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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아노라 / 신명기 31:19-23

19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쳐 그들의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20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21 그들이 수많은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아노라
22 그러므로 모세가 그 날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쳤더라
23 여호와께서 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하시니라

혹시 어제 밤에 월드컵 경기를 보시느라 밤잠을 설치신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경기를 봤는데 예상 보다 좋은 경기를 펼쳤지만 지게 되어 아쉬운 마음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얼마 전에 전 국가축구대표 이영표 선수의 인터뷰 중에 “한국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뜨끔했던 적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축구장 근처에는 가지도 않다가 월드컵때만 텔레비전 앞에서 이기라고 응원하는 저 같은 사람들에게 축구를 본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섭섭한 마음이 있는 것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큰 경기에서도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유럽과 남미의 축구 강호로 불리는 나라들에는 많은 축구 클럽들이 있고 열광적인 팬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떤 성적을 거두든지 다 최선의 결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 밤에 질 것 같아서 보지 않은 분들도 계시겠지만 축구공은 둥글고 스포츠는 각본없는 드라마이기에 기대를 가지고 손에 땀을 쥐고 경기를 보게 되었던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이길 것인지 질 것인지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대부분 대단한 축구 팬이 아니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질 경기는 보지 않고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되지 않을까요? 더 나아가 관중이 아니라 선수라면, 질것이 너무나 확실한 경기를 뛰어야 한다면 그때의 심정은 어떨까요?

오늘 본문인 신명기는 전에도 살펴 본 것처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은 마치 질 경기에 나서는 선수와 같은 마음이셨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이 되기로 서약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만을 믿고 섬기고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기로 약속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은혜와 축복을 내려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언약을 지키지 못할 것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 살펴본 것처럼 축복에 대한 약속보다 저주에 대한 경고가 더 많은 것이고 더 나아가 오늘 본문에서는 이렇게 단언하여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그들이 수많은 재앙과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2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들의 생각하는 바를 아노라”

하나님이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그들이 앞으로 행할 일을 아신다는 것은 조금 어렵게 표현하자면 “예지(豫知)와 예정(豫定)”의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어서 순종할 수도 있고 불순종할 수도 있지만 다만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할 것을 미리 아시는 것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하도록 미리 정해 놓으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하게 되는 것일까요?

문제를 좀 더 크게 보면 하나님은 구원받을 사람들을 미리 정해놓으셨는지, 아니면 아니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를 원하시지만 어떤 사람들이 거부하는 것인지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를 선호하시겠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장로교를 창시한 칼빈은 루터가 주장한대로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이라면 하나님이 구원받을 사람들을 예정하셨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누가 구원받을 지는 구원의 대상이 되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지 않았다는 결론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감리교를 창시한 웨슬리는 하나님이 누군가를 구원하시지 않기로 작성하셨다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미워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하기 때문에 모두를 사랑하시고 구원하기를 원하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면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하나님은 구원하기를 원하시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도 있다는 것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의 의지를 거역할 수 있고 하나님은 원하시는 바를 이루실 수 없기에 전능하신 분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 우리의 구원의 확실성은 어떻게 보장되겠습니까? 지금 내가 예수를 믿어도 언제든지 마음이 변할 수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데 하나님은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계시게 되는 것입니까? 칼빈의 입장에서 보면 누가 구원을 받고 받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 구원은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이됩니다.

어떤 입장에서도 완전한 설명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칼빈을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손상이 가는 것을 더 우려하고 웨슬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손상이 가는 것을 더 우려하는 것 같습니다. 이 두가지를 조화시키는 설명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론이든지 근본적으로는 다 성경을 근거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을 깊이 묵상하며 성경 속에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경험하는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왜 제가 예수를 믿는지, 왜 목사가 되었는지 묻는다면 저는 성경이 너무나 놀라운 책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곤 합니다. 저도 책 읽은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책을 읽을 때에 감동이 오는 저자를 만나면 그 사람의 글을 계속해서 읽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통 서너권 정도 읽으면 대충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고 또 실망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서 그 정도로 만족하고 더 이상 그 작가의 책은 보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읽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새로운 깨달음과 은혜를 주기 때문에 지금까지 성경을 읽고 있고 깨달은 것을 함께 나누는 삶을 사명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벌써 목회자로 20년째 사역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성경에는 알지 못했던 은혜가 담겨 있고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말씀 속에서도 새로운 의미들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그러한 말씀 중 하나입니다.

