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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전쟁 / 창세기 14:5-12

역사에 대해 공부를 하거나 역사와 관련된 책을 읽게 될 때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 중의 하나이면서 저로서는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가 바로 전쟁입니다. 수많은 인간들이 서로 적대하는 두 집단으로 나뉘고 동원이 되어서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총 동원하여 평소에는 절대적으로 금기시 되는 살인을 집단적으로 저지르게 되는 것은 인간이 저지르고 또 경험하게 되는 가장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인간이 대규모로 저지르는 폭력 중에서 우리가 전쟁이라고 말할 때에는 국가가 주체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국가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는 한 국가 내의 폭력을 독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는 내적으로는 폭력을 억제하고 제거하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외적으로는 언제든지 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효과적인 준비를 갖추는 것을 기본적인 역할로 가지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직접적으로 싸우는 개별적인 두 당사자들 사이에는 특별한 개인적인 원한관계를 찾아볼 수 없는 경우에도 국가에 의해 동원이 되고 명령을 받았다는 이유로 극히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별다른 저항없이 이러한 전쟁에 참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평소에는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겨지던 생명보존의 원칙을 적극적으로 깨뜨리는 인생의 가치의 전복을 격게 됩니다. 그리고 평상시라면 흉악한 살인라고 불릴 수 있는 행동이 영웅적, 애국적인 행동이 되어 명예를 얻습니다. 이때 국가는 이렇게 벌어지는 대규모의 폭력을 정당화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가능한 이류로 여러 가지 정치적, 이념적, 현실적 이유들을 제시할 수 있겠지만 사실 무엇보다도 인간의 본성 안에 폭력성이 여전히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가장 문명화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사회도 어느 한 순간에 지극히 폭력적으로 변화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바하와 괴테와 베토벤의 나라인 독일이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을 일으켰는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풀어나가야 할 수수께끼이지만 또한 그만큼 인간의 본성안에 어두운 심연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인간의 발달된 문명이 결코 평화를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이 더 효과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도구를 생산하는데 언제든지 사용되어 왔고 또 그런 전쟁이라는 상황이 과학기술의 발전에 촉매제의 역할을 해오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국가가 평범하고 소심한 인간들을 전쟁에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들 안에 내재한 증오와 폭력과 살인의 광기를 국가라는 수단을 통해서 표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를 더욱 당혹시키는 것은 성경 안에도 여러 전쟁에 대한 기록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전쟁을 명령하시기도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기독교의 전통 안에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으로부터 시작되는 평화주의의 전통과 더불어 거룩한 전쟁 혹은 정당한 전쟁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전통들도 함께 존재해서 전쟁을 일으키고 또 정당화해오기도 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시간에 좀 더 깊이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으로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한편으로 전쟁이라는 것이 이처럼 이해하기 어렵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그러나 또한 인간들에게는 그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고 일상의 삶을 회복하는 경이로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인류의 역사상 수많은 전쟁들이 있어왔지만 아직까지 인류가 멸망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은 또 다른 한편으로는 희생과 용기와 헌신의 이야기들의 무대가 되고 극한적인 상황 속에서도 발휘되었던 김동적인 미담들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인간에게는 한편으로 전쟁으로 휘몰아가는 광기와 같은 어두운 본성이 있는가하면 또한 그러한 전쟁의 상흔으로부터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또한 어두울수록 더욱 빛나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직도 남아있어서 그러한 혼란과 비극의 현장에서도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되기도 합니다. 

또한 전쟁을 겪은 사회가 과거의 상처와 고통과 증오심을 극복해가면서 현실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다시 관계를 맺고 협력을 하고 또 다른 재앙의 위기로부터 미래를 구원해가는 모습들도 놀라운 일입니다. 

저는 요즘 베트남 사람들이 참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요즘 매직이 멈추었다고는 하는데 어떻게 한 세대 전에 총부리를 겨눈 적국이었던 나라의 지도자를 데려다가 자기 나라 대표팀 감독으로 삼고 그렇게 성원을 보낼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유럽의 현대사를 볼 때 가장 이해하기 어려우면서도 놀라운 현상이 유럽연합의 탄생이었습니다. 여러 세기를 끊임없이 싸워왔고 특히나 20세기에 들어서서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서 전선을 마주 대하며 가장 직접적으로 대면하여 서로에게 수많은 총탄을 퍼부었던 독일과 프랑스가 2차세계대전 이후에 함께 협력하여 유럽 경제공동체와 유럽연합을 만드는데 앞장서왔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인간은 더디지만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배워가며 맹목적인 본성이 이끌어가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이성적인 판단과 현실적인 이해관계의 조정 능력을 발전시켜 왔기에 수많은 위기들이 있었지만 종말의 때를 연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새로운 기회들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가져봅니다.  

