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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자 / 로마서 11:1-5

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3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ㄴ)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영국의 대문호 세익스피어의 대표적인 희극 중에 베니스 상인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친구를 위해 고리대금업자인 유대인 샤일록에게 보증을 섭니다. 해외에 무역을 하러 나간 안토니오의 배가 곧 돌아올 것이니 그 수익으로 지불을 보증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평소에 안토니오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샤일록은 이자를 받는 대신에 돈을 기일 내에 갚지 못하면 안토니오의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부위의 살 1파운드를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줍니다.

그런데 돈을 갚아야 하는 기일이 다 되었는데 안토니오의 배가 풍랑을 만나 파선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안토니오는 돈을 갚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1파운드의 살을 도려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계약의 이행건으로 법정이 열리는데 이제 결혼을 해서 부자가 된 안토니오의 친구가 자신이 대신 두 배로 갚겠다고 했지만 샤일록은 그 제안을 거부하고 끝까지 1파운드의 살을 받아야 한다고 고집합니다. 재판장은 (사실은 후에 이 재판장이 안토니오의 친구의 아내였다는 것이 드러나는데) 이 계약이 적법하다고 인정하지만 계약 조건대로 살만 도려내야 하지 절대 한 방울도 피를 흘리게 해서는 안된다는 단서를 답니다. 샤일록은 결국 살을 잘라내려는 생각을 포기하고 돈으로 대신 받겠다고 말하지만 재판장은 그가 이미 그 제안을 그가 거부했다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오히려 베니스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이방인의 재산을 몰수한다는 법률을 적용하여 샤일록의 재산을 몰수하고 처벌하게 합니다. 결국 안토니오의 간청으로 샤일록은 용서를 받지만 기독교로 개종하고 모든 재산을 기독교인과 결혼한 자신의 딸에게 유산으로 물려주게 되고 안토니오의 배도 무사히 돌아오게 되며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대표적인 권선징악의 이야기이지만 또한 신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은혜와 율법의 길을 대조하며 은혜를 베풀기를 거부하고 율법을 고집하는 사람에게는 율법대로 긍휼없는 심판이 임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그러나 또한 이 작품은 당시의 반유대주의, 유대인들에 대한 편견과 반감을 그대로 보여주는 어두운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럽에서 오랜 세월 함께 살았지만 동등한 시민으로 여겨지지 않았고 늘 이방인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유대인 샤일록이 악독한 고리대금업자로 묘사되고 있지만 유대인들이 고리대금업자가 되었던 이유도 첫째로는 유대인들은 당시에 땅을 소유할 수 없었고 허락된 직업 많지 않았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중세에는 형제들에게 이자를 받지 말라는 레위기와 신명기의 말씀에 따라 이자를 받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은 형제가 아니기 때문에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의 거래에서는 이자를 받는 것이 허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유럽의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을 자신들의 공동체 안에 속한 사람들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럽의 역사에서 오랜 시간 동안 유대인와 이방인들의 갈등과 그로 인한 비극이 계속되었는데 그 연원은 이미 성경 시대에서부터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교회 안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의 갈등에 있었습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교회 안에서 일종의 기득권층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교회의 성도들은 대부분 유대인들이었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다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잘 알았기에 이방인들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고 더 나아가서 극단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구원을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유대교의 율법을 다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주장은 교리적이고 종교적인 주장이지만 또한 문화적인 갈등을 낳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율법을 배웠고 그 문화 안에서 살았지만 이방인들에게 유대인들의 율법을 낯선 것이었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은혜를 받게 된 사람들에게 큰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이방인들에게는 너무나 당혹스러운 요구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를 기록하면서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의로움을 덧입어서 의롭게 되는 것이기에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유대인들의 주장과 반대되는 또 다른 생각을 가진 이방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전에는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택하셨지만 버리셨고 이제는 이방인들을 택하셨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심지어 유대인들은 저주받은 백성이라는 생각까지 번지게 되었고 그것이 후에 유럽에서 반유대주의의 기원이 됩니다.

