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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십자가 / 이사야서 53:1-9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오늘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종려주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당하신 고난을 기억하는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 절기에 맞춰서 오늘은 사도신경 중에서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에 대한 고백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사도신경에서 예수님에 대한 고백은 우리의 상식과는 많이 다릅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고백에서 바로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에 대한 고백으로 넘어갑니다. 그 사이에 있는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모든 삶과 가르침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바로 우리의 죄를 위해 고난을 당하시고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삶과 가르침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성경 66권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한 가지만 꼽으라고 한다면 우리는 주저없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들이 십자가를 상징으로 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관된 사도신경의 고백이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는 구절입니다.

먼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라는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 본디오 빌라도에게라는 번역은 조금은 오해가 있을 수 있는 번역입니다. 사도신경의 라틴어 원문(sub Pontio Pilato, 영어로는 under Pontius Pilate)에는 영어로 말하자면 by가 아니라 under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디오 빌라도 아래에서, 다른 말로 하자면 “본디오 빌라도의 치세에”, 혹은 “본디오 빌라도가 다스리던 때에” 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본디오 빌라도라는 이름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역사성을 가리킵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AD 26년부터 36년까지 십년간 유대 땅을 다스렸던 로마의 다섯 번째 총독입니다. 신약시대에는 로마 총독 외에도 헤롯 왕이라고 불리는 왕이 등장합니다. 사실 성경에 여러번 등장하는 헤롯 왕들은 한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구별하기 위해서 역사가들은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에 유대 땅을 다스리던 왕을 헤롯 대왕이라고 부릅니다.

원래 로마제국은 헤롯 대왕에게 유대땅 전체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헤롯 대왕이 죽고나서 로마는 그의 아들들에게 유대 땅을 나누어서 맡겼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들들을 분봉왕(分封王), 즉 각 지역을 나누어 맡은 왕이라고 부릅니다.

로마는 헤롯의 아들의 충성도를 평가하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왕은 후계자를 인정해주지 않고 로마에서 직접 총독을 파견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역하실 때에 유대의 핵심 지역은 로마 총독이 직접 다스렸고 갈릴리 지역은 헤롯 대왕의 아들인 헤롯 안티파스가 다스렸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빌라도 총독도 나오고 헤롯 왕도 나오는 것입니다. 후에 사도 바울이 사역하는 시대가 되면 모든 헤롯 왕의 자손들이 다 왕위에서 물러나게 되고 로마 총독이 유대 지역 전체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시는 장면을 보면 본디오 빌라도라는 사람이 상당이 우유부단한 인물로 보이지만 당시의 유대인 역사가였던 요세푸스와 철학자였던 필로의 기록을 보면 그는 매우 잔혹한 인물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로마 총독들이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관습과 정서를 건드리지 않았지만 그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성전산에 로마 군기를 게양하게 하기도 하였고 성전에 사용될 비용을 돌려서 수로를 건축하고 항의하는 사람들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복음서에도 빌라도가 예루살렘 성전에 순례하러 온 갈릴리 사람들을 죽였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로마의 역사에도 기록이 된 인물이기 때문에 본디오 빌라도의 치세에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일어난 시기와 장소를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또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당하셨다는 것은 본디오 빌라도 한 사람에게 예수님의 고난의 책임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본디오 빌라도로 대표되는 이 세상의 권세 아래에서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끌려가셨을 때에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라”고 대답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을 다스릴 권세를 가지신 분이 이 세상의 불의한 권세 아래로 내려오셔서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오시기 수백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앞으로 우리를 위해 오실 고난의 종에 대해 전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에 대해 예언하면서 도살장에 끌려온 어린 양같았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연약한 어린양으로 이 땅에 오셔서 빌라도에게, 대제사장들에게,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그리고 소리치는 군중들에게 정죄당하고 멸시당하고 고발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히도록 넘겨지셨습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셨다는 고백은 자신들의 부당한 권세에 의지하여 아무 죄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게 한 모든 사람들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라는 구절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담긴 의미는 너무나 깊고 신비하고 은혜롭기 때문에 여러 가지 해석과 주석과 묵상이 기독교 역사 2000년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먼저는 바울과 여러 사도들의 글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고 그 후에도 기독교의 역사에서 수많은 신학자들, 영성가들, 설교가들, 기도하는 사람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길을 따르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깊은 의미들을 깨닫고 전해 왔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세 가지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은 우리에게 세 가지 유익을 줍니다. 첫째로는 예수님은 우리의 고난과 죽음에 동참하시므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둘째로, 우리를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셋째로,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을 본받아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르게 하십니다.

이 세 가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는데 오늘은 첫 번째 의미에 중점을 두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들 중에 플란다스의 개라는 만화영화를 기억하시는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만화 영화중에 가장 많이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그 만화영화의 주인공인 네로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파트라슈라는 이름의 개와 함께 우유를 배달하는 소년이었습니다. 네로는 가난했지만 그림에는 탁월한 소질이 있었는데 네로가 가장 보고 싶어했던 그림이 루벤스가 그린 “십자가에서 내려지시는 그리스도”였습니다. 그 그림을 오늘 주보의 표지에 실어 놓았습니다. 플란다스의 개의 배경이 벨기에인데 이 그림은 벨기에의 안트워프 대성당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을 보려면 비싼 입장료를 내야 했기 때문에 네로는 그 그림을 볼 수 없었습니다.

