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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

베드로후서 1:16-18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라는 질문은 기독교 신앙에서 핵심적인 질문입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에서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에 대한 고백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 자기 임의대로 생각할 자유가 있습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세계 4대 성인중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주신 위대한 스승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제자들, 사도들이 우리에게 예수님에 대해 전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에 대한 1차적인 증언자들이고 목격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들의 주님이라고, 하나님과 동등한 권세와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라고 믿고 섬기며 우리에게 전해 주었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도하고 찬양과 경배를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사도 베드로는 16절에서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선포가 사람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이 직접 본 것을 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셨던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셔서 그 곳에서 예수님의 신성의 영광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베드로는 그것을 직접 보았고 너무나 큰 은혜와 기쁨 속에서 여기 있는 것이 좋다고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을 직접 보았고 함께 동행했던 사람들의 증언이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의 전부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그들의 생명을 바쳐서 까지도 증거할 가치가 있는 분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예수님에 대해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든지 간에 우리는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았고 우리에게 전해준 사도들의 증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라는 고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원래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믿는다 혹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는 고유명사이고 그리스도는 일종의 직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김 사장, 김 목사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라는 말이 헬라어에서 온 말이다보니 그 말의 의미가 사라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의 이름처럼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예수라는 이름은 헬라어 이에수스를 옮긴 말이고 헬라어 이에수스는 히브리어 예슈아를 헬라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영어의 지저스는 이에수스를 영어식으로 다시 고쳐서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말 예수가 영어 지저스보다 원래의 발음에 더 가깝습니다. 예슈아라는 이름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여호수아, 혹은 호세아와 같은 의미인데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라는 이름은 흔한 이름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다른 예수들과 구분하기 위해 나사렛 예수라고, 즉 나사렛 출신의 예수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이름은 지금부터 2000년 전에 유대 땅에서 사셨던 사람의 이름이며 예수님의 역사성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헬라어인 크리스토스를 옮긴 말인데 헬라어 크리스토스는 히브리어 마쉬아흐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마쉬아흐는 일반명사이기 때문에 음을 따서 옮기지 않고 의미를 따라 번역했기 때문에 크리스토스가 되었습니다. 마쉬아흐를 헬라식으로 음만 따서 옮긴 것이 메시야입니다. 마쉬아흐, 혹은 메시아는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시대에 기름을 붓는 임직식을 통해 특별히 구분하여 세운 직분은 왕, 제사장,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기름은 성령을 의미하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를 때에는 예수님이 가지신 3중의 직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다스리는 왕이시며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제사장이며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시는 선지자라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 당시에 우리가 메시아 사상, 혹은 메시야 대망사상이라고 부르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구원자가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구약성경의 예언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다윗의 자손으로 하나님이 보내실 구원자에 대한 예언이 있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다윗과 같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왕이 와서 그들을 이민족들의 손에서 건지고 다윗의 시대와 같은 영화를 다시 누리게 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첫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셨다라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보면 메시야에 대한 더 다양한 예언들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종합해보면 그는 다윗의 자손이며 베들레헴에서 나시고 처녀가 잉태하여 낳은 아들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고 병자들을 고치시며 약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위로하시며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시는 분이시며 우리의 죄를 위해 고통을 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시지만 하나님이 다시 살리셔서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게 하시고 이 세상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십니다. 그는 온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아서 하늘로부터 오셔서 영원토록 통치하실 것입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신약성경에 있는 말씀이 아니라 모두 구약성경의 예언 속에 나오는 말씀들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구약성경을 잘 아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전할 때에 그들은 늘 구약성경을 인용했습니다. 특히 다윗의 시편과 선지자들의 글을 인용하며 이 말씀대로 성취되어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을 전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하나의 직함이지만 그 직함 속에는 이렇게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로서의 사명과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야의 사명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가 바로 2000년 전에 오셔서 나사렛 예수라고 불리셨던 그분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주”라는 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주님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자주 부르며 기도합니다. 그때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까?

