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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승리 / 고린도전서 15:19-26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오래전에 말레이시아를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중국 연변에서 사역할 때였는데 말레이시아에서 중국내 한인 선교사 대회가 열려서 말레이시아를 가게 되었습니다. 대회가 끝나고 시간을 내어서 같이 간 선교사님과 몇 군데를 둘러보았는데 그 중에 말라카라는 유서 깊은 항구도시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 곳 저 곳을 다니는 중에 말레이시아 독립선언기념관을 들어가 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말레이시아의 근대역사가 정리가 된 전시관을 보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원래 말레이시아는 오랜 세월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는데 2차세계대전 때 일본군에 의해 점령이 되었습니다. 일본은 말레이시아를 3년간 통치했는데 일본사람들이 말레이시아 사람들을 잘 대우해준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의 경험과 그들의 경험은 상당히 달랐습니다. 그들은 그동안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일본군이 쳐들어오고 영국군대가 패주해서 도망하는 것을 보고는 영국을 몰아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이 전쟁에서 패한 후에 영국 사람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지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이 일어나서 결국 1957년에 말레이시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부활절을 맞이하면 그때 배웠던 말레이시아의 역사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모든 인간은 죽음의 그림자 아래에서 살아갑니다. 죽음이란 결코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죽음에 대해 아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고 그렇게 확실하지 않습니다. 죽음의 과정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있지만 죽음의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과제들이 남아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아직 우리가 왜 죽는지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충분한 설명을 얻고 있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신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우리에게 죽음의 권세가 영원히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우리가 우리의 인생과 죽음과 생명을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줍니다.

저는 이 세상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을 배격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저러한 생명과 죽음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들을 읽다보면 내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도 너무나 낯설고 때로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설명이 이게 다인가? 과학적인 설명을 유일한 진리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우리의 삶의 목적과 의미와 가치가 이런 과학적인 용어들을 통해 설명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진정으로 이런 설명에 만족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들이 들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삶과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들을 추구합니다. 그런 인간들의 노력을 통틀어서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종교를 만들었고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철학을 만들었으며 죽음을 승화하기 위해 예술을 만들고 죽음을 극복한 모델로 영웅을 만들었다.”

저도 이제 인생의 한 절반 정도를 살았다고 생각하고 그동안 20년을 전도사로서, 목사로서 목회 현장에 있으면서 많은 죽음을 보고 여러 가지로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가르쳐 왔지만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삶과 죽음, 생명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좀 더 깊이 들여다봐야겠다는 숙제를 얻게 되었습니다.

