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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세워가는 공동체 / 로마서 14:13-18

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15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예전에 중국에 있을 때 방학을 이용하여 함께 사역하던 선교사님들과 중국 서부에 있는 신강위구루자치구의 중심지인 우루무치로 여행을 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 곳에는 위구르족, 카자크족 같은 이슬람계 소수민족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지역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의 안내로 신강대학을 구경하게 되었는데 학생 식당이 둘로 나뉘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족들은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데 이슬람교를 믿는 학생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아예 식당을 각각 따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지역은 만년설이 덥혀 있는 해발 4000미터 천산산맥이 평풍처럼 둘러있는 곳이었는데 산기슭에 카자크족이 자신들이 사는 텐트를 관광객들에게 빌려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곳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집의 아이들에게 가지고간 과자를 주었더니 그 집의 주인이 우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것은 이슬람교도가 먹어도 되는 것입니까?”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 한 번 이 사람들은 먹는 것에 대한 금기사항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슬람교와 유대교에는 음식에 금기사항이 많습니다. 바울의 시대에도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고 먹어도 되는 고기라고 하더라도 충분히 피를 빼지 않은 것을 먹지 않았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바리새인들이 비난하면서 왜 장로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으냐고 말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의 유대교에서는 일종의 정결규정을 지켜서 손을 씻고 일정한 의례를 거친 후에 먹어야 부정하게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나 부정한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도 자신을 부정하게 만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자신의 신앙이 무엇을 먹느냐, 어떻게 먹느냐, 누구와 함께 먹느냐와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 일반화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음식의 금기에 매여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기독교 신앙은 이미 2000년 전에 음식에서 자유를 선포하고 더 깊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우쳐 주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바리새인들의 비난에 대해서 예수님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가 꿈에서 구약성경의 레위기에서 먹지 말아야 할 것으로 규정된 짐승들을 잡아 먹으라는 말씀을 듣고 그럴 수 없다고 대답했더니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음성을 들었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꿈에서 깨어나서 베드로는 이 말씀이 이방인들과 교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고넬료라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꿈은 음식의 금기와 이방인에 대한 금기가 함께 깨어진 것을 보여줍니다. 복음서에서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남녀노소, 신분의 차이 없이 다함께 먹고 마시는 기쁨의 식탁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기독교 신앙 안에서는 이렇게 음식에 대한 자유를 가르쳤지만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이 이전부터 지켜온 전통들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과 음식에 민감한 성도들은 여전히 음식에서의 금기사항을 지키는 것이 경건한 성도의 삶에 핵심적인 것이라고 여겼고 이런 음식에 대한 견해의 차이가 초대교회에서 큰 갈등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음식에 대한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왜 아직도 율법에 매여 있느냐, 그렇게 믿음이 없느냐고 비난했고 음식에 대한 금기사항을 지키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불경건하고 부정하게 사느냐고 음식에 대한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난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와 고린도전서와 같은 서신 속에서 교회 안에 있는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음식에 자유가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율법이 아니라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해온 바울이 자신의 편을 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어느 편을 들기보다 음식의 문제를 넘어서 근본적인 문제를 보게 합니다. 바울은 바른 신앙이란 무엇을 먹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얼마나 형제를 사랑하느냐에서 나타난다고 가르쳤습니다. 무엇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나와 다른 전통, 관습, 문화 속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는 것을 깨우쳐 준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으므로 믿음에 이르고 삶이 변화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경험합니까? 우리가 기도 중에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음성이 들을 수도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폭포수와 같은 눈물을 흘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성도들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저는 종종 “나는 왜 목사가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곤 합니다. 사실 별로 목사답지도 않고 인격도 부족하고 때로는 목사이면서도 믿음의 확신도 흔들릴 때도 있고 예전에 보았던 목사님들처럼 경건하고 거룩하고 근엄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성도들을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하나님께 “제가 자격이 있습니까?”라고 기도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봅니다. 그럴 때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답은 내가 여러 가지로 부족하지만 적어도 나는 교회를 사랑한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교회를 사랑합니다. 그 이유는 제가 교회 안에서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아동부, 중고등부, 대학부, 청년부를 죽 거쳐 오며 어렸을 때는 전도사님들, 선생님들로부터, 커서는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고 소중한 추억들을 쌓으며 살아왔습니다. 교회 안에서 함께 울고 웃고 기도하고 나누고 먹고 사랑하던 사랑받던 시간들이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여러 가지로 부족하지만 이렇게 우리 현대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서 있게 된 이유는 제가 현대교회에서 받은 사랑이 크기 때문입니다. 저는 2004년에 목사안수를 받았고 2005년 11월에 현대교회에 와서 부목사로서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대교회는 목사 안수를 받고 처음으로 전임으로 사역을 한 교회였습니다. 그때에는 지금보다 더 자주 내가 과연 목사가 될 수 있겠는가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역을 하면서 실수도 많고 부족한 모습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성도님들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얻게 되었고 나도 목회를 할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교회에 어려움이 있어서 그 사랑의 빚을 다 갚지 못하고 교회를 떠나게 되었지만 몇 년 후에 다시 현대교회에서 불러주신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어떻게 할 것인지를 기도하며 결정하여야 했습니다. 그때에 주위에서는 좀 속된 말이지만 좀 더 기다리면 더 큰 교회로 갈 기회가 있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내가 목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교회인데 내가 어디를 가겠는가”는 생각이 들어서 주저없이 현대교회로 다시 오게 되었고 이렇게 지금 여러분들 앞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제게 여러분들로부터 받은 사랑의 빚이 있기에 현대교회로 오게 되었고 여러 가지로 부족하지만 조금이라도 그 사랑의 빚을 갚아보고자 합니다.

