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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법이 나를 살게 하십니다 / 시편 119:89-96

89 여호와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90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91 천지가 주의 규례들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까닭이니이다
92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93 내가 주의 법도들을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 때문에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94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들만을 찾았나이다
95 악인들이 나를 멸하려고 엿보오나 나는 주의 증거들만을 생각하겠나이다
96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들은 심히 넓으니이다

2019년 새해에 여러분들은 어떤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계십니까? 우리는 새해를 시편 119편을 묵상하며 시작하고 있습니다. 시편 119편은 176절이나 되기 때문에 새해의 첫 두주를 계속해서 시편 119편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편 119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에 대한 도전을 주는 말씀입니다.

시편 119편은 히브리어의 22개의 알파벳의 순서에 따라 각각 하나의 문자로 8개의 절씩 시작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구조를 가진 것은 알파벳의 순서를 기억하며 암기하기 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76절이나 되는 긴 시이지만 이 시를 잘 외우라고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시가 매 절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상응하는 표현들을 빠짐없이 사용하고 있어서 집요하리만큼 철저하게 반복적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소중함을 상기시켜주고 있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새해를 맞이하면서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서의 저의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예전에 했던 설교를 종종 찾아보면 예전에 했던 설교가 지금보다 더 내용이 풍성했었다는 것을 느끼곤 하면서 제 스스로 소재가 고갈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부족함을 절실히 깨달으면서 좀 더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업그레이드해야 하겠는 다짐을 해봅니다. 그러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앞으로는 좀 더 지겨운 설교를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합니다. 늘 새로운 말씀을 전하는 것도 좋겠지만 말씀대로 성도님들이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지겹게 반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깊이 새겨지고 그 말씀대로 성도님들의 삶이 변화되도록 끝까지 권면하는 것이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여러분 모두를 섬기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들을 타락시킨다는 모함을 받고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재판정에서 자신을 변호하며 한 말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는 책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그 책에서 그는 자기 자신을 아테네 시민들의 “등에”라고 함합니다. 등에는 피를 빨아먹는 쇠파리를 가리키는 것인데 아테네 시민들이 게으름에 빠지지 않도록 각성시키고 자극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목사도 일종의 영적인 등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집요하게 일관성을 가지고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도록 권면하는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제 머리 속을 늘 맴도는 세 가지 단어는 “말씀” “기도” “선교”입니다. 이 세 가지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요체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 세 가지를 늘 강조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 가지는 우리 교회의 세 가지 표어와도 연결이 됩니다. “성령의 임재가 가득한 교회”는 늘 말씀과 기도에 힘쓰는 교회이고 나눔과 섬김이 풍성한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함께 은혜를 받고 또 은혜를 전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참여와 헌신이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올해 첫 3주간을 말씀, 기도, 선교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논어에는 공자의 제자인 증자가 한 “일일삼성(一日三省)”이라고 알려진 말이 있습니다. 증자는 날마다 “남을 위해 일을 도모함에 있어서 충실하였는가” “벗과의 사귐에 있어서 신실했는가” “배운 것을 잘 익혔는가”라는 기준으로 스스로를 날마다 돌아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으로 우리의 삶을 반성하고 평가하겠습니까? 저는 우리가 “오늘 하루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가까이 했는가” “나는 얼마나 말씀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했는가” “나는 얼마나 복음을 전하고 은혜를 전하는 삶을 살았는가”라는 기준으로 매일 매일의 삶을 반성할 수 있다면 올해 한해가 더 풍성하고 은혜로운 한해가 되지 않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말씀의 소중함에 대해 전하면서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아왔던 공동체들에 대해 전하고자 합니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아미쉬(Amish)”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17세기에 스위스의 메노나이트(mennonite)였던 야곱 암만(Jakob Ammann)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메노나이트는 종교개혁 당시에 등장한 재세례파(재세례파)에 속하는 교파인데 멘노 시몬스(Menno Simons)라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메노나이트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공동체로 살아가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데 있습니다.

아미쉬 공동체는 단순한 생활, 검소한 의복, 순종과 겸손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고 개인주의와 교만을 경계하는 삶의 태도 등으로 잘 알려져 있고 경쟁을 부추기고 인간의 노동의 가치의 소중함을 훼손시키는 현대문화를 따르지 않고 현대문명의 이기의 사용을 거부하기 때문에 아미쉬 공동체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면 지금도 마차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와 가정을 중심으로 한 소박한 생활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미쉬 공동체의 영적인 능력이 어떠한 지가 나타난 사건이 2006년에 있었습니다.