목사로서 제가 인간의 삶과 죽음을 들여다 보고자 하는 결정적인 틀은 바로 예수님의 부활사건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이 결코 인간의 영원한 숙명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빛 아래에서 우리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죽음과 부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두 가지 계기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제가 존경하는 한 목사님 때문입니다. 그 분은 40대에 큰 아들을 사고로 잃었고 당신 자신도 두 번이나 암이 발병하여서 누구보다도 죽음 가까이에서 죽음에 대해 깊이 묵상을 하신 분이십니다. 그 목사님은 그 힘겨운 과정을 극복하면서 기독교의 복음이야말로 죽음에 대한 완벽한 해답이라는 확신을 얻게 되셨습니다. 그 분에게 가르침을 받고 배워가는 과정을 통해 저도 죽음이라는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부활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일깨워 준 것은 한 권의 책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우리말 번역으로는 “마침내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라는 제목의 책인데 원서의 제목은 “Surprised by joy”입니다. 직역하면 기쁨으로 놀라다 정도가 될 터인데 이 책은 영국의 신학자인 N.T.라이트(N.T.Wright)가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에 대한 매우 체계적이고 깊이 있게 연구하여 저술한 책입니다. 이 책과의 인연은 이 책을 출판한 출판사의 편집장이 제 신학교 동기인 목사님이었는데 이 책을 출간하면서 이 책의 내용을 주제로 한 좌담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담자로 저와 또 한 목사님을 초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덕분에 부활에 대해서는 당연하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제 스스로는 사서 읽지 않았을 것 같은 책을 열심히 읽고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그 책에서 제시하는 예수님의 부활의 역사성과 부활의 의미에 대해 인상깊은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 더 깊이 알기를 원하시는 분은 존 스토트 목사님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시라고 말씀드렸는데 부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깊이있게 살펴보고 싶으신 분들은 “마침내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에 한번 도전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와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결과에 대해서는 저도 더 깊이 연구해야 하는 주제이고 오늘도 시간상의 제약이 있어서 지금으로서는 자세히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사도신경에는 부활에 대해 두 번의 고백이 있습니다. 오늘 다루는 주제는 예수님의 부활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또 뒤에 성도들의 부활에 대한 고백이 한 번 더 나옵니다. 그때에 한 번 더 말씀을 나누기로 하고 오늘은 사도신경에 표현된 고백의 내용을 살펴보는 데에 초점을 맞추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장사된지 사흘만에 라는 고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는 예수님의 죽음의 실제성에 대한 고백입니다. 삼일 째 되는 날에 부활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잠시 기절하셨다가 깨어나셨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이 완전한 죽음이었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장례를 치를 때에 보통 삼일장을 치릅니다. 돌아가신 다음날에 입관을 하고 그 다음날에 발인을 하고 하관을 합니다. 그 이유는 애도와 장례의 준비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해서 시간적으로 삶과 죽음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장사된지 사흘 만에 라는 표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장례의 모든 절차를 다 마치시고 완전한 죽음이 확인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한 가지의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때를 구체적으로 가리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뿐만 아니라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예수를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서 부활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부활에 대한 믿음이나 신앙적 비유 혹은 상징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십자가가 기독교의 대표적인 상징이기는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사실 그 자체를 믿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 것이고 예수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형을 언도받고 사형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에서 부활하신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을 역사적인 사실로 믿기보다 그 의미나 상징만을 취하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부활을 기록하는 방식을 잘 살펴보면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실제로 일어난 사건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활에 대한 일차적인 기록을 제공하는 복음서들은 부활에 대해 신학적, 비유적,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다. 부활에 대한 해석은 바울의 서신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을 뿐 정작 복음서들은 부활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만을 전하며 복음서를 끝맺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서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읽어간다면 복음서의 저자들이 자신들의 신앙이나 믿음에 대해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경험한 사실, 그들 가운데 일어난 한 놀라운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명절인 유월절에 돌아가셨습니다. 공관복음에 따르면 그날은 당시에 사용하던 유대인들의 달력으로는 니산월 15일이었습니다. 니산월은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으로는 대개 3월에서 4월 사이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은 요일로 말하자면 금요일이었습니다. 그 다음날이 우리로서는 토요일, 유대인들이 말하는 안식일이었고 예수님은 안식일 다음날, 우리의 달력으로는 일요일 아침에, 그러니까 삼일째 되는 날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만 말하지 않고 장사된지 사흘만에 라는 설명을 덧붙인 것은 구체적으로 예수님이 언제 부활하셨는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또한 초대교회로부터 교회는 부활절의 날짜를 기억하며 계승해 왔습니다. 기독교의 여러 절기들 중에 가장 처음에 날짜가 확정된 것은 부활절입니다. 오늘날 부활절의 날짜가 한달 정도의 간격으로 움직이는 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초대교회 성도들이 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유대교의 달력을 기준으로 날짜를 기억하고 그 날짜에 정확하게 부활절을 기념하고자 했는데,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달력이 일종의 음력이었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입니다.

즉 초대교회부터 부활절을 기념할 때에 그 의미만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언제 일어났는지를 기억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뿐 아니라 유대인들은 우리들의 토요일에 안식일을 지키는데 반해서 신약시대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안식일 다음날, 우리들이 말하는 일요일을 주님의 날이라고 부르며 그 날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부활을 경축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렇게 매 주일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대부분의 첫 번째 그리스도인들 모두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무엇보자도, 때로는 심지어 목숨보다도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유대인이었던 초대교회 성도들이 안식일이 아닌 다른 날을 택하여 함께 모이고 예배하는 날로 삼았다는 것은 그들의 신앙의 기준을 바꿀만한 매우 중요한 일이 그날 일어났었다는 말로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한 때 러시아어를 열심히 공부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다 까먹고 기억나는 것이 인사말 몇마다 말고는 거의 없는데 그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단어가 바로 일요일을 가리키는 러시아어였습니다. 일요일을 러시아어로 “바스크레세니에(Воскресенье, Voskresenie)”라고 하는데 그 말은 여러분들이 아시는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의 원제목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러시아 사람들은 일요일을 늘 부활절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중요한 전통입니다. 우리가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부르며 이날 함께 모이는 것은 이 날이 우리 주님이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전통들은 처음에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했던 사람들이 부활을 분명히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인식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의 명단까지 제시합니다. 그가 고린도전서를 기록한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신지 20년도 되지 않았을 때이고 그가 직접말하는 것처럼 자기 자신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뿐아니라 자신이 거명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났고 그들이 지금도 대다수가 살아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초대교회에서 부활을 대하는 태도가 신화적, 신앙적, 상징적이 아니라 경험되고 증언될 수 있고 목격자들에게 확인할 수 있는 사실로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다음으로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라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여기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고백의 의미를 이렇게 풀어보면 어떨까 합니다.

