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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왕의 전쟁 / 열왕기하 3:13-20

13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 하니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나이다 하니라
14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봄이 아니면 그 앞에서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15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오소서 하니라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의 손이 엘리사 위에 있더니
16 그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17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가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
18 이것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넘기시리니
19 당신들이 모든 견고한 성읍과 모든 아름다운 성읍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 하더니
20 아침이 되어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쪽에서부터 흘러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지난 주간부터 열왕기하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과 열왕기하는 구약성경에서 역사서라고 분류되는 책입니다. 열왕기(列王記)는 왕들의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이 책에는 우리에게는 낯선 수많은 왕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열왕기와 같은 역사서를 읽게 될 때에 우리나라 역사도 잘 모르는데 우리가 왜 이스라엘의 역사를 배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역사적인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역사, 더 나아가서 온 우주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약성경의 역사서를 읽는 이유는 과거의 어떤 역사적인 사실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를 보는 관점, 우리의 인생을 해석하는 관점을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역사는 있는 그대로의 과거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가, 즉 사관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한 나라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은 그 나라의 정체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와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올해는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한지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최근에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하여 대한민국의 기원이 1948년인가, 아니면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인가의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건국의 기점을 어느 해로 잡는가에 대한 의견의 차이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어디에 있으며 어떤 미래를 지향하느냐에 대한 생각의 차이를 반영합니다. 아마도 여러분들은 소위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중국의 동북지역, 우리가 흔히 만주라고 부르는 지역의 과거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였다고 해석하고 연구하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중국은 다민족국가이며 광대한 영토에서 주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의 통합을 위해서 지금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와 56개 민족의 역사가 본래부터 중국의 역사였다고 주장하는데 우리는 민족의 관점에서 과거에 우리 민족이 살았던 곳을 우리의 역사에 포함시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간에 역사해석의 갈등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책 중에 “새 유럽의 역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EU, 즉 유럽연합이 성립한 뒤에 나온 역사책입니다. 유럽의 역사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의 나라들이 계속해서 전쟁과 갈등을 이어왔던 역사이지만 이제는 유럽의 역사를 하나의 문화공동체, 하나의 역사공동체로 이해하고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기에 유럽을 하나의 공동체로 보며 역사를 해석하는 책이 새롭게 저술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동북아의 미래를 위해서는 남북간의 화해도 중요하지만 더 나아가 중국, 러시아, 일본을 포함하는 동북아 평화공동체가 이루어져야 항구적인 평화를 이룰 수 있지않겠는가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통일이 된다하여도 주변의 강대국들과의 평화로운 관계를 만들어가지 못한다면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생각해볼 때에 과거의 대립과 갈등의 역사를 넘어서 역사에서의 화해가 이루어질 때에, 그래서 동북아시아가 서로 공유하고 있는 문화적인 유산과 역사를 미래지향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칠 수 있을 때에 진정한 동북아시아의 평화가 이루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역사는 과거에 대한 기술이지만 이렇게 어떤 미래를 지향하느냐에 의해 과거를 보는 시각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열왕기는 이스라엘의 왕들의 이야기이고 솔로몬의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왕국의 분열과 갈라진 두 왕국의 멸망에 이르는 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열왕기를 읽을 때에 “이스라엘”이라는 용어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합니다. 열왕기에서 “이스라엘”은 야곱의 후손인 12지파 모두를 가리키기 보다는 분열되어 갈라져나간 북쪽의 10지파가 세운 나라를 가리키는 말로 자주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아있는 두 지파의 나라는 유다지파가 중심이 되어 있기 때문에 “유다”라고 불립니다. 그래서 혼란을 피하기 위해 열왕기에 등장하는 두 나라를 북이스라엘, 남유다로 부르기도 합니다.

북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여로보암은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우고 백성들이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가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에 결국 북이스라엘에 우상숭배가 만연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여로보암의 죄”라고 부릅니다. 다윗의 자손들이 다스리던 나라에서 갈라져 나간 북이스라엘의 왕조들은 늘 정통성의 문제에 시달렸고 계속해서 반란이 그치지 않아서 4대 이상 지속된 왕조가 없었습니다. 반면에 남유다에는 다윗의 자손들이 멸망할 때까지 계속해서 왕위를 이어갔지만 그들 중에는 다윗의 길을 따라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던 왕들도 많았습니다.

원래 갈라진 두 왕국, 이스라엘와 유다에는 각각의 역사서가 있었습니다. 이 책들을 성경에서는 “이스라엘왕 역대지략”과 “유다왕 역대지략”이라고 부르는데 이 책들은 열왕기 뒤에 이어지는 역대기와는 다른, 지금은 사라진 책들입니다. 이 책들은 기본적으로 이스라엘와 유다의 왕들의 치적을 기록한 역사서였습니다. 그러면 이미 각각의 왕국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가 있었는데 왜 또 다른 역사책을 기록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앞에서 말한 사관의 문제와 연결이 됩니다.

구약성경을 읽을 때에 우리가 잊어버리기 쉽지만 구약성경을 이해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사건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멸망입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리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광야생활을 거쳐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나라를 세웠는데 결국 나라가 분열이 되고 이방 민족들에 의해 멸망하게 되었을까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쓰인 책이 바로 열왕기입니다.

