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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을 구하는 기드온의 기도 / 사사기 6:36-40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독특했던 시기가 사사시대입니다. 일단 사사라는 말부터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습니다. 사사(士師)는 한문으로는 선비 士자에 스승師자를 쓰는데 그래도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습니다. 구약성경의 원문인 히브리어로는 쇼페팀이라는 말을 번역한 것인데 재판장, 혹은 정의를 세우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사사라고 번역한 것은 중국 고대 관직명 중에서 유사한 의미를 갖는 말을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사들의 활동의 모습을 보면 사실 재판장이라기 보다는 군사령관 혹은 우리나라 역사와 비교하자면 의병장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로 예외도 있습니다. 삼손과 같은 사람은 괴력을 지니고 혼자서 활동을 했기 때문에 여러사람들을 조직하고 이끄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갖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사들은 이스라엘 민족들이 외적들에 의해 지배당하고 어려움을 겪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선택하신 사람들로서 백성들을 모아서 군대를 조직해서 이민족들을 몰아내고 백성들의 신앙을 바로잡고 평화 시에는 재판장의 역할을 수행했던 사람들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사시대를 독특하게 만드는 것은 사사라는 이름과 역할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사사가 임명되는 방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사는 왕과는 달리 세습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번 사사가 누가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아니 사사는 없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평화 시에는 아예 사사가 임명되지 않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각 지파들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라가 위기에 닥치면 단결을 하고 조직을 해야 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고 그 때 사사가 등장을 합니다. 그런데 사사가 등장하게 되는 시대적인 배경이 그때 그때 다르기 때문에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사사들의 활동의 모습도 다 다릅니다. 그래서 전국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활동을 했던 사사들도 있었지만 자신이 속한 지파와 지역 내에서 한정적인 활동을 했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사라는 직책은 어떤 제도나 절차에 따라 임명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택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선지자들과 가장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과 같은 사람은 사서의 역할을 한 사람이면서도 또한 선지자라고 불리기도 하고 엘리야 같은 사람은 선지자이면서 또한 사사와 같은 면모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사사를 하나님이 직접 택하여 세우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상징하는 참으로 은혜로운 일이지만 이런 경우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확신의 문제입니다. 내가 사사인지, 저 사람이 사사인지 어떻게 아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내가 사사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고 말하면 어떻게 그 말을 믿을 수가 있을까요? 게다가 그래도 나름 명망이 있는 집안에서 나와서 스스로 어느 정도 세력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면 그냥 믿고 따라볼 수도 있겠지만 사사들의 출신은 매우 다양했습니다. 그러니 그야말로 사사 같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사기를 보면 처음에는 따르지 않다고 나중에 승리를 거두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표적이 나타날 때에 합류하는 그런 사람들도 보게 됩니다. 기드온의 이야기 뒷부분에도 그런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실 더 심각한 문제는 내가 사사인지 어떻게 아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과연 나를 택하신 것인지 어떻게 확신을 할 수 있느냐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성경 속에서처럼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경우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 속에 있는 인물들도 늘 하나님의 뜻을 금방 확신하게 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적을 체험해도 믿음을 갖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아브라함의 경우에도 말씀을 드렸던 것처럼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조상들은 하나님을 매우 주관적이고 개인적으로 만났습니다. 오늘 본문이 기드온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도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을 이해하고 해석하며 확신하며 순종하고 적용하는 것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기드온입니다. 

기드온이라는 이름은 호텔이나 군부대 등에 성경을 무료로 배부하는 국제기드온협회라는 이름을 통해 잘 알려져 있고 또 기드온과 300용사의 이야기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믿음의 확신과 용기를 가진 인물처럼 느껴지지만 성경에서 기드온이 사사로 선택을 받는 과정을 보면 기드온이 처음부터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드온의 시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 사람들에 의해 고통을 겪던 시대였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은 추수 때가 되면 이스라엘을 덮쳐 와서 거둬놓은 모든 곡식과 가축들을 다 가져가서 이스라엘에 먹을 것이 없어 궁핍함이 극심했습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이 사사로 택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하신 사람이 기드온이었습니다. 

