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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성의 롯 / 창세기 19:1-9

오늘은 롯이라는 사람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롯은 성경에 아브라함의 조카로 등장하는 사람입니다. 롯의 인생을 크게 둘로 나누어 보면 아브라함의 그늘 아래에 머물렀던 시기와 이후에 독립을 해서 소돔성에서 살아가던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던 사람이고 소돔성은 죄악이 차고 넘쳐서 하나님이 심판을 하셨던 성읍입니다. 아브라함은 은혜와 구원의 상징이고 소돔은 죄악과 심판의 상징입니다. 롯은 이 두 극단의 사이에서 살아갔던 독특한 삶의 여정을 걸어갔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신앙의 여정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영적인 순례를 이야기합니다. 이 죄 많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유혹과 시험을 이겨내며 믿음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롯의 경우는 정 반대의 길을 걸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롯의 인생의 출발은 바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함께 한 삶이었지만 그의 인생의 종착점은 아브라함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하나님이 소돔성을 심판하시는 가운데 모든 것을 잃고 매우 쓸쓸하고 외롭고 매우 뒤틀려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롯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인생이 어떠한 길을 가야 하는지에 대한 매우 강력한 경고와 교훈을 줍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로 처음 성경에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에게는 아브라함 외에도 하란과 나홀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하란은 그의 아버지인 데라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하란의 아들이 롯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네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게 되었는데 이때에 다른 친척들은 다 두고 떠났지만 롯은 데리고 갔습니다. 당시에는 아브라함에게는 자녀가 없었고 롯에게는 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아브라함이 롯의 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가나안 땅에서 아브라함과 롯이 모두 부자가 됩니다. 여기까지는 참 좋은 이야기인데 그 다음부터 갈등과 문제가 벌어지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모두 소와 양이 많아지다보니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이 목초지와 물을 놓고 서로 다투는 일들이 많아지게 되면서 더 이상 같이 살기 어렵게 된 것입니다. 아마도 서로 불편한 가운데 눈치를 보고 있었던 기간이 제법 되었던 던 것 같고 그 후에 아브라함이 먼저 제안을 합니다.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먼저 롯에게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선택의 자유를 준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롯이 선택한 곳이 하필이면 앞으로 심판으로 멸망하게 되는 소돔땅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우리가 지난 주일에도 살펴보았듯이 사실 소돔은 아마도 경제적으로는 상당히 풍요로운 지역이었던 것 같지만 그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어서 당시에 강성한 나라들의 먹잇감이 되어 곧 전쟁에 휘말리게 되는 성읍이었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이 곳 주민들의 삶이 너무나 악하고 부정했기 때문에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문제들이 롯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롯이 보기에는 당시에 가장 화려하고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있었던 애굽과 같이 보이고 에덴동산처럼 보였기에 롯은 주저없이 아브라함을 떠나서 소돔으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대목에서 한번 질문을 해보게 됩니다. 정말 이 때 롯은 떠나야 했을까요? 물론 롯도 언젠가는 장성해서 독립을 하고 아브라함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진정한 독립은 영적인 독립이고 인격적인 독립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신앙을 지킬 수 있고 온전한 판단력과 책임감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의 독립이라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우리가 앞으로 롯의 인생을 통해 똑똑히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번 다시 생각해봅시다. 롯이 많은 재산을 얻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경이 이 시절의 롯에 대해 자세한 것을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가 보기에 롯이 얻은 모든 것은 다 아브라함의 덕분입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데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올 때에 롯이 가진 것은 없었습니다. 일찍 죽은 롯의 아버지가 롯에게 무엇을 남겨줬는지 알 수 없고 성경의 표현을 보면 아브라함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아내와 조카 롯과 같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고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을 함께 나누어 받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 문화의 상식으로 생각해보면 롯의 목자와 아브라함의 목자가 서로 다투게 되어 아브라함이 우리가 서로 헤어지자고 말했다면 롯이 무엇이라고 말했어야 할까요? “그래요 그럽시다”라고 쿨하게 말하기보다는, 자신이 아브라함의 덕으로 이렇게 부자가 된 것을 인정하고 감사하면서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자신들의 목자들을 잘 교육시키겠다고, 그러니까 그런 말씀은 마시라고 그렇게 말을 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요? 만일 롯이 아브라함에게 사과를 하고 롯의 목자들이 아브라함의 목자들에게 더 좋은 목초지를 양보를 했다면 오히려 하나님이 롯에게 더 큰 축복을 주시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롯은 떠나갔습니다. 아마도 롯은 자신이 그다지 아브라함에 비해 빠지는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아브라함의 그늘에 머물러 있는 것이 불편하게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가 보기에 더 풍요로운 땅으로 가서 아브라함보다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고 아브라함의 곁에 있어야 그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어디 가든지 성공할 수 있고 잘 살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집을 떠나서 소돔을 향하는 롯의 모습은 예수님이 말씀해 주신 탕자의 비유 속에 나오는 둘째 아들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아버지 집의 풍요로움에 만족하지 못하고 낯선 이국땅에서의 영화를 꿈꾸며 아버지의 집을 떠난 탕자의 모습을 롯의 모습 가운데에서 보게 됩니다. 