사실 우리는 주님이라는 말을 기도할 때에만 사용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주인님”이라고 바꾸면 어떻습니까? 좀 뉘앙스가 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원래의 뜻에 더 가깝습니다. 헬라어로 주님은 퀴리오스인데 이말의 일차적인 의미는 영어로는 Lord, 혹은 Master가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때에는 먼저 그분이 우리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겠다는 결심이 담겨 있는 말입니다.

전도할 때에 자주 사용하는 “사영리”를 보면 마지막에 내 인생에 예수님을 주인으로모신다는 결단을 하게 합니다. 그러면서 두 가지 그림을 보여줍니다. 내가 보좌에 앉고 예수님이 옆에 있는 그림과 예수님이 보좌에 있고 내가 옆에 있는 그림입니다. 그 그림을 보여주면서 어떤 인생을 택할 것인지를 결단하게 합니다.

우리는 주님, 주님 하면서 기도하지만 그러면서 은연중에 알라딘의 요술램프의 지니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신앙을 마치 내가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는 것과 동의어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라고도 말합니다. 그때 나는 온 우주의 중심으로까지 격상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이 가르치는 바는 이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도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때에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예수님의 뜻대로 순종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진정으로 우리의 주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물론 종도 주인에게 간구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주인으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고 주인의 긍휼과 자비가 아니면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내가 바라고 원하는 모든 것이 주인을 통해 내게 공급된다는 것을 믿으며 주인에게 나의 필요를 아뢰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여기면, 예수님도 나를 책임져주셔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잘 돌보아주고 선한 주인은 종을 잘 보살펴 줍니다. 종이 되어 주인을 섬기면 주인은 종의 모든 것을 책임져 줍니다. 그것이 종의 자유입니다. 종은 자신의 재산이 없고 대신 주인이 모든 것을 공급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주인을 섬기느냐가 중요합니다.

군대에서 운전병을 할 때에 장교들이 놀러 가면 운전병들도 같이 모입니다. 그래서 서로 자기가 모시는 장교들에 대해 흉도 보고 자랑도 하는데 식사 값을 얼마를 주느냐를 자주 비교하곤 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식사값을 주는 것을 잊어버리는 장교도 있었고 5000원을 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1만원을 주면 정말로 좋겠다고 부러워하곤 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사람이 어떤 분이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분이 우리를 돌봐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또 다른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앞에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며 기도한다고 했지만 우리가 기도하며 주님이라고 말할 때에 그 말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주님이라고 부를 때에 누구를 먼저 떠올리십니까? 찬송가 가사를 예를 들어 말하자면 “주 달려 죽은 십자가” 할 때에는 예수님이지만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할 때에는 하나님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에 사실 우리는 그 기도가 예수님께 드리는 것인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지 별로 상관하지 않습니다. 요즘은 예수님께만 기도하고 하나님께 별로 기도를 안해서 걱정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런 신앙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이해하고 설명할 수는 없을지라도 삼위일체적인 신앙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구별되시는 분이시지만 우리 주님은 한분이라고 우리는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님이라는 말이 하나님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구약성경에서부터 시작된 전통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말라는 십계명의 세 번째 계명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감히 부를 수 없었기 때문에 구약성경에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면 “나의 주님”이라는 의미에서 “아도나이”라고 바꿔 불렀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하나님을 우리 주라고 부르는 여러 구절들을 구약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우리 주는 위대하시도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와 같은 표현들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당시에 주님이라는 말은 하나님이라는 말과 동의어였습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나서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주님과 하나님은 같은 의미가 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때에는 바로 이와 같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과 동등한 분으로 고백하며 경배하며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우리 주”라는 표현을 검색해보면 대부분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신약성경에는 “우리 주”를 검색해보면 대부분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우리 주 예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라는 표현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호칭은 여호와 우리 주,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에 상응하는 표현들입니다.

지난주에도 살펴본 것처럼 성경을 기록한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하나님과 동등한 분으로 여기고 예수님께 기도하고 예수님을 찬양하고 예수님을 경배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예배 드릴 때에 “성부 성자 성령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이 있을지어다”라고 선언하며 시작하고 “성부성자성령이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라고 축복하며 마칩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약하자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고백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시며 우리가 경배하는 하나님이십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에게 예수님에 대해 전해준 사도들의 신앙고백이며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이 믿음과 고백이 우리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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