만일 이스라엘의 역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형통하던 이야기의 연속이라면 우리의 신앙적인 관점도 “축복”에 초점이 맞춰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복받는다고 믿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을 하나님이 늘 형통하게 인도해 주신다고 믿고 오직 축복만을 간구해도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의 멸망을 말합니다. 열왕기는 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리던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되었는지를 되짚어보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참회하며 기록한 책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시고 은혜를 베푸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의로운 나라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열왕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성한 나라가 되기를 바라며 세운 왕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다는 것을 낱낱이 기억하고 기록한 책입니다.

당시의 다른 나라의 역사 기록들은 대부분 왕들의 치적을 자랑하고 후대에 전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구약의 역사서들이 역사적으로 정확한 기록인가를 평가하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이웃나라들의 역사가 정직하지 못하다는데 있습니다. 그들 나라에 수치가 되는 것은 기록하지 않고 자랑거리만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여 기록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의 기록에서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들이 불의하였고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는 공동체를 만들지 못했고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열왕기에서 악한 왕이라고 평가되는 왕들이 당시에도 그렇게 평가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자랑하던 자랑스러운 왕들의 시대가 사실은 하나님 보시기에 불의했다는 것,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억압하며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지 못했고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갔기에 결국은 멸망에 이르게 되었음을 깨닫고 고백합니다.

그들의 역사의 부정적인 모습들을 나열하는 것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서 자학적인 사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과거의 부정적인 역사에서 벗어나서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들이 참회하고 하나님 앞으로 전적으로 돌이키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의 멸망 후에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시대에 다시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사이에 70년이라는 포로생활, 참회와 정화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에 그들은 그들의 역사를 다시 기록하며 새로운 미래를 세워가기 위한 철저한 회개와 돌이킴의 시간을 가졌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전쟁은 “모압 왕 메사의 비문”이라고 알려진 비석에도 기록이 되어 있어서 구약성경의 역사와 일반 역사를 연결해 주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세 명의 왕이 등장합니다. 북이스라엘의 여호람, 남유다의 여호사밧, 그리고 에돔 왕입니다. 당시에 모압이라는 나라가 이스라엘에게 복속되어 있다가 아합 왕이 죽은 후에 배반하여 이스라엘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하였습니다. 이 배반을 응징하기 위해 이스라엘 왕 여호람이 다른 왕들과 연합하여 전쟁을 벌인 것입니다.

당시의 북이스라엘의 왕인 여호람은 아합왕의 아들이었습니다. 아합은 북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왕이며, 성경에서 악한 왕의 대명사처럼 등장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이스라엘에 바알 숭배를 퍼뜨린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의 아내 이세벨은 시돈이라는 나라의 공주로서 이스라엘로 시집을 오면서 바알 신앙이 이스라엘에 퍼지게 하였습니다. 아합의 시대는 우상숭배로 점철되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했던 시대였지만 세상적으로 보기에는 강성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아합이 죽은 후에 주위의 나라들이 이스라엘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하였고 모압 왕도 조공을 바치지 않고 이스라엘을 배반하게 된 것입니다. 아합의 아들인 여호람은 모압을 징벌하기 위한 원정을 계획하게 되었고 남유다의 왕 여호사밧을 불러서 함께 출정하게 됩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선한 왕이었고 남유다의 신앙개혁을 이끌었던 장본인이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길을 따른 왕이라고 평가되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신앙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도 외교적으로는 많은 실책이 있었습니다. 그는 선량한 사람이었기에 이웃 나라들과도 두루 두루 잘 지내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의 태도가 오히려 북이스라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북이스라엘과 평화롭게 지내면서 북이스라엘에게 신앙적인 감화를 미치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했던 북이스라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여호사밧은 기도하는 왕이었지만 북이스라엘왕의 요청에 응하여 전쟁에 나서면서는 기도하지 않았고 오히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더 많은 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에돔땅으로 돌아가서 거기서 에돔을 참여시켜서 더 많은 군대를 모아 모압을 치자고 제안합니다. 그래서 에돔 왕이 전쟁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모압을 뒤에서 치기 위해 에돔 광야를 통해 남쪽으로 우회하며 에돔을 합세 시켜 더 우월한 병력으로 전쟁을 벌이고자 했지만 긴 행군 가운데 광야에서 물이 부족하여 어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군사들이 목말라 죽게 된 것입니다. 그제서야 그들은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경외하였던 여호사밧은 이곳에 하나님의 뜻을 전해줄 선지자가 있는지를 찾았고 마침 그 곳에 있던 엘리야의 후계자 엘리사가 와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그들이 물을 얻고 곤경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자기 나라에서 대단한 권세를 가진 세 명의 왕이 많은 군사들을 이끌고 모였지만 그들 모두는 하나님 보시기에 연약하고 각자의 불의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많은 병력을 의지하다가 오히려 큰 곤경에 빠지게 되었고 하나님의 능력은 왕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하게 섬겼던 엘리사를 통해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열왕기라는 책이 가진 관점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축복을 구하고 은혜를 구하고 기도의 응답을 구하지만 정작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 믿음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보지 못한다면, 과연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인생을 우리 스스로 개척한 삶으로 생각하고 그 가운데 우리의 모든 불의함과 실수와 잘못과 불신앙을 잊어버린다면, 결국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교만과 실수와 연약함의 반복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인생에서 의지하고 자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얻기를 원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고 의지하던 것이 과연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평탄하게 이끌어 주었습니까? 아니면 오히려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고 어려움을 가져다주었습니까?

자신들의 과거를 돌아보며 하나님을 멀리하고 다른 신들을 섬기며 왕들을 의지하고 세상의 영화를 자랑했던 그들의 과오를 반성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들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돌아보며 더욱 온전한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는 지혜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배우는 지혜로운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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