어제도 설교를 준비하면서 본문을 묵상하다가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아노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큰 은혜를 받았고 오늘 그 은혜를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아직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그들이 그 곳에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저버리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을 섬기다가 결국 이방 나라들에게 멸망당하는 재앙을 당하게 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자 하는데 그 사람이 자신의 사랑을 배반하며 자신을 버리고 떠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될 것을 안다면 그 결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살아오면서 했던 많은 선택들 중에 후회가 되는 것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하고 그 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 인생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신명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을 아시고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할 것을 아시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모세에 이어 그들을 인도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도록 여호수아를 세우십니다. 여러분이 그 현장에 계신다면 말리고 싶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시지 마시라고, 그렇게 되면 상처만 받을 뿐이라고,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도 않고 결국 하나님을 떠날 것인데 왜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는 것이냐고 묻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사실 이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만일 하나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소중히 여기고 지킬 사람들만을 택하셨다면, 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할 사람들만을 고르셨다면, 만일 천사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합당한 삶의 열매를 맺지 않을 사람들을 선택하시는 것을 곁에서 말렸다면 과연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에 몇 명이나 남아 있을까요? 저도 이 자리에 있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택하셔서 하나님을 알고 믿게 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배반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상처받고 후회하고 배반당하는 사랑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사랑에 자신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에 자신이 없습니다. 언제까지 사랑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을지, 언제까지 이렇게 상처받고 살 수 있을지, 언제까지 참고 견뎌야 하는지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랑은 정리를 할 수만 있다면 정리하고 싶고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어 합니다. 한 두 번은 그런 사랑을 꿈꿔보고 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보기도 하지만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다보면 어느덧 상대방에게 실망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실망하는 내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있으십니다. 우리가 배반하고 우리가 등을 돌리고 우리가 실망을 시키고 우리가 하나님께 실망했다고 말해도 우리를 계속해서 사랑하실 자신이 있으십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실 자신이 있고 기꺼이 우리를 위해 자신을 버리시는 그 사랑을 하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을 가리지 않으시고 불완전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불완전한 우리와 사랑의 언약을 맺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우리가 실수하고 넘어지고 실망시키고 엉망진창의 인생을 살아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것을 감히 믿고 이 세상 어디에도 나를 믿어 주는 사람이 없고 이 세상 누구도 내게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아도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하나님 앞에서 울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알 수 있을까요? 내 자신에 대해 알고 하나님을 안다면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실수할 것이고 후회할 일들을 할 것이고 기대했던 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고 유혹에 넘어지기도 하고 해서는 안될 말들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주고 상처받는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존재들, 그렇게 연약하고 불완전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사랑하실 것이고 용서하실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실 것이고 우리에게 인생의 교훈을 깨닫게 하실 것이고 조금씩 성숙하고 변화하게 하실 것이고 끝내는 그 사랑에 합당한 존재가 되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의 기쁨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미래에 대해 감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변해도 하나님은 변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미래를 예비해 놓으셨고 그 미래를 지금도 현실로 만들어 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이야기를 했지만 칼빈이 맞을지 웨슬리가 맞을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천국에서 두 사람 다 하나님께 야단을 맞을지도 모르고 또 다 칭찬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어떤 하나님을 만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를 믿을수록,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될수록 갖게 되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의 사랑에 있다는 것, 우리의 죄악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크다는 것, 누구도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변화시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아십니다. 우리의 생각을 아시고 우리의 미래를 아시고 우리의 계획을 아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의 실수와 상처와 아픔과 눈물을 아시고 우리의 완악함을 아시고 우리의 치사하고 편협하고 옹졸하고 삐뚤어진 마음을 아시고 우리의 은밀한 죄악을 아시고 우리의 위선과 자만과 교만을 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듯이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의 답은 나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꺾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포기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다면 그 사랑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항복하고 순종하는 것 외에 우리의 인생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시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의 기쁨을 영원토록 누리는 복된 인생이 예비되었음을 깨닫고 그 사랑 안에 거하는 복을 영원히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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