죄송하지만 여러분이 평생을 감옥에 갇혀서 지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고 합시다. 그 감옥에는 그동안 살아서 다시 밖으로 나간 사람이 없기에 나도 다시는 바깥 세상으로 나갈 가능성이 없이 평생을 여기서 썩어서 살아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날 어떤 잘 생긴 귀공자가 한 사람 감옥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뭐 이렇게 말씀드리기는 죄송하지만 아버지를 잘 만나서 며칠 만에 다시 풀려났다면 그걸 보고는 이런 생각이 들겠죠. 아니 누구는 평생 여기서 썩어야 하는데 왜 저 사람은 다시 풀려나는 거지? 그 사람과 내가 뭐가 다른 데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더 나아가서 그럼 나도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면 이 고백의 의미에 좀 더 다가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죽은 자의 자리에 까지 내려가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은 그러므로 다른 죽은 자들도 다시 살아날 소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좀 더 해보면, 요즘으로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 귀공자가 아버지를 잘 만나서 감옥에서 다시 나갔다면 나도 그런 아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겠죠. 그런데 만일 그 귀공자가 감옥에 있을 때에 나하고 친하게 지낸 덕분에 그가 밖에 나가서 아버지에게 나에 대해 잘 이야기를 해줘서 그 아버지가 나를 자신의 양자를 삼겠다고 하면 또 이야기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나도 그런 아버지를 갖게 되는 것이고 그 아버지 덕분에 나도 감옥에서 나갈 수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믿음을 표현한 것이 바로 우리가 암송하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인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서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교회에서 강조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보니 참 대단하신 분이시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들 모두에게도 부활의 소망을 주는 사건이 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말씀을 드릴 기회가 있으니 그 때에 정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살아나셨으며”라는 고백을 살펴보겠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하는 공동체로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가룟 유다가 죽은 후에 그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사도를 새로 뽑게 되었을 때에 새로 뽑게 될 사도가 해야 하는 역할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즉 사도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초대교회 공동체는 서로 자신이 가진 것을 서로 나누는 유무상통의 공동체였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은 그 이유를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기 때문에 성도들이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도 바울도 가는 곳마다 늘 강조했던 것이 예수님의 부활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조롱도 당하고 또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중요한 이유는 앞에서 우리의 부활의 소망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는데 다른 말로 하자면 예수님의 가르침의 성취가 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늘 하나님의 나라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말씀하시며 공생애를 시작하셨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비유로 가르치시고 그 나라가 예수님의 사역과 함께 이 세상에서 마치 겨자씨와 같이 시작되었지만 결국은 온 세상을 뒤덮는 권능의 나라가 될 것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나라를 가로막는 세력, 바로 인간의 죄의 결과로 찾아온 죽음의 권세를 가지고 이 세상을 다스리는 사탄의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나라의 승리의 선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이 세상의 종말에 대해 비유적인 표현으로 D-day와 V-day를 사용하곤 합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들어보신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다른 전쟁에서도 사용될 수 있는 용어이지만 주로 2차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설명을 합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신앙에 대한 비유로 자주 사용이 되었지만 2차세계대전이 끝난지 오래되어서인지 요즘은 그리 자주 듣게 되지 않습니다.

전쟁에서 D-day는 적군에 대한 결정적인 공격이 이루어진 날을 의미하고 V-day는 최종적으로 승리가 선언되는 날을 의미합니다. 2차세계 대전에서 D-day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의미하고 V-day는 독일군이 항복한 날을 의미합니다.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통해 연합군은 독일군에게 치명적인 패배를 안겼지만 전쟁이 그때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유럽에서 전쟁이 끝난 것은 1945년 5월이었습니다. 그때가 V-day가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는 D-day와 같습니다. 예수님이 죽음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심으로 사탄의 권세를 결정적으로 꺾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이 이 세상의 모든 악한 권세가 최종적인 종말을 거두는 날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은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 가르치고 그 때에 죽음도 완전히 멸망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날이 우리들에게는 사망의 권세로부터 풀려나 부활의 기쁨을 누리는 날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앞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이 베풀어 주실 베풀어 주실 영원한 생명의 능력과 기쁨을 미리 맛보며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믿음의 행진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어도 여러분들의 삶이 별로 달라지는 것 같지 않고,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어도 여러분 안에 별로 사랑과 섬김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언제부터인가 인간이란 다 별수 없는 것이며 다 그렇게 살다 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예수는 믿어도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은 그 분의 승리를 모든 믿는 자들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부활의 승리를 확실히 믿는다면 오늘 이 순간에도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우리의 삶을 통해 나타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은혜가 모든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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