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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이 함락되었도다 / 예레미야 51:37-44

37 바벨론이 돌무더기가 되어서 승냥이의 거처와 혐오의 대상과 탄식거리가 되고 주민이 없으리라
38 그들이 다 젊은 사자 같이 소리지르며 새끼 사자 같이 으르렁거리며
39 열정이 일어날 때에 내가 연회를 베풀고 그들이 취하여 기뻐하다가 영원히 잠들어 깨지 못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40 내가 그들을 끌어내려서 어린 양과 숫양과 숫염소가 도살장으로 가는 것 같게 하리라
41 슬프다 세삭이 함락되었도다 온 세상의 칭찬 받는 성읍이 빼앗겼도다 슬프다 바벨론이 나라들 가운데에 황폐하였도다
42 바다가 바벨론에 넘침이여 그 노도 소리가 그 땅을 뒤덮었도다
43 그 성읍들은 황폐하여 마른 땅과 사막과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되었으니 그리로 지나가는 사람이 없도다
44 내가 벨을 바벨론에서 벌하고 그가 삼킨 것을 그의 입에서 끌어내리니 민족들이 다시는 그에게로 몰려가지 아니하겠고 바벨론 성벽은 무너졌도다

헨델이 작곡한 오라토리오 “메시야”는 이사야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에서 발췌한 가사로 우리의 구원자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작품입니다. 메시야의 오심에 대한 예언과 예수님의 탄생,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 재림과 최후의 심판등이 모두 들어 있어서 성탄절이 가까이 올 때에 자주 연주됩니다. 그런데 메시야 공연에는 하나의 전통이 있는데 2부 마지막에 있는 합창곡인 “할렐루야”가 연주되는 동안에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영국 왕 조지 2세가 런던에서 메시야가 처음 공연될 때에 관람을 하다가 할렐루야를 연주할 때에 감동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났고 왕이 일어났기에 다른 사람들은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모두가 일어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가 정말로 역사적으로 사실인지는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이야기가 있고 그것을 사람들이 그럴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자체도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영국의 왕이 누군가 다른 사람이 이 세상을 왕으로 통치한다는 가사를 듣고 감동을 받고 경외심을 표현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의 가사는 요한계시록에 있는 말씀을 그대로 인용한 것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요한계시록 19:6)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계시록 11:15)”

예를 들어서 일제시대에는 그리스도인들도 일본 황제를 경배하도록 동방요배를 강요하고 신사참배를 강요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다시 오실 왕이라는 내용의 찬송가라든지 옳은 길 따르라는 내용, 예수님을 임금이라고 하거나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라는 내용의 찬송가들은 부르지 못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영국 왕이 할렐루야의 가사를 듣고 감동을 받았다는 것은 그 나라와 그 시대가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일어나기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의 예언서의 마지막 부분에 바벨론의 멸망을 선언합니다. 그런데 그의 시대는 바벨론이 당시에 알려진 세계의 대부분을 정복하고 지배하던 시대였습니다.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도 바벨론에 의해 함락당하고 많은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멸망의 이유에 대한 해석입니다. 바벨론이 강해서 나라를 잃은 것이라면 지금 바벨론에게 복종하며 이후의 삶을 도모하는 것이 지혜로울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와 선지자들은 그들이 멸망한 것이 바벨론이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이며 바벨론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벨론도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이 세상의 권세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오직 하나님만이 영원한 권세를 가지고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심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죽기까지 바벨론이 망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벨론이 함락되었다”는 과거형의 표현은 확정된 미래에 대한 선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이미 무너진 것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당시에 바벨론은 과거의 역사거나 어떤 문화적인 상징이 아니라 살아있는 권력이었습니다. 바벨론의 권세가 하늘을 찌를 때에 이와 같은 예언을 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자신의 목숨까지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일제시대에 일본이 멸망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와 다른 많은 선지자들이 주저없이 이 세상 권세는 결국은 다 멸망하고 말 것이며 오직 하나님의 통치만이 영원한 것임을 선언하였습니다.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선언은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예언이었고 믿음의 선포였고, 역사는 그 예언대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은 궁극적으로 이 세상은 누가 다스리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제기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마지막 부분에 바벨론의 함락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계시록 18:2)