처음에 기드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은 밀을 타작할 때였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추수 때가 되면 미디안 사람들이 추수하려는 것을 다 빼앗아 가기 때문에 기드온은 밀을 타작할 때에 미디안 사람들 몰래 포도주를 짜는 틀이 있는 곳에서 밀을 타작을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천사가 기드온에가 나타나서 기드온에게 말을 건냅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보통 이런 말을 들으면 사람들이 엎드리고 두려워하고 또 감히 제가 어떻게 그런 은혜를 입겠느냐고 부끄러워하고 뭐 그래야 하는데 기드온은 전혀 그런 태도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기드온은 오히려 천사에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어떻게 이런 일들이 벌어지냐고 따져 묻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말하던, 우리를 애굽에서 건져서 가나안 땅까지 오게 하셨다는 그 하나님이 옛적에 베푸셨다는 이적은 다 어디로 가 버린 것이냐,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니냐고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불만과 회의를 토로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입장에서 조금만 이야기를 바꿔보자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가 어디 있는가?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 세상이 이 모양인가? 성경에는, 과거의 교회의 역사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가 있다고 하는데 그러면 그 하나님은 이 세상을 버리신 것이 아닌가, 이런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도전하며 회의하는 기드온을 오히려 택하셔서 바로 기드온이 이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기드온이 너무나 뻣뻣해서 확신을 갖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천사를 통해서 계속해서 기드온과 대화를 하십니다. 기드온에게 “네가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랬더니 기드온은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라고 대답합니다. 우리 집안은 별볼일 없는 집안이고 우리는 가진 것이 없는데 나를 택하신다고 해도 내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계속 버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해서 미디안을 물리치게 하겠다고 다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급기야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라고 까지 이야기합니다. 

이 이야기는 조금 바꿔서 이야기해보면 지금 천사가 나타나서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며 대화를 하고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당신에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데 당신이 천사인지, 당신이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는 제물을 가져옵니다. 떡을 만들고 고기를 가져오는데 그가 가져온 고기는 삶은 고기였고 그 고기를 삶은 국물을 같이 가져 왔습니다. 천사는 기드온의 무슨 생각하는지를 알고 아마도 “야 이놈 봐라”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기와 떡을 여기 바위에 놓고 국을 그 제물 위에 부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손에 잡은 지팡이를 내밀어서 그 제물에 대니까 불이 바위에서 나와서 고기와 무교병을 태워버렸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사라집니다. 

그러니까 기드온은 정말로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 자신에게 나타나신 것이라면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일이라는 표적이 필요했고 그래서 겸사겸사 제물을 바치되 당시에 제사는 다 제물을 태워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기에 절대로 불이 붙지 못할 제물을 가져다 놓은 것입니다. 사람으로서는 불을 붙일 수 없는 국물 속에 젖은 제물을 갖다 놓고는 당신이 정말로 천사고 하나님이 보내셨다면 이것을 태워보시오라고 내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제물을 얹어 놓은 바위에서 불이 나와서 제물을 다 태우는 것을 보고서야 기드온은 자신이 하나님의 천사를 만났고 하나님이 자신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기드온은 자신을 하나님이 택하셨고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사사로서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처음으로 내리신 명령은 당시에 미디안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서 이스라엘에 만연되어 있던 우상 숭배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사는 동네에 있는 바알의 제단과 아세라 신의 목상을 찍어버리고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그 나무를 가져다가 불을 피워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드온은 그 말씀에 따르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두렵고 하나님이 자신을 지켜주신다는 확신을 갖기가 어려워서 밤에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몰래 가서 바알의 제단과 아세라 우상을 찍어버렸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사람들이 우상이 찍혀나간 것을 보고 수소문을 해서 기드온이 저지른 일이라는 것을 알아내고는 기드온을 찾아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선택하셨다는 이 기드온은 아버지 뒤에 숨어서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의 아버지가 대신 나서서 아니 바알을 위해서 너희들이 찾아왔느냐, 바알이 정말 신이면 자기 제단을 찍어버린 놈을 그대로 두겠느냐고 말해서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할 말이 없게 만들어서 사람들을 보냅니다. 