오늘 본문은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4장 1절과 2절을 보면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전쟁은 성경에 기록된 최조의 전쟁이면서 또한 최조의 국제전쟁이었습니다. 한 편에는 시날, 엘라살, 엘람, 고임이라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이 연합군의 지도자는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편에는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소알이 있습니다. 이 나라들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먼저 언급된 나라들은 비교적 큰 영토를 가진 나라들이고 뒤에 나오는 나라들, 즉,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과 소알은 작은 도시국가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큰 나라들이 연합해서 작은 나라들을 억압하고 지배하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의 맥락에서 보자면 바벨탑이후에 사람들이 서로 갈라지고 흩어지면서 각기 크고 작은 세력을 이루며 서로 갈등하고 힘을 겨루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더 큰 세력을 형성한 나라들이 자신들의 영토를 점점 확대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계속해서 14장 앞부분의 기록을 보면 이 작은 나라들이 모두 엘람 왕 그돌라오멜을 12년동안 섬겼지만 더 이상 참지 못하고 13년째 되던 해에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오늘 봉독해드린 본문에서 보시는 대로 14년째 되는 해에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 자신과 연합한 나라들을 이끌고 반란을 응징하며 정복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지배를 당하던 작은 나라들이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이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수가 불리했을 테지만 또한 실제로 전쟁이 벌어지던 싯딤 골짜기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 늪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역청은 오늘날로 말하자면 아스팔트인데 석유가 휘발하고 남은 부산물로 끈적끈적하기 때문에 싸우기가 매우 불리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을 지리적인 이점으로 사용했다면 대군을 맞아 싸울 수 있었겠지만 오히려 소돔과 고모라의 왕의 군대가 역청 구덩이에 갇히게 되어 큰 패배를 당하게 되었고 소수의 사람들만이 살아남아서 도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 성은 약탈을 당하게 됩니다. 

이때 소돔에서 살고 있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 이끄는 연합군에게 사로잡혀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앞서 봉독해드린 말씀의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를 아브라함과 롯의 입장에서 다시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기근이 들어서 잠시 애굽에 내려갔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롯과 아브라함 모두의 가축떼가 불어나게 되어서 같은 곳에 함께 거하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서로 갈라지기로 합니다. 그때 롯에 택하여 이주한 곳이 바로 소돔이었습니다. 당시는 아직 소돔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전이었고 롯이 보기에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땅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롯이 소돔으로 이주한 후에 이 전쟁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앞에서의 이야기를 보면 이미 14년 전부터 소돔은 엘람 왕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에 언제든지 다시 갈등이 일어날 여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롯은 그것을 모르고 그저 겉으로 보이는 풍요로움만을 보고 소돔 성으로 이주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고 엘람 왕의 연합군에 의해 사로잡혀가는 수모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이야기를 들은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을까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하나님 앞에 탄식하며 기도했을까요? 물론 기도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상황 속에서 아브라함의 기도를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러게 나랑 같이 있을 때에도 자기 잘난줄만 알고 속을 썩이더니 그거 봐라, 네가 나를 떠나서 뭐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있겠냐고 꼴 좋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브라함이 그렇게 속이 좁고 이런 위기의 순간에 그렇게 롯을 비난할 만큼 못된 인간은 아니었을 것같습니다. 

이 전쟁 이후에 벌어진 일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우리의 예상을 깨뜨립니다. 성경은 여기서 우리가 그동안 잘 몰랐던 아브라함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실 아브라함에게는 그가 직접 길러온 군사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14장 14절의 표현을 보면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디서 용병으로 얻어온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거느리고 먹여살리고 훈련시켜 온 군인들을 거느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아브라함은 목축을 주로 하는 유목민이었고 그렇게 독립적으로 유랑하며 목축을 하다보면 약탈을 당할 위험이 매우 높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318명이나 되는 무장한 호위병들을 거느리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가솔들로 구성된 이 군대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아브라함은 롯이 사로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엘람 왕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을 향해 쳐들어가서 승리를 거두고 롯 뿐만 아니라 사로잡혀갔던 사람들을 다 되찾아 왔습니다. 