2006년 10월 2일 미국 펜실베니아 주에 있는 한 아미쉬 공동체에서 총기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괴한이 아미쉬 공동체의 학교에서 학생들을 인질로 잡았고 그 중에서 5명의 여학생을 총으로 쏴서 숨지게 하고 자신도 자살을 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일이 있은 후에 희생자의 가족들이 이 살인자의 가족들을 찾아가서 위로했고 이 살인자의 장례식에 30명이나 되는 아미쉬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참석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이러한 태도에 대한 비판도 있었습니다. 이런 태도가 죄를 덮어주고 정의의 원칙을 훼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죄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이 죄악의 결과가 희생자의 가족들과 살인자의 가족들 모두의 미래를 망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행동을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살인자의 아내가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우리 가족을 향한 여러분들의 사랑은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치유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주신 선물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만큼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여러분들의 긍휼은 우리 가족을 넘어 우리 공동체를 넘어 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아미쉬 공동체는 어려서부터 자녀들에게 누구에게도 원한을 품지 않도록 가르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았던 사람들을 믿음의 영웅으로 가르칩니다. 그들이 존경하고 삶의 모범으로 삼는 사람들 중에 더크 빌렘즈(Dirk Willems)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16세기 네덜란드의 순교자인데 자신의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아 감옥에 갇혔다가 탈옥을 하여 도주하게 되었습니다. 얼음이 언 연못 위를 건너가는데 그를 잡으려고 따라오던 간수가 얼음이 깨지면서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사실을 알게 되자마다 즉시 돌아가서 그를 물에서 꺼내주었고 이렇게 지체하다가 뒤따라온 다른 간수들에게 붙잡혀서 결국 순교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여러분의 신앙의 영웅으로, 모델로 삼으십니까? 이런 사람들을 여러분들의 영웅으로, 모델로 삼으며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아미쉬 공동체는 더크 빌렘즈와 같은 사람들을 그들의 삶의 모델로 삼으며 그렇게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그런 가르침 속에서 살았기에 그들에게 찾아온 끔찍한 비극 속에서도 용서를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들려드리고자 하는 이야기는 독일에 있는 경건주의 신앙을 가진 모라비아 교도라고 알려진 공동체입니다. 감리교를 창시한 존 웨슬리는 일찍이 아메리카 대륙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선교사로 헌신을 했습니다. 당시에 아메리카는 아직 독립하기 전인 영국의 식민지였고 그 곳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많은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아메리카로 가는 배를 타고 항해를 할 때에 그 배에는 독일에서 신대륙으로 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라비아 교도라고 불리는 신앙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었는데 힘든 항해 속에서도 늘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배가 큰 폭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때 경험한 일을 이렇게 그의 일기장에 적었습니다. “그때 영국인들은 비명을 질러댔지만 독일인들은 조용히 찬미하기를 계속하였다. 그 일이 있은 뒤 나는 한 사람에게 ‘무섭지 않나요?’라고 물었더니 그는 ‘아니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계속해서 ‘그러나 당신네 부인들과 아이들은 두려워하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아닙니다. 우리네 부인들과 아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웨슬리는 이들의 신앙에 크게 감명과 도전을 받았고 후에 신대륙에의 선교사역에서 실패하여 낙심하며 돌아왔을 때에 독일로 모라비아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을 찾아 가서 그들로부터 배우고 새로운 신앙의 각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들려드리고자 하는 이야기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범입니다. 로마제국 시대에 교회는 큰 박해를 받았지만 믿음을 지켜오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신앙은 당시에 로마제국에 큰 전염병이 확산이 될 때에 더욱 그 빛을 발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가족들을 버리고 도망갔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가족과 성도들을 버리지 않았고 버림받은 이웃들까지도 정성껏 치료하고 섬겼습니다. 당시에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였던 디오니시우스는 다음과 같은 글로 당시에 일어났던 일을 증언합니다.

“많은 이들이 다른 이를 간호하고 치유하다가 사망을 자신에게로 옮겨와 대신 죽음을 맞았습니다. 우리 형제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중에는 크게 칭찬 받는 장로와 집사와 평신도들이 있었습니다. 큰 경건과 강건한 믿음의 결실인 이런 죽음은 어느 모로 보나 순교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 세 공동체의 이야기 속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이렇게 삽니다”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용서와 사랑의 삶,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의 삶이 어떤 특정한 사람들의 특별한 모습이 아니라 그들이 속한 공동체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공유하는 가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 것은 그 말씀대로 살아갔던 사람들이 우리가 믿는 신앙의 가치를 입증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은 2000년을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과학의 법칙이 진리인 것은 그것이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실험으로 검증되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 어느 곳에서나 동일한 조건에서 예측한 것과 동일한 결과가 나올 때에 그 법칙은 입증이 되고 그것을 진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역사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입증하는 수많은 증거들, 증인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과 모범대로 살아갔던 사람들이 우리의 영웅이고 우리의 모델이고 우리의 희망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은혜가 필요하고,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나라와 우리의 삶과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 기도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이란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나는 예수믿는 사람이다”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이 세상에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눈치를 보지 말고 세상 사람들과 다른 길을 가더라도 나는 예수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부정한 길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당당함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43년을 맞이하는 우리 현대교회 공동체의 가치관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로 스며들어있는 삶의 방식, 삶의 습관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떻게 신앙 공동체로서 우리 교회가 함께 공유하는 신앙적인 가치관을 세워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 현대교회 성도들은 이렇게 삽니다. 우리는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우리는 용서합니다. 우리는 사랑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어려분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등에처럼 괴롭히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올해부터 매달 한 구절 씩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현대교회를 10년을 다니면 120 구절을 외우게 될 것이고 새가족이 오면 “우리는 이 정도는 다 외우고 있어요” 라고 말할 수 있고 바라기는 “그리고 우리는 이 말씀대로 살아요”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살게 하신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우리를 살리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면 하나님이 말씀이 우리 자신의 본 모습을 정직하게 보게 하시고 우리를 겸손하게 하셔서 교만의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불의한 유혹이 우리의 인생을 넘어뜨리려 할 때에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분노와 상처가 우리의 인생을 삼키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낙심과 좌절로 모든 희망을 잃어버리려 할 때에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혼돈과 불안에 빠져들어가는 우리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그리고 용서와 사랑의 기쁨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올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삶에 새겨서 그 말씀대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지키고 우리를 살리심을 경험하는 복된 한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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