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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 하나님 / 시편 8:1-9

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2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7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2)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이 세상과 하나님이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근원, 이 세상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관점, 즉 즉 기독교 세계관의 기초가 됩니다. 오늘날에는 창조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을 통해 이 세상에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관심을 가지지만 고대인들은 이 세상의 의미, 가치, 목적과 같은 더 깊은 질문들을 던졌습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8편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 속에서 느끼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격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시편 8:3-4)

저는 이 말씀을 대할 때마다 예전에 논산훈련소에서 저녁예배 드리고 오는 길에 시편 8편을 가사로 한 찬양을 행진하며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주일 낮에는 혹시 막사에 있으면 무슨 일을 시킬지도 모르고 교회에 가면 간식도 주기 때문에 예배에는 가는 훈련병들이 많지만 저녁예배 시간은 식사 후에 개인정비를 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예배를 드리려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저녁 예배까지 드리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었고 인솔하는 조교들도 신앙이 좋은 사람들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훈련소 교회까지 오가는 길에 행진하면서 찬송을 불렀는데 어느 날 저녁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여호와 우리 주여~”로 시작되는 시편 8편을 가사로 한 찬송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하늘에는 달과 별이 빛나고 함께 은혜받은 귀한 형제들이 군부대 경내를 행진하며 함께 찬양하면서 느꼈던 기쁨과 은혜가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사도신경 강해를 시작하면서 요한복음 3장 16절이 바로 사도신경의 요약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도신경의 앞부분에서 하나님을 전능하신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우리의 창조주라고 고백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고백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데에서 나타났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온 세상의 창조주가 되심으로 우리와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이 늘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이 세상을 통해 늘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것과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사도신경이 만들어지던 시대, 초대교회가 복음을 증거하던 시대에는 그것이 결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이 이렇게 불완전하고 고통스럽고 악하기 때문에 이 세상을 만든 신은 전능하지 않거나 선하지 않다는 주장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계의 기원과 전능하신 구원자를 분리하려는 시도가 많았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원론적인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사상이 초대교회가 복음을 전할 때에 당시의 그리스-로마 세계에 널리 퍼져 있었고 기독교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쳐서 여러 이단들을 낳았습니다.