이 만화영화의 스토리는 네로가 억울하게 당해야 했던 슬픈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그리고 이 만화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 이미 지칠 때로 지친 네로가 성탄절 이브에 혹시라도 그 그림을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지막 희망을 안고 안트워프 대성당을 찾아옵니다. 그런데 우연히도 성당의 문이 열려 있어서 네로는 드디어 그가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루벤스의 그림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내려지시는 그리스도” 그림 앞에서 그가 사랑하던 파트라슈와 함께 숨을 거둡니다. 그러자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내 주를 가까이”라는 찬송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천사들이 내려와서 네로와 파트라슈를 이미 세상을 떠난 네로의 어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시는 천국으로 데리고 올라갑니다.

어린시절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슬픈 이야기였는데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살았던 네로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그린 그림을 그토록 보고 싶어 했고 그 그림을 보고 마음에 평안을 얻고 그 앞에서 숨을 거뒀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지시는 그리스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후에 예수님을 장사지내기 위해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리는 장면을 성경의 기록을 바탕으로 상상을 덧붙여서 그린 그림입니다.

그 그림을 잠시 보시면 십자가 위의 두 사람은 돕는 일꾼들이고 가운데 좌측은 예수님에게 무덤을 제공했던 부자인 아리마대 요셉, 오른쪽은 밤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기 위해 니고데모가 찾아왔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이 그림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래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받치고 있는 빨간 옷을 입은 사람은 유일하게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까지 따라갔던 사도 요한이고 아래쪽 세 여인은 예수님의 십자가까지 따라왔다고 기록되어 있는 세 명의 여인들입니다. 이 여인들의 이름이 모두 마리아였는데 좌측에 슬픔에 빠져있는 파란 옷을 입은 여인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이고 그 오른쪽에 있는 여인이 성경에 예수님의 이모이며 글로바의 아내라고 말하는 또 다른 마리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있는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장면 중에 가장 슬픈 장면,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는 예수님을 사랑하던 사람들의 슬픔이 가득 담긴 이 그림 속에서 우리는 우리를 위해 고통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사도신경의 앞부분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 묵상하면서도 말씀드렸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저 멀리 하늘에 계시고 왜 이 땅의 고통에 관여하지 않으시는지 불만을 갖습니다. 이 세상의 다른 종교들은 그런 신을 믿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성경에서 가르쳐 주는 하나님은 이 세상의 고통과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니고 이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 모두의 고통을 함께 겪게 하시고 그 아들과 함께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겪으시는 분이십니다.

기독교 신앙 안에서 우리가 믿고 경배하는 대상은 저 멀리에 떨어져 계신 전능하고 거룩하기만 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슬픔과 고통을 함께 겪으시고 죽음의 자리까지 내려오신 분이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오늘 본문 3절에서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고통과 질고를 다 겪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의 히브리서에서는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브리서 2:8)고 가르쳐 줍니다.

몇 년 전에 작고하신 영국 성공회의 신학자이며 목회자이고 기독교계의 세계적인 지도자이기도 했던 존 스토트(John Stott) 목사님이 쓰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십자가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싶으신 분들은 꼭 한번 도전해보실 만한 책입니다. 그 책에 이런 내용에 “기나긴 침묵”이라는 제목의 연극의 내용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이 세상의 마지막 심판 날에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심판할 수 있느냐며 불만을 터뜨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그들의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대표자를 뽑습니다. 그렇게 뽑힌 사람들은 한 명의 유대인, 한 명의 흑인, 원자폭탄이 터진 히로시마에서 온 사람, 지독한 불구가 된 사람 등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심판관으로서의 자격을 부여받기 위해서는 하나의 인간으로 살아서 그들이 당했던 모든 것을 견뎌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 명씩 나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를 유대인으로 태어나게 하자. 그의 출생의 합법성이 의심을 받게 하자, 그에게 대단히 어려운 일을 하게 해서 그의 가족들조차 그를 미쳤다고 생각하게 하자. 그가 가장 친한 친구에게 배반을 당하게 하고 그가 부당한 비난을 받고 편견에 가극찬 배심원들에게 재판을 받고 비겁한 재판관에게 선고를 받게 하자. 그가 극한 고통을 당하게 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 무섭도록 외로움을 겪게 하고 그를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죽게 하자.” 이렇게 한 가지 한 가지 조건을 말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찬성이요라고 외칩니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사람이 판결을 발표하는 것을 마쳤을 때 기나긴 침묵이 흘렀다. 아무도 다른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갑자가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이미 그 형벌을 다 당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네로는 루벤스가 그린 수많은 그림 중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그린 그림을 가장 사랑했고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그의 힘겨운 삶의 마지막 위로를 얻었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고통과 두려움과 연약함을 아시고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인생의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위로하실 뿐아니라 인간의 모든 연약함과 고통의 근원이 되는 우리의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셨고 우리를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구원해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5절에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라디아서 3:13)라고 가르쳤고 디도서에서는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디도서 2:14)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8)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은혜와 평강으로부터 끊어진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 대신에 우리의 죄의 모든 대가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와 하나님의 화해하게 하는 화목제물이 되셨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오늘도 하나님 나라의 축복과 기쁨을 지금도 베풀어 주십니다.

셋째로,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을 본받아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르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시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가복음 8:34) 사도 바울은 그의 인생의 목적에 대해 말하면서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빌립보서 3:10-11)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까지 따라가서 그 모든 장면을 직접 보았던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한1서 3:16)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이 세상을 가장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우리의 이웃들을 위해 사랑하고 섬기고 희생하며 헌신하는 삶으로의 부르심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고 섬기는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고통 중에 함께 하시는 분이시며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대신 감당하신 분이시고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모범을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위로와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과 예수님의 십자가의 모범이 오늘 모든 성도님들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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