 남아있던 백성들을 끌고 암몬으로 도망가려 했지만 요하난은 이스마엘을 쫓아가서 백성들을 다시 되찾아 왔고 이스마엘은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암몬으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

이제 남은 요하난과 유다의 백성들은 혼란과 두려움 속에 있었습니다. 바벨론이 세운 총독이 죽었기 때문에 바벨론이 분명히 보복을 하러 올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들은 유다 땅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 당시의 상황에서 그들이 피할 곳은 바벨론의 적대국인 애굽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애굽으로 피난길에 오르게 되고 그때에 예레미야를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예레미야에게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하나님께 기도하여 알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들은 거듭해서 우리들의 갈길, 우리들이 할 바를 알려주면 그 길이 좋던지 좋지 않던지 순종하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예레미야는 열흘간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고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그 백성들이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유다 땅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애굽은 사실 유다의 백성들에게 안전한 피난처가 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애굽이나 바벨론이나 모두 유다를 침략하고 고통을 안겨주었던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애굽 사람들이 그들에게 피난 온 유다의 백성들을 선대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착각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고 당장은 바벨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곳에서도 큰 고통을 면할 수 없으리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게다가 애굽을 피난처로 여기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버리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뒤로 되돌리려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역사를 부정하는 불신앙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역사는 출애굽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광야생활을 통해 연단을 받고 훈련을 받아 가나안땅에 이르러 그 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나라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광야시절에도 조금만 어려움이 있으면 하나님을 원망하며 애굽으로 돌아가면 이보다 더 낳은 대접을 받았을텐데 왜 우리를 광야로 이끌어서 다 죽게 만드시냐고 했던 기록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들이 이제 애굽으로 내려가겠다는 것은 하나님이 인도하셔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이 땅이 더 이상 약속의 땅, 은혜의 땅이 아니라 절망의 땅, 고통의 땅이라는 불신앙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도 바벨론에 의해 큰 고통을 당하고 바벨론을 두려워하던 사람들은 그 땅을 버리고, 그 땅에서 주신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불신하고 다시 애굽으로 가려는 마음을 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유다 땅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셨고 하나님이 바벨론의 왕에게 긍휼을 베풀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때가 되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던 사람들도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고 그동안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던 그들의 죄의 값을 치르고 고난과 연단을 통해 새로워진 후에 다시 하나님의 은혜의 때를 열어주신다는 것을 이미 여러 번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을 보여줍니다. 그것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2절에 나와 있습니다. “네가 거짓을 말하는 도다.” 그들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는 예레미야의 권고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예레미야가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며 그 말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합니다.

분명히 어떤 말씀이든지 순종하겠으니 하나님의 뜻을 알려달라고 예레미야에게 부탁했던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그들의 생각과 다른 말씀이 전해지자 그 말씀을 거부하고 예레미야가 거짓말을 한다고 몰아붙였습니다. 성경은 그들을 오만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자신들의 아집에 빠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생각만을 고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종하지도 않을 것을 왜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까?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만을 찾는 것이라면 그것이 진정한 신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가장 복된 길임을 믿고 있습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내 생각을 포장하며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 이루는 것이 신앙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이 말씀을 읽으면서 참으로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그렇지 않은가, 자신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을 동일시하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완고함이 우리들에게도 있지 않은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왜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다시 말씀을 읽어보면서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들만큼 감사와 멀어져 있는 사람들이 또 있겠습니까? 그들은 그동안 극심한 고통을 당했고 이제도 혼돈과 절망, 불안과 두려움 속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여기에 머물러 있으라는 것은 다 죽으라는 말처럼 들렸던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이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면 왜 하나님은 애굽으로 피하지 말고 그곳에 머물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들은 혼란스럽고 두려움 속에 있었지만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을 해보아야 했습니다. 어찌되었건 그들은 그 고난의 때를 견디고 남은 자들이 아닙니까? 많은 사람들이 죽고 고향을 떠나 사로잡혀갔는데 그들은 여전히 남아있지 않습니까? 이미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었던 사람들, 하나님의 긍휼함을 입은 사람들이 아닙니까?

예레미야 애가에는 이런 예레미야 선지자의 기도가 나옵니다. “주께서 내 심령이 평강에서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내어버렸음이여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예레미야도 그 고통의 시간을 백성들과 함께 했고 “고초와 재난”을 당하여 “쑥과 담즙”같은 쓰라림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마음에 담고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그러면서 남은 자가 있다는 것, 우리가 진멸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긍휼의 증거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일제시대의 애국지사이며 성서조선을 간행하여 조선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우고자 했던 김교신 선생의 글 중에 조와(弔蛙), 즉 개구리들을 애도함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 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가 기도하던 기도처가 연못 곁에 있는 반석이었는데 그 곳에서 그를 반겨주었던 개구리들이 있었습니다. 겨울이 되어 개구리들이 동면을 하러 가서 사라진 후에 봄날이 되어 얼음이 녹을 때에 그들의 안부를 확인해보았는데 여러 마리가 죽어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개구리들을 매장해주었는데 몇 마리가 아직 살아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의 글은 이렇게 마칩니다. “연못 바닥에 아직 두어 마리가 기어 다닌다.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

일제는 이 글을 보고 이 글이 실린 성서조선을 폐간하고 김교신 선생을 잡아가두었습니다. 전멸을 면한 개구리들, 그것이 조선의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애굽으로 가려던 사람들이 깨닫지 못했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아직 희망이 남아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들에게 닥친 운명을 피할 수 없는 무력하고 나약한 자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능히 그 땅에 닥친 고난을 이겨낼 수 있으며 하나님의 연단의 세월이 그들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며 다시 하나님의 은혜의 때가 임할 것이라는 약속이 그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예레미야서가 감사와는 가장 먼 책이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예레미야서에 감사라는 말이 나오는 구절이 한 군데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33장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가리켜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다 하던 여기 곧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고 짐승도 없던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성전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를 돌려보내어 지난 날처럼 되게 할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이 황폐해진 땅에 다시 은혜를 베푸셔서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고백이 있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내가 지금 어떤 상황 속에 있던지간에, 그 속에서도 내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쌓아올렸던 거짓되고 헛된 세상의 영화가 무너진 곳에서, 우리가 낮아지고 겸손하게 된 자리에서 하나님의 진정한 은혜와 긍휼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것, 우리를 통해 이루실 구원의 약속을 믿는 것, 그래서 미래의 감사를 지금 바라보고 기대하며 우리의 기도 속에서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미래에 감사의 제목들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도록 우리를 붙드시고 다시 일으켜 주실 것이고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감사의 제목들을 지금 믿음의 결단으로 앞당겨 고백할 수 있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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