초대교회의 이단들은 심지어 구약성경의 창조주 여호와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구약성경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이 세상을 지은 신은 무능하고 불완전한 존재다, 우리에게 필요한 신은 이 불완전한 세상을 창조하고 이 세상을 사랑하는 신이 아니라 이 저주받은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줄 신이다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우리의 육신과 모든 물질은 악하고 오직 순수하고 거룩한 것은 인간의 영혼 뿐이며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영혼이 이 육신과 이 물질 세계로부터 건짐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선행은 마치 난파선을 청소하는 것 같이 무의미한 것이고 우리에게 중요한 유일한 의미있는 행위는 이 세상을 벗어나 천국을 가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의 전통은 결코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셨다는 도전적인 고백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세상이 근본적으로, 근원적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으셨던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이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 묘사된 하나님의 창조는 질서정연하고 평화로운 창조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기록은 당시에 잘 알려져 있던 바벨론의 창조신화와 대비됩니다. “에누마 엘리쉬”라고 불리는 바벨론의 창조신화에서는 태초에 신들의 전쟁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마르둑이라는 신이 티아맛이라는 바다의 신을 죽여서 그 시체로 이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신들을 노역을 쉬게 하기 위해 티아맛을 부추겨 전쟁을 일으킨 죄로 킹구라는 신을 죽여서 그의 피로 인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바벨론의 신화에서 천지창조와 인간의 창조는 우연적이고 폭력적입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해야 이 세상의 혼돈과 폭력과 고통이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즉 태초에 고통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영원히 고통스럽다, 태초에 폭력이 있었다 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창조는 이와 다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으셨던 선한 창조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속에 기록된 창조 기사는 이 세계가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악할지라도 그 악은 영원할 수 없으며 결국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가 회복될 것이라는 믿음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박하사탕”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한 중년의 남성이 선로 위에서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서서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부르짖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서 바로 그 몇 시간 전, 또 그 하루 전, 며칠 전, 몇 년 전 이렇게 거슬러가며 왜 이 사람이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을 던지게 되는지 그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주인공이 젊었을 때 다니던 공장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피크닉을 가게 되고 주인공이 풀밭에 누워서 순진한 표정으로 꽃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이렇게 순수했던 청년이 이 세상 속에서 험한 일을 겪으면서 점점 타락해 가고 인생이 절망적으로 변해가게 되었고 자신이 상실해버린 것에 대해 비통해하며 자신의 삶을 내던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데 왜 감독은 이 영화에서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돌려서 비극적인 장면에서부터 시작해서 순수했던 옛날의 모습으로 끝을 내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렇게 해서 처음에는 주인공이 순수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인생에 다른 결론이 있을 수 있었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고, 게다가 시간을 거꾸로 돌려서 영화의 흐름이 가장 비극적인 장면에서부터 시작해서 가장 희망적인 장면으로 끝나게 하므로 우리가 처한 비관적인 현실도 변화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려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질서 있고 평화롭게 창조하시는 장면을 보며줍니다. 우리가 오늘날 경험하고 있는 세상은 혼란스럽고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선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의 근원적인 선함을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모든 죄와 악의 권세로부터 이 세상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친히 창조하셨고 인간의 육신을 하나님의 손으로 친히 만드셨다는 것은 인간의 영혼 뿐만이 아니라 육신도 소중하며 이 세상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안에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천국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셨을 뿐 아니라 이 땅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육신을 고치셨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육신, 그리고 이 물질적인 세계는 우리가 버리고 떠나야할 대상이 아니라 회복시키고 구원시켜야 할 대상임을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다시 살펴보겠지만 사도신경에도 몸의 부활을 믿는다는 고백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혼만을 지으셨는데 이 영혼이 하나님이 지으시지 않은 육신이라는 감옥에 갇힌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친히 육신을 지으셨는데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와 육신이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이 영혼만을 건져내시고 인간의 육신과 이 물리적인 세상을 폐기처분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실패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구원은 육신과 온 물질세계의 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손으로 인간의 육신을 빚어서 만드셨다는 가르침은 우리의 영혼 뿐 아니라 물질로 구성된 이 세상과 우리의 육신도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기에 근본적으로 선하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죽어서 우리의 영혼만이 천국에 가는 그런 구원이 아니라 우리의 육신과 이 물질적인 세상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새로워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인간의 창조의 장면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사명을 주셨는지를 깨우쳐 줍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8편 5-6절은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라고 고백합니다. 창세기 1장 26절은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라고 말씀하며 28절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해줍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이 주신 영화와 존귀의 관을 쓴 소중한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친히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선하신 통치의 대리자로서 인간들을 지으시고 이 세상을 돌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을 회복하고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사명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마틴 루터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창조신앙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이 세상이 근원적으로 악한 곳이라면 가치 있는 유일한 일은 이 세상에서 벗어나는 일이고 그러므로 교회와 찬송과 기도와 전도 외에는 선한 일이 없겠지만 하나님이 이 세상을 선하게 지으셨다면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보존하고 가꾸고 발전시키는 모든 일이 다 선하고 아름다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분명한 두 가지 명령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흔히 문화명령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라”는 명령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선교명령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입니다. 이 두 가지 명령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으셨지만 이제는 타락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이 세상에 이 세상의 창조주가 누구신지를 알리며 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선교적인 사명이며 이 세상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이 세상 모든 영역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돌보고 발전시키는 책임을 다하는 것이 문화적인 사명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고백하는 것은, 선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며 그 세계가 궁극적으로, 종말론적으로,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선한 존재로 지음을 받은 우리가 이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며 어떤 사명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세상 속에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모든 영역에서, 삶의 자리에서, 모든 관계들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전하고 이루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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