그러면 롯은 아브라함과 헤어져서 더 부자가 되었습니까? 우리가 지난 주일에 보았고 또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롯이 선택한 소돔은 당시에 풍요로운 땅이기는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노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큰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고 소돔 성은 약탈을 당하고 롯도 포로로 끌려가게 되는 큰 재난을 당하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듣고 아브라함이 자신의 집에서 기르고 훈련한 318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쫓아가서 롯과 그의 재물을 되찾아 주었습니다. 이 사건은 상징적으로 볼 때 롯이 진정으로 독립하지 못했으며 비록 아브라함의 곁을 떠났지만 여전히 아브라함의 기도 아래, 영적인 보호 아래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사건입니다. 

아무리 아브라함이 재산을 되찾아주었다고 해도 이 전쟁 통에 잃은 것이 많았을 것이고 자신이 선택한 소돔 땅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를 알았을 것을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가 앞으로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해 본다면 이 전쟁은 앞으로 임할 심판에 대한 경고와도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롯은 깨닫지 못했고 소돔을 떠나지 않았고 아브라함에게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님께서 소돔성을 심판하시는 날을 소돔에서 맞이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소돔에서 살고 있는 롯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롯에게서 서로 대비되는 두 가지 가치관을 보게 됩니다. 

먼저 오늘 본문은 두 명의 천사가 소돔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이 천사들은 앞으로 있을 심판을 롯에게 경고하고 롯의 가족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것입니다. 롯은 그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단지 소돔성을 찾아온 나그네로 여기면서도 그들을 청해서 자신의 집에 머무르게 하고 식사를 대접합니다.  이 모습은 바로 오늘의 본문 앞에서 이 천사들이 먼저 아브라함의 집을 들렸을 때에 아브라함이 베풀었던 친절과 환대를 기억하게 합니다. 낯선 이들을 영접하는 롯의 모습을 보면 롯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삶의 자세들을 아직까지 어느 정도 지켜가고 있었고 이로서 본래 롯이 믿음의 가정에 속했던 사람임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뒤에 이어지는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소돔성의 사람들은 나그네들에게 전혀 환대를 베풀지 안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금 우리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 것은 롯이 베풀어준 식탁이 아브라함이 베풀어 준 식탁에 비해서는 너무나 초라했다는 점입니다. 성경의 표현대로 하면 아브라함은 천사들에게 고은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고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요리하고 엉긴 젖과 우유를 가져와서 천사들을 대접했습니다. 한 마디로 진수성찬을 차린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롯은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웠다고만 되어 있습니다. 무교병은 누룩을 넣어 부풀게 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아무 때나 급히 만들 수 있는 간단한 음식입니다. 그러니까 비유해서 말하자면 라면 한 그릇을 대접한 것과 같습니다. 물론 소박한 식탁이라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식탁에 담긴 정성과 사랑이 더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롯이 소돔으로 간 이유가 더 많은 물질적인 부를 추구했었기 때문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떠날 때에는 아브라함과 비교가 될만한 부를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목자들 간에 갈등이 벌어지게 된 것이었는데 아브라함의 곁이라는 은혜의 자리를 떠나서 세상의 물질의 부를 쫓아간 삶의 결과를 성경은 아브라함과 롯의 식탁을 비교하며 너무나 적나라하게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오늘 본문에는 나그네를 환대하는 모습, 즉 아브라함의 가족으로서 그가 가졌던 은혜로운 성품과는 다른, 소돔에서 살면서 변해버린 롯의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롯이 천사들을 대접할 때에 소돔 사람들이 떼거지로 롯을 찾아옵니다. 그리고는 그 낯선 사람들을 끌어내서 “그들을 상관하리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성관계를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당시 소돔 사람들이 가진 가치관이 어떠했는지, 소돔성의 문화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나그네를 환대하기는커녕 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그들을 그들의 성적인 도구로 보는 왜곡되고 폭력적인 문화가 소돔성에 만연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롯의 반응도 우리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롯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집에 들어온 손님들을 지키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그러면 내 두 딸을 내어줄테니 너희들 마음대로 하고 내 손님들에게는 손을 대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낯선 이방인들을 끌어내러 재미를 보자는 저 소돔사람들도 참 악한 사람들이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손님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딸을 그 폭도들에게 내어주는 그런 생각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여기서 이미 롯도 소돔성의 가치관에 물들어버린 사람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아직 아브라함으로부터 받은 선한 성품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소돔에서 살아가며 소돔의 가치관에 익숙해가면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에 대한 판단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두 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버지가 아버지로 보였을까요? 이미 그 순간에 딸들에게 더 이상 아버지는 자신들을 저 낯선 나그네들을 위해서 얼마든지 희생될 수 있는 존재로밖에 취급을 하지 않는, 그러니까 이미 자신들과의 천륜을 끊어버린 사람으로 보인 것 아닐까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이 후에 벌어지게 되는 일들 때문입니다. 이 후에 천사는 이 폭도들을 물리치고 롯과 그의 아내와 그의 두 딸을 소돔에서 구해냅니다. 그리고 천사는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하기야 나의 모든 소유, 추억이 거기서 불타고 있는데 그것을 돌아보면 어찌 살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어버렸고 롯은 두 딸과 함께 피신을 하게 됩니다. 