저는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음으로 깨닫고 경험하는 공동체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서로 비판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바울은 비판의 황제였습니다. 율법주의자였고 스스로 말하는 대로 바리새인중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자신과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죽어도 좋다고까지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고 쫓아 다녔고 스데반이 순교할 때에도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 믿고 변화되었습니다. 그가 변화된 것은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지만 또한 예수님의 사랑을 그에게 전해준 성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 눈이 보이지 않게 되고 혼란에 빠져있을 때에 아나니야라는 사람이 그를 찾아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나니아에게 가서 바울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왜 기도해야 하느냐고 반문했지만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셨다는 말씀을 듣고 바울을 찾아가서 그를 형제라고 부르며 그를 위해 기도하여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었습니다.

그가 믿음을 갖게 되고 교회의 일원이 되고자 했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였고 무슨 해코지를 하려는 것이 아닌지 염려했습니다. 그때 바나바가 바울을 만나서 그의 신앙에 확신을 갖게 되고 그를 교회와 사도들에게 소개해주며 그의 보증인이 되어 주었습니다. 교회의 기둥과 같은 사도들도 그들의 동역자로 바울을 인정하고 같은 사도로 받아들여주었습니다. 사도들 중에 중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베드로는 선교 사역 중에 바울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베드로후서에서 바울을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라고 부르며 바울의 서신들이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기록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 보면 바울은 성도들의 사랑에 감격하면서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이 눈병이 있었다는 증거로 인용되기도 하지만 또한 바울이 성도들로부터 얼마나 사랑을 받았는지를 보여줍니다.

바울이 이전에 살아가던 삶의 원리로 보자면 이렇게 자신들을 핍박하고 죽이려고까지 하던 사람을 용납하고 인정하고 사랑해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성도들로부터 이러한 사랑을 받았고 이제 비판하던 사람에서부터 사랑을 전파하는 사람으로 변화되게 된 것입니다.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여러분은 어떤 사랑을 받았습니까? 어떤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까? 교회는 하나님이 부르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고 성도들을 통해 그 사랑을 경험하게 하셔서 사랑받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어가는 곳입니다. 우리교회 안에 이러한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가 더 풍성하여지고 사랑으로 함께 세워지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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