이 집안이 말은 참 잘하는 집안 같은데 아무튼 기드온은 입은 살아있는데 용기와 확신은 없는 그런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드디어 미디안과 결전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은 그동안 이스라엘을 추수때마다 약탈을 했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침공을 합니다. 기드온도 이번에는 용기를 더 내어서 함께 싸우자고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그런데 이렇게 미디안과 싸우러 나가는 상황 속에서도 기드온은 불안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자신을 택하신 것인지 이 싸움에서 자신과 함께 하시는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여기서 두 번이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싸우러 나가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말씀은 하셨지만 믿기지가 않습니다. 내가 정말로 말씀하신 것인지, 내 착각은 아닌지, 만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싸움이 아니라면 지금 미디안을 맞서서 싸우러 나가는 것은 사실 죽으러 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기에 도저히 기드온은 그대로는 나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중요한 순간에 지체하는 기드온을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아직도 믿지 못하고 의심하냐고 질책하지 않으시고 그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 주십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 아침에 보니까 기드온이 요구한 대로 주위의 땅은 다 말랐는데 양털에만 이슬이 가득 맺혀서 짜보니까 물 한그릇에 가득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참 기드온이 너무나 똑똑합니다. 또 생각을 합니다. 상당히 과학적으로 생각을 하는 것인데 양털이 물을 더 잘 흡수하니까 그냥 이슬이 내려도 주변의 땅의 물을 양털이 다 흡수해서 주변 땅은 마르고 양털만 젖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혹은 땅은 아침에 금방 말라버리고 양털만 아직까지 젖어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차 싶었던지 다시 조건을 바꾸어서 이번에는 양털만 마르고 주변 땅은 다 젖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은혜로운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기드온의 불신과 변덕을 다 받아주시고 그가 확신을 얻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은 드디어 확신을 가지고 전쟁터로 향합니다. 

여러분, 성경이 그냥 믿으라고 강요만 하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이 없어도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성경을 주신 것은 우리의 믿음을 도우시기 위함입니다. 

기드온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성경 속의 인물들도 그 시대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확신하지 못했고 또 자신이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도,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셨다는 것도, 직접 체험을 하고 나서도 그 확신을 계속해서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드온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확신을 갖기까지, 그 확신을 지키고 확인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모습입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기도에 대해 배울 때에 들었던 말씀 중에 오래 기억이 남는 것이 기도는 단막극이 아니라 연속극이라는 어느 교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기드온도 그렇지 못했는데 우리가 어느 한 번의 기도나 체험으로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결정적인 순간에 “다음 시간에”하고 끝나는 연속극처럼 우리가 간절히 기도할 때 뭔가 하나님이 말씀하실 것 같은데 결국 아무런 음성도 확신도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확신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드라마는 대개 몇 부작인지 정해져 있지만 이 기도의 연속극이 몇 부작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결론이 날 때까지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헛갈리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에게 확신을 주십니다. 기도 중에 들려주시는 음성을 통해서, 꿈을 통해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중에, 설교를 듣는 중에, 주위의 믿는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마음의 평안과 확신을 통해서, 여러 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기고 우리가 구하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인도하시고 가르쳐 주십니다. 

물론 사안의 경중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문제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우리가 흔히 그런 말을 하지만 여러분 짜장면을 먹을 것인가 짬뽕을 먹을 것인가, 이런 것은 우리가 그냥 결정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성을 주셨고 판단력과 분별력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성과 판단력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지만 우리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많은 영역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그런 우리의 일상적인 판단력의 한계를 넘어는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한 선택과 결단의 문제들과 같은 경우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지겠지만 그 결과를 우리가 미리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옳은 일인지 알면서도 꼭 내가 해야 하는 일인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 두렵고 확신이 서지 않는 일들도 있습니다. 기드온의 경우가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반대로 하면 안되는 일 같은데 자꾸만 내몰리고 거부할 수 없는 압박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거절해야 하는데,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데 우리의 마음에 속삭이는 유혹의 음성이 있고 세상을 복잡하게 보게 만들어서 우리 눈과 우리의 판단력이 흐려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에도 우리의 마음을 단순하게 정리해주시고 악한 것을 악한 것을 보게 하시고 거절할 것을 거절하고 끊을 것을 끊을 수 있는 결단력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때로는 정말로 어떻게 해야할지 전혀 알수 없는 완전히 막다른 구석으로 내몰린 것 같은 절망 속에 있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쪽이나 저쪽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아무런 길이 보이지 않고 도무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우리의 이성이고 경험이고 판단이고 간에 아무것도 도움이 안되는 그런 순간들이 있습니다. 
 