바벨론은 요한계시록이 기록되기 600년 전에 무너졌는데 이런 말씀이 기록된 이유는 요한계시록에서 바벨론이 당시에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로마제국에 대해서 복음전파의 관점에서 평가를 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로마의 군인들과 관리들은 치안유지를 위해서 유대인들의 부당한 핍박에서 바울을 구해주었기 때문에 로마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네로황제 이후로 로마제국이 황제 숭배를 강요하며 그리스도인을 핍박하게 되었을 때에는 로마가 바벨론과 같이 멸망할 것이며 네로 황제는 적그리스도와 동일시하여 비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궁극적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로마도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 있으며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존재임을 선언하고 더 나아가 바벨론과 로마로 상징되는 모든 악하나 권세들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성탄절에 자주 듣게 되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탄생 기사에 당시 로마를 다스리던 가이사 아구스도, 즉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등장합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으로 로마제국의 백성들에게 호적을 등록할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들에서 양들과 함께 밤을 보내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이렇게 노래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여기서 구주라는 말은 헬라어로 소테르(soter)라고 하는데 이 말은 이 세상의 구원자를 자처하던 로마의 황제들이 자신들을 가리킬 때 자주 사용하던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는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복”(euangelion, good news)이라는 말도 로마시대에 황제의 승리, 혹은 새로운 황제의 등극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주전 9년에 기록된 로마의 한 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은 우리에게 관심과 열심을 쏟고 우리의 삶 전체를 섭리로 인도해왔다. 이제 신은 사람의 삶을 위한 가장 완전한 완성의 모습을 섭리로 정하셨는데 그 완성의 과업을 아우구스투스에게 넘기셨고 사람들 안에서 보호자의 일을 수행하기 위한 덕으로 그를 채우셨고 우리와 후세들을 위한 구원자를 그 안에 보내셨다. 이를 통해 전쟁이 멈출 것이며 도처에 질서를 가져올 것이다. 그 신(아우구스투스)의 출생은 그를 통해 사람들에게 미칠 기쁜 소식, 세상을 위한 기쁜 소식의 시작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가 이 세상의 지배자인가, 누가 이 세상에 진정한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가라는 질문에 그것은 로마의 황제가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시라는 믿음의 고백을 가졌고 그 고백이 그들에게는 박해의 원인이 되었고 또 박해를 이겨낼 힘이 되었습니다.

2세기의 기록 중에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편지”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 글은 한 익명의 그리스도인이 디오그네투스라는 로마의 고관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당시에는 이미 사도들은 다 세상을 떠났고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점점 심해지던 시대였지만 이 글은 여전히 그리스도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믿음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됩니다. 이 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나라나 언어나 습관들로 보면 다른 사람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세운 도시에서 따로 살지 않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자기들만의 언어를 쓰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삶의 방식을 따르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 나라에서 살지만 오직 이방인으로 삽니다. 그들에겐 모든 외국이 자기들의 조국이고 자기들의 조국은 모두 외국과 같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처럼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지만, 그들은 자녀들을 내다 버리지 않습니다. 집을 개방하고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지만 침실을 나누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육신 안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육신대로 살지는 않습니다. 이 땅에서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그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들은 정해진 법들을 준수할 뿐 아니라, 그들의 삶 속에서 법이 요구하는 그 이상의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지만 모든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여전히 정죄를 합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죽이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살리십니다. 그들은 가난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부요케 합니다. 그들의 궁핍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지만 동시에 말할 수 없는 풍요를 누립니다. 그들은 경멸을 당하지만 경멸하는 자를 향해 복을 빌어 줍니다. 멸시를 당할 때 그들은 여전히 멸시하는 자에게 합당한 존경을 잃지 않습니다. 그들은 선을 행하고 악인으로 처벌을 받습니다. 처벌을 감내하면서도 그들은 즐거워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 그들은 외국인이나 적으로 취급받습니다. 그리고 그리스인들에게 그들은 사냥감처럼 뒤쫓김을 당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는 이들은 미워하는 순간에도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할 만한 이유를 찾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제국 안에서 살았지만 그들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는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 글에도 나타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당시에 영야유기가 일상화되어 있어서 별다른 가책이 없이 자신이 원하지 않던 아이가 태어나면 내버렸던 문화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최고의 오락은 두 사람에게 칼을 쥐어주고 죽을 때까지 싸우게 하는 폭력적이고 비윤리적인 검투경기였고 성적으로도 문란하던 문화가 퍼져 있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검투사의 경기를 반대하고 성적으로 단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당시의 문화를 따르기 보다는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았기에 어떤 이들에게는 위협이 되고 도전이 되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칭송의 대상이 되었고 박해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여러 가지 권세 아래에서 살아갑니다. 정치적인 권세 뿐 아니라 경제적인 권세, 문화적인 권세 아래에서 살아가지만 오늘도 우리는 우리가 누구를 섬기는지 어떤 법을 따라 살아가는 존재인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대림절을 보내며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고 이 세상의 진정한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맞이하고 섬기는 우리의 신앙의 자세를 가다듬는 시간이 은혜로운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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