롯의 최후는 성경에서 가장 쓸쓸하고 허망합니다. 롯은 이제 더 이상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된 것인지 이렇게 모든 것을 잃고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 싫었었는지 그 뒤에 산 속의 굴에서, 두 딸과 살았습니다. 두 딸은 여기서 우리가 평생 아버지와 함께 처녀로 늙어 죽어야 하겠느냐고 생각하며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아버지와 동침하여 자녀를 낳았습니다. 이 딸들이 모습을 보면, 아버지나 딸들이나 소돔성에서 너무나 많이 사람들이 망가졌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도 딸들을 딸들답게 소중하게 대하지 않았고 그저 손님을 환대하기 위한 도구로 소모시키려 했고 딸들에게도 아버지가 더 이상 아버지가 아고로 이 외로운 세상에서 자신들의 후대를 이어가는데 사용할 도구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품을 떠난 롯의 너무나 비참한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여기서 다시 질문을 해봅시다. 왜 롯은 모든 것을 잃었던 그 순간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이제 그에게는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다툴 목자들도 없고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은 신세이니 아브라함의 곁을 떠났던 때의 모든 명분은 사라진 것 아닙니까? 아브라함의 곁을 떠날 때에 가지고 온 것도 다 사라졌고 소돔에서 기대했던 모든 것이 결국은 허상이었고 이제 다 잿더미가 되어 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롯은 다시 아브라함에게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큰소리 치고 떠났는데 너무나 초라해져버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자기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을까요? 

예수님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 나사로가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품은 축복받고 선택받은 모든 이들이 가는 곳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롯은 이미 아브라함의 품에서 살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은혜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축복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허망한 소돔의 신기루를 따르다가 모든 것을 잃었고, 더욱이 신앙을 잃고 자신의 본향을 잃고 이렇게 쓸쓸하게 생을 마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도 아버지의 집을 떠났습니다. 롯도 아브라함의 집을 떠났습니다. 탕자도 아버지의 재산 절반을 가지고 떠났다 롯도 아브라함과 대등할만한 재산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탕자도 모든 것을 잃었고 롯도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탕자는 다시 아버지의 집을 기억하고 그 집에서 살던 때의 추억을 기억하며 아버지의 집에서 종노릇을 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하며 돌아옵니다. 그런데 롯은 다시 아브라함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아들과 조카의 차이일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든지 돌아갈 아버지의 집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롯은 너무나 소돔의 세계관에 취해버려서 더 이상 아브라함의 신앙을 이해할 수 없게 되어버렸고 그래서 자신이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모든 탕자가 다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돌아오지 못하는 탕자도 있습니다. 돌아가고 싶지만 너무 멀리 떠나와서, 다시 돌아가고자 하더라도 어디인지를 알지 못하고, 이제는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조차 잃어버린 인생이 있습니다. 

성경공부를 하다보면 마음껏 죄짓고 살다가 죽기 전에 회개하면 천국가는 것 아니냐고 질문하는 이야기들을 종종 듣게 됩니다. 매우 실용적인 이야기 같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껏 죄를 짓고 살다가 죽게 될 때에 과연 내가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죄를 지으며 살 수 있겠습니까? 왜 인생을 죄악으로 허송하며 마지막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돌아갈 곳이 있다면 지금 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합니다. 한국에서는 새 해를 두 번이나 맞이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는다고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점점 세상의 가치관에 길들여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세상 속에서 교회도 점점 더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관을 전파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 세상의 문화에 점점 더 물들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를 하게 됩니다. 교회가 앞장서서 사랑과 환대를 이야기하지 않고 혐오와 배제를 이야기하고 나눔과 섬김이 아니라 돈의 논리, 힘의 논리가 교회 안에서도 나타나는 현실을 보게 되면 과연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소돔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되물어보게 됩니다. 

정말로 두려운 것은 나는 내가 믿음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내가 소돔에 있는 것으로 보시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가지고 있지만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내가 지키며 살아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내가 닮아가고자 하는 인생의 모습은 무엇인지, 나의 축복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지를 잃고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점점 아버지의 집에서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더 늦기 전에 알량한 내 자존심을 내려놓고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영광이 다 헛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를 삶의 기준으로 삼고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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