이런 주장은 당시에 선교현장에서 일어나는 상황과도 관련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교회는 유대인들의 공동체로 시작되었지만 이방인들의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면서 많은 이방인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많은 유대인들이 여전히 구약의 율법에만 매여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바울을 핍박했습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고 바울 자신이 유대인이었기에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져가는 것에 대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9장을 시작하면서 바울은 이렇게 자신의 절실한 심정을 고백합니다.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그는 유대인들이 버림을 받았다는 이방인들의 생각에 반대를 합니다. 그 자신이 유대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생각이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구원의 확실함을 깨뜨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한번 택하셨다 임의로 버리신다면 그러면 우리의 구원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우리도 또한 버림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우리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의 앞부분에서는 유대인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유대인들에게 어떤 특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모두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뒷부분에서는 이제는 이방인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이스라엘의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5절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버리신 것이 아니며 은혜로 남은 자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이른바 “남은 자 사상”이 남겨 있습니다. 이것은 원래 구약성경의 역사를 해석하면서 선지자들이 강조한 개념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고난의 시대를 견디고 남아있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런 생각의 연원은 엘리야의 시대에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엘리야의 시대에는 아합 왕과 왕비 이세벨이 바알 신앙을 이스라엘에 퍼뜨리고 있었지만 엘리야는 바알 신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선지자들에 맞서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늘에서 제물을 다 태우는 불이 내리는 것을 보여주면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적을 보면서도 이세벨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오히려 바알 선지자들을 대적한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달려듭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의 악한 기세에 압도되어 광야로 도망을 갔고 호렙산에 이르러서 하나님 앞에서 이제 하나님의 제단도 무너지고 하나님의 선지자들도 다 죽고 자기 하나 남았는데 자신도 죽게 되었다고 탄식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에 인용된 대로 이스라엘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칠천 명이 남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은 자 사상이 확실하게 정립이 된 것은 엘리야의 시대로부터 더 후대에 선지자들의 선포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음으로 이방나라들에 의해 멸망당했고 이제는 다 끝장이 났다는 절망감 속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무너뜨리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남겨진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을 통해 다시 하나님의 은혜의 때를 여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 남은 자들을 이사야 선지자는 그루터기에 비유합니다. 나무는 베어졌을지라도 뿌리 채 뽑힌 것이 아니기에 그루터기에서 다시 새순이 돋게 될 것이라고 비유한 것입니다.

바울의 시대에 남은 자 사상을 가진 것은 바울만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광야에서 은둔하며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던 유대교 종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다시 이방인의 지배아래 놓인 더럽혀진 세상을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이고 그들만이 율법을 지키고 거룩하고 정결하게 되어 구원을 받는 남은 자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쭉정이는 가고 알곡만이 남는 것이 아니라 사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보시기에 불완전하고 부정한 사람들이지만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남은 자가 되었다고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먼저 자기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다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니고 지금 로마서를 기록하고 있는 내가 바로 유대인이다, 유대인들 중에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지금도 남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특히 베냐민 지파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구약성경의 남은 자 사상을 이어서, 구약성경에 12지파가 있었지만 그 중에 남은 자들이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였고 그 은혜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갈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누구나 낯선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나 늘 스스로를 기득권층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무의식적으로 새로 오는 사람들에게 걸림돌을 놓는 일들이 벌어지곤 합니다. 하지만 먼저 온자나 나중 온 자나 모두 아무 공로 없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기에 겸손하게 은혜의 공동체를 함께 이루어가야 한다는 것이 로마서를 통해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시대의 남은 자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회적인 분위기도 별로 교회에 우호적이지 못한 것 같고, 교회가 세상과 똑같다며 실망하는 사람들, 자신이 기도하며 소망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여 믿음의 확신을 잃은 사람들, 성도들 간의 관계에서 상처받은 사람들, 여러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예전처럼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고 이제는 부흥의 시대가 지나간 것 같은 메마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일에 교회 가는 사람들보다 산에 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도 하지만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여 있는 것은, 명절의 분주함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를 잊지 않고 찾아온 모든 성도들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남은 자가 되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시대가 어디로 향하든지, 사람들이 무어라 말하든지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남은 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결국 이 땅에 새로운 부흥의 역사를 시작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의 인생에도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처음 미국 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에 어느 친구가 미국 공항에 가면 덩치가 큰 흑인들이 있어서 화장실의 문을 발로 뻥 차고 열어서 앉아 있는 사람을 한 손으로 번쩍 들어서 흔들면 주머니에 있는 것이 다 떨어지고 그걸 가지고 간다며 겁을 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에는 별 소리를 다 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미국에 가서 공항에서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가서 앉았는데 그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문이 열리지 않게 문고리를 손으로 잡으려 했는데 화장실이 너무 커서 문고리에 손이 잘 닿지 않아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서 난감해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훨씬 후에 어느 날 성경을 묵상하다가 문뜩 그때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인생이 마구 흔들린다는 것은 사실은 누군가가 우리를 꼭 잡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흔들릴 때에 떨어져 나가는 것은 진정한 나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 안에 있는 것들, 내 인격, 내 신앙,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떨어져나가지 않습니다. 내 안에 있는 것, 진정으로 내 자신과 일체가 된 것은 떨어져나가지 않지만 내가 붙잡고 자랑하고자 했던 것들, 내 인생에 장식물로 외부에 덧붙인 것들은 조금만 흔들려도 다 떨어져 나갑니다. 그러므로 고난에서 회복되기 위해서는 떨어져 나간 것을 바라보며 이제는 다 끝났다고 절망하기보다 여전히 남아있는 것들, 하나님이 은혜로 남겨주신 것들을 바라보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환란을 통해 내 인생을 정리하고 내 벌거벗은 모습을 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소중한 관계들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게 하십니다. 그 가운데 은혜로 남은 것들을 깨닫게 하시고 내 안에 여전히 소망이 있으며 하나님이 새로운 은혜의 때를 열어 가실 것을 기대하게 하십니다.

이 시대를 보며, 또 우리의 인생을 보며, 하나님의 은혜로 남겨두신 것을 소중히 여기며 새로운 믿음의 시대, 은혜의 시대를 열어가는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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