오늘 표지의 그림은 아브라함이 이렇게 롯을 되찾아오는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후에 하나님이 보내신 제사장 멜기세덱을 만나서 축복을 받는 장면을 루벤스가 그린 그림입니다. 이 그림에서 아브라함은 갑옷을 입은 기사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갈라진 세상 속에서 아브라함이 어떻게 살아갔는지에 대한 매우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은 이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비켜서 있었습니다. 어느 한쪽 편에 깊이 속해 있지 않았습니다. 근본적으로 아브라함의 삶의 모습은 이 땅에서 나그네로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지금 살고 있는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그의 자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이었지만 그 때가 언제가 될것인지는 기약이 없었고 그는 다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 땅에 와서 하나님의 약속만을 바라보며 나그네로서 그 땅에서 살아갔던 것입니다. 그는 어느 성읍에도 정착하지 않았고 목축을 하며 유랑을 하며 독자적인 세력을 이루고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고 또 자기 스스로 삶의 문제들을 해결해 낼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세력으로서 조용히 이 혼돈의 시대 한편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의 이 평화는 롯이 사로잡혀가면서 깨어지게 되고 아브라함도 이 복잡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 깊이 휘말리지 않았고 부당하게 약탈당한 재물들과 사로잡혀가 사람들을 찾아오고는 다시 그의 평화로운 삶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오늘날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도처에서 대립하는 세력들간의 전쟁과 어려가지 충돌의 소식들이 그치지 않고 있지만 또한 전쟁이라는 형태를 띄지 않더라도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이 여전히 세계 도처에게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작금의 정치적인 상황은 점점 더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갈등이 심화되며 대립하는 두 집단으로 점점 더 경화되어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게다가 사견이고 단견입니다만 지금의 상황은 대부분 누가 좋아서 지지를 하는 상황이라기 보다는 누가 더 싫으냐의 싸움이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누군가가 좋아서 지지한다기보다는 상대편이 더 싫기 때문에 그 반대급부로 지지하는 세력을 선택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느껴집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모습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참여하며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좀 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능력을 갖추며 조금은 떨어져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 현실의 정치라는 것은 가장 긍정적으로 이야기할 때에 서로 다른 이해관계들을 여러 가지 방법들을 통해 조정하고 합의를 이끌어가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종교라는 것은 가장 부정적으로 볼때에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화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정치인들은 겉으로는 싸우는 것 같아도 알고 보면 다 그사람이 그사람이고 앞에서, 뒤에서 여러 가지로 싸우기도 하고 또 이해관계를 계산하며 타협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종교가 끼어들게 되면 참으로 이상하게도 사랑과 용서라는 가장 소중한 자산이 발휘되기 보다는 정죄와 심판과 상대방에 대한 저주가 더 심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종교적으로 가장 무관심한 나라가 정치적으로 가장 평화롭다는 분석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적인 가치가 무엇인지 깊이 성찰하는 능력이 없이 현실 세계로 끌려들어가게 되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가 더 쉽습니다. 그렇다고 현실에 대한 관심을 차단하고 스스로 어떤 폐쇄적인 게토 안으로 갇혀 들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자각을 하고 기독교적인 가치를 이 세상에서 추구해가기 위한 그리스도인들 자신의 목적을 분명하게 한 후에 이에 합당한 실천이 이어져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원칙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인들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갈라진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들도 같이 갈라져서 세상의 분열을 교회 안으로 가지고 오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 각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늘 생각하고 판단의 기준으로 삼으며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서로 연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집에서 기르고 훈련시킨 318명이라는 군사는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실력을 의미합니다. 군사적인, 물리적인 실력이 아니라 영적인 분별력과 객관적인 판단력, 그리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 세상 가운데 과감하게 실천할 수 있는 실천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로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영적인 순례를 하는 인생을 살고 있었지만 그러나 이 세상의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의 혼돈 속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내적인 평화와 안정을 깨뜨리려는 힘에 대해 저항하고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지킬 수 있는 실력이 있었고 또한 약한 자들의 자유가 침해당하고 부당한 일을 겪게 되었을 때에 그것을 보고 달려나가 참여하고 구원해 줄 실력이 있었습니다. 

올해 한해 우리모두 참으로 실력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분명한 성경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영적인 분별력을 갖추며 결단하고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중심을 잡고 우리가 가야 하는 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믿음의 용사들로 살아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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