이럴 때에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때까지, 확신시켜 주실 때까지, 마음의 힘을 주셔서 결단할 수 있을 때까지, 하나님이 막힌 것을 여시고 도움의 손을 베풀어 주실 때까지 간절히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언제 어디서 기도하고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입니다. 머릿속이 터지고 복잡할 때에는 사실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 가르쳐 주세요, 하는 말이, 생각이 하루 종일 계속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식당에서 call 버튼을 누르거나 응급할 때 119 전화를 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 되시고 구원자되심을 인정하는 경배와 예배의 자리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나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 내 삶을 의탁드리며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서 어디서나 아무 때나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에는 우리의 경건과 정성과 진심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을 정해서 하나님께 나가서 온전히 집중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하나님께 드리는 여러분의 일상속의 시간과 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배의 시간에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럴 수 없는 경우에, 아니 거기에 덧붙여서 여러분의 가정, 여러분의 직장을 하나님께 기도하는 곳으로, 예배의 장소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부끄럽지만 저의 경험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저는 주로 교회에서 생활하고 교회 가까운 곳에서 살기 때문에 교회에서 기도합니다. 새벽기도나 수요예배시간에 기도하고 또 기도의 제목이 있을 때에 성전에 와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저도 예전에 평신도 때에, 교회에서 멀리 떨어져 살았을 때가 있었습니다. 물론 그때에도 시간이 되면 교회에 와서 기도하곤 했지만 그때에 제 삶의 자리에서 제가 기도하는 몇 가지 장소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침상머리입니다. 제가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인데 그냥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책상에 앉아서 기도할 수도 있고 침대에 누워서 기도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이 느껴질 때에는 자기 전에, 아니 도저히 잠을 청할 수 없을 만큼 괴로울 때에, 바닥에 내려와서 무릎을 꿇고 침대 머리맡에서 기대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또 제게 매우 기억에 남는 기도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전에 제가 직장생활 할 때의 다니던 회사의 회의실이었습니다. 제가 직장생활을 하다가 정말로 간절히 기도해야 할 일들이 있을 때에, 뭐 제 자리에서 기도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집중해서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들이 있을 때에는 점심시간에 금식을 하고 다른 사람들 다 식사하러 나갔을 때에 비어있는 회의실에 들어가서 문을 잠궈놓고 기도했습니다. 한번 그렇게 기도했는데 너무 좋아서 제가 그 회사를 다니는 중에는 그렇게 회의실을 기도실로 자주 사용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다 아시는 대로 저는 직장생활 하다가 중국 연변으로 선교사로 가게 되었는데 이런 기도의 자리들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깨닫고 결단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공간에 여유가 있으시다면 아예 집에 기도실을 하나 만들어 놓으셔도 놓을 것입니다. “War Room”이라는 영화를 보신 분이 있으신지 모르겠는데 집 안에 기도의 골방을 만들면서 생기는 변화에 대해 감동적으로 그려놓은 영화입니다. 

여러분 어디든 좋습니다. 아, 하나님이 나를 기도하라고 부르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때, 아, 이제는 내가 다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나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에 여러분의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기도의 시간과 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그 곳에서 여러분의 기도의 연속극을 계속해서 써나가야 합니다. 응답을 받을 때까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때까지, 더 나아가 순종할 수 있을 때까지, 결단하고 실천할 수 있을 때까지, 지혜를 주시고 분별력을 주시고, 마음의 힘을 주시고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도록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진심으로 하나님께 드리며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며 선하신 뜻을 보이시고 우리를 통해 역사하실 것입니다. 이 은혜가 모든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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