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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 / 요 1:14-18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사도신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합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의 정체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어떤 분으로 고백하느냐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에서 기독(基督)이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음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와 같은 말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며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도하고 찬양하며 경배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이라고 할 때에 교회 가서 좋은 말씀듣고 착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유교나 불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도 공자님이나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아는 것이 도움이 되겠지만, 근본적으로 공자님 말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알고 믿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가 사순절을 지내고 있지만 사순절과 부활절이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우리의 죄를 위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를 기억하는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에 있고 우리의 믿음이 깊어지는 것의 척도는 내가 얼마만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고 사랑하고 섬기며 따르는가에 있습니다.

오늘 주제와 관련하여 먼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되심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은 우리가 삼위일체라고 부르는 교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아들의 의미는 아버지와 동등한 권세를 가지고 아버지의 모든 것을 상속하며 아버지와 사랑으로 연합된 존재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어느 안식일에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된 중풍병자를 고치셨을 때에 유대인들이 왜 안식일에 이런 일을 행하냐고 예수님을 비난했을 때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유대인들의 반응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요한복음 5:18) 이 말씀은 당시의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후에 예수님이 유대인들의 공회에서 재판을 받으실 때에도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주장하여 신성을 모독했다는 것이 주된 고발의 내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다”(마태복음 11:27)고 말씀하셨고 “나와 아버지는 하나”(요한복음 10:30, 17:22)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달라는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한복음 14:9)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14절과 18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또한 독생하신 하나님이라는 놀라운 선언을 듣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독생자가 곧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이 어렵게 느껴지지만 이 말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의 관계에 대한 여러 표현들을 가장 간단하게 정리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세분이 각각 구분되어 존재하지만 본질상 하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이시며 동등한 영광을 가지신 분이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처럼 경배하면서도 하나님이 아닌 다른 분을 경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독특한 신앙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로마시대에 기독교가 박해를 받을 때에 비두니아라는 지역의 총독이있던 플리니우스는 로마제국에서 금지한 기독교를 믿는 교인들을 붙잡아서 심문을 했는데 그들에게서 로마제국에 위협이 될만한 사실들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어떻게 처리해야하는지를 문의하는 편지를 당시의 로마 황제에게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 편지에는 “그들은 마치 그리스도를 신처럼 찬양하기 위해 모였습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처럼 찬양하고 경배하면서도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믿는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찬양하는 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고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신앙의 모습에서 우리는 삼위일체적인 신앙의 기원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라는 고백은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독특한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가진 관계와 같은 관계를 하나님과 가지는 다른 사람, 다른 존재가 이 세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한복음 17: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하나님과 예수님이 함께 영화를 누리는 특별한 관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만큼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하나님을 친밀하게 아버지라고 부르며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가르쳐주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우리에게 직접 보여주신 다른 분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태복음 11:27)고 말씀하셨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외에는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없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믿는 예수님의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기독교가 너무 배타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배타적이라는 말이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시험문제를 채점할 때에 보기 중에 정답이 하나라고 선생님에게 너무 문제가 배타적이라고, 다 맞게 해주셔야 포용적이고 너그러운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에게 선생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할까요? 선생님은 공부를 더하라고 이야기하지 않을까요?

다른 종교의 가르침을 부정하는 것이 배타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모든 종교들은 저마다의 절대적인 가치의 기준이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기독교인들보다 열려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만일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기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정말로 믿는다면 왜 동네마다 있는 교회를 가지않고 굳이 절을 찾아서 산골짜기를 올라가 백팔배를 올리고, 스님들은 예수만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그렇게 평생을 고생을 하며 용맹정진을 하고 동안거, 하안거에 면벽수도를 하는 것일까요? 더 가까이에 더 쉬운 길이 있는데도 그 길을 따르지 않는 것은 그런 길을 가서는 구원에 이를 수 없고 다 자신들이 믿는 진리가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 아닙니까?

게다가 만일 모든 종교의 주장이 다 진리라고 인정한다고 해도 우리가 반드시 믿어야 하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공자는 자신이 스스로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고 석가모니는 자신이 스스로 깨달은 사람, 즉 부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 옳다면 누가 가장 하나님께 가까울까요? 진리가 바로 우리 앞에 오셨는데 우리가 누구를 믿어야 할까요?

불교에는 윤회사상이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구원, 즉 해탈하여 열반에 들어가기까지는 어차피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불교의 내세관이 옳다면, 그런데 우리가 불교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았다면 우리는 다음 생에 불교의 가르침을 따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기독교가 옳다면, 그런데 기독교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지 않고 자기의 욕심대로 살아가다가 죽었다면 그때에 다른 기회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번 생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더 안전하겠습니까? 저는 불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이번 생은 기독교에게 양보하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정말로 그들이 윤회를 믿고 있다면 또 다른 기회가 있는 것아닙니까? 그렇게 믿고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기독교만이 아니라 유대교와 이슬람교도 다 비슷한 사후세계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율법과 코란(꾸란)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을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이루셨고 우리는 그분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가르칩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무리 선택지가 많아도, 생각을 다시 하고 다시 해봐도 기독교 외에 다른 선택을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것인데 그것이 왜 배타적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아야 합니까? 문제를 풀어서 정답을 얻으려면 보기들을 하나하나 잘 살펴보아서 어느 것이 답인지, 어떤 답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인지를 찾아보아야지 그냥 다 맞게 해달라고 우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진리에 대한 확신에서는 배타적일 수 있지만 그러나 다른 종교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배타적이고 공격적이어서는 안됩니다. 다른 종교를 통해서도 배울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가 틀렸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누가 다른 주장을 하면 귀를 기울여 들어주고 내가 정답을 택한 것이 맞는지를 점검해보면 됩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 정말로 정답이라면 그런 과정을 통해 더 큰 확신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믿는 바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한다면 나도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열리고 신뢰가 생기고 내가 하는 말을 그들을 들어 줄 것입니다. 이것이 대화의 기본적인 전제이고 예의입니다.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열린 자세를 갖기 위해 꼭 내가 믿는 것에 대한 확신을 내려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이 있고 확신이 있다면 더 여유를 가지고 들어줄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대화를 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확신이 없고 불안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자꾸 혼란스럽고 흔들리기 때문에 귀를 틀어막고 대화를 거부하고 공격적이 된다면 그 사람이 정말로 진리를 따르고 있는지 아무도 신뢰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태도가 그 사람이 진리로부터 멀다는 인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심어주어 아무도 그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라는 고백과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라는 고백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면 하나님에게 다른 자녀들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과 연합함으로 하나님과 예수님 간에 존재하는 거룩한 사랑의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에서는 양자됨이라는 표현과 예수님이 맏아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이시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영접하는 자 곧 그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12)라고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으로 연합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기 때문에 우리도 오직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릴 수가 있게 됩니다.

C.S.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나는 예수를 위대한 도덕적 스승으로는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주장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지금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미치광이거나 그보다 못한 인간입니다. 당신은 그를 바보로 여겨 입을 틀어 막을 수도 있고 악마로 여겨 침을 뱉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의 발 앞에 엎드려 하나님이요 주님으로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니 어쩌니 하는 선심성 헛소리에는 편승하지 맙시다. 그는 우리에게 그럴 여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그럴 여지를 줄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고백하십니까? 여러분은 예수님과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사순절 기간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더 잘 알고 믿고 사랑하고 섬기고 따르므로 하나님의 자녀됨의 기쁨을 누리는 은혜가 모든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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