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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 마가복음 9:14-24

여러분 이 한 주간도 평안하셨습니까? 지금 우리는 모든 것이 매우 불확실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분명히 하루에 감염자가 천명에 가깝게 늘어나던 때에 비하면 상황이 확연히 개선된 것처럼 보이는데 또한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싸움의 시작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정부에서는 학교의 개학을 다시 두 주를 더 늦추었습니다. 처음에는 3월 초에 두 주간 정도만 긴장을 하면 고비를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었는데, 다시 두주, 또 다시 두주가 연장이 됩니다. 여러 가지 전망들이 엇갈리고 있는데 조심스럽게 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문제가 장기화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고 또 장차 독성이 약화되면서 감기나 독감처럼 토착화되어 자리를 잡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조금 부정적인 말씀을 더 드리자면 신천지로 인한 예외적인 감염자들의 폭증의 사례들을 제외하면 오히려 신천지와 관련없는 일반 감염자의 수는 완만하지만 증가세에 있다는 분석도 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신천지의 영향이 별로 없었던 서울, 경기지역은 지금부터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중국과 우리나라와 일부 아시아 국가들을 제외하면 전세계적으로, 특히 유럽과 미국에서는 감염자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어서 그 영향이 다시 우리나라에 미치지 않을까 염려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고 무슨 계획을 세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더 긴장을 하기에는 이미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는데 그렇다고 긴장을 풀 수도 없는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어제 국무총리의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를 위한 담화문” 발표에는 “집단감염 위험이 높은 종교시설과 실내 체육시설, 유흥시설은 앞으로 보름동안 운영을 중단해 줄 것을 강력히 권고합니다. 불가피하게 운영할 경우에는 시설업종별 준수사항을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동안에도 위생과 안전을 위한 지침을 준수하며 예배를 드려왔지만 오늘은 특히 정부와 지자체에서 제시하는 준수사항을 지키기 위해서 예배드리러 오시는 분들 모두의 발열을 체크하고 좀 더 분명하게 2미터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좌석을 지정하여 착석하고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당회가 모여서 앞으로 부활절까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를 하고 그 내용을 이번 주중에 성도님들에게 공지해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지금 전세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그야말로 필사적인 노력이 경주되고 있습니다. 봉쇄와 격리와 여행중단과 재택근무와 이동 금지 등의 조치들이 내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세계의 교회들도 이러한 조치에 협력하며 여러 가지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고 또 극복을 위해 각자가 주의를 기울이고 또한 필요한 협력을 아끼지 않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이러한 현실을 이해하고 대처하기 위한 신앙적인 원리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좀 더 본질적으로 교회란 무엇인가, 예배란 무엇인가, 신앙공동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은 고민과 성찰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번 주에 읽었던 글 중에 인상적인 것은 핍박의 패러다임과 재난의 패러다임의 구분에 대한 어느 신학자의 글이었습니다. 그동안 교회는 핍박의 패러다임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핍박의 패러다임이란 고난을 회피하지 않는 것입니다. 순교의 정신으로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신앙의 현장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재난의 패러다임이란 그와는 반대로 어려움을 피하는 것입니다. 재난을 피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대책을 세우고 협력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들이 가지는 혼란은 재난의 상황을 핍박의 상황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핍박의 상황에서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지키도록 권면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지만 재난의 상황에서는 가능한 많은 사람이 그 자리를 떠나도록 돕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여기에 우리의 지혜가 필요하고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정부의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의 방역을 위한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는 데에는 조금도 이의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구체적인 행정명령이 내려진다면 당연히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죄송한 말씀이지만 작금의 상황 속에서 우려도 되고 아쉽기도 하고 좀 더 감정적인 표현을 하자면 섭섭하기도 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사회에서 교회의 위치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제 담화에서, 물론 실제적인 방역적인 측면에서의 구분이라고 이해는 하지만 교회의 자리는 “체육시설과 유흥시설”과 함께 분류가 됩니다. 이 말은 조금 심하게 말해보자면 굳이 안해도 상관 없는, 여가의 활용을 위한 시설들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집단 감염의 위험성이 있는 조직, 모임, 시설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종교시설, 체육시설, 유흥시설에 대해 강력하게 권고하는 것은 이 사회의 운영을 위해 필수적이지 않은 시설들, 모임들부터 강력하게 제어해야 한다는 인식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이고, 그래서 일부 교회들에서 다소간 고집스러운 반응이 나오는 것입니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유럽과 미국의 경우를 살펴본 바로는 그 쪽 동네에서는 특별히 교회를 지칭하는 것을 듣지 못했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모이는 모든 모임과 장소에 대해 일관적인 조치를 하고 회집하는 인원의 수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들어보았지만 특별히 종교단체를 문제삼고 있지는 않는 것을 봅니다.

물론 예배 자체가 가진 위험성이 있습니다.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고 서로 친밀히 교제하는 가운데 비말이 튀고 접촉이 일어나기 쉬운 환경이 된다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특별히 종교단체들에 주목하게 된 것에는 여러분들이 다 아시는 것처럼 부정할 수 없는 몇가지 근거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신천지가 자기들의 예배를 통해서 대규모의 감염자를 만들어 낸 것과 둘째로, 일부 교회에서 확진자들이 나온 것 때문인데 특히나 치명적으로 최근 어느 교회에서 카톡으로나 돌아다니는 불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사람들의 입에 소금물을 분무하는 무지한 행동을 하면서 예배를 드려서 수십명의 확진자가 나오게 된 상황은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활동과 바이러스 전파의 상관관계를 확신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 일반 세상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교회란 자기들 끼리 모여서 이상한 종교활동을 하면서 바이러스를 확산하는 그런 모임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저는 이러한 특정한 사례를 사람들이 일반적이라고 여기게 되는 이유가 이미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의 교회의 자리에 대해서 이러이러한 것이라고 규정을 해놓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과연 이 세상 사람들은 교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말은 다른 면에서 생각해보면 그동안 교회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 어떤 기여를 실제적으로 해왔는가라는 반성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귀신들린 한 아이를 고쳐주시는 장면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오늘 본문의 말씀에 얽힌 추억이 있습니다. 제가 교회 중등부를 다닐 때에 교회에서 수련회를 갔었는데 우리도 전에 전교인 수련회에서 성경말씀을 가지고 촌극을 했었는데 그때도 수련회가면 늘 그런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반이 뽑은 본문이 바로 오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저는 어떤 역할을 맡았을까요? 제가 맡았던 역할이 바로 귀신들린 아이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놀래키기 위해서 수련회장 강당 밖에서 미친놈처럼 꾸미고 준비를 하고는 우리 반의 순서가 되었을 때에 소리 소리를 지르면서 (무슨 소리를 질렀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는데) 뛰어들어와서 바닥에서 굴렀습니다. 그 후로 나머지는 생각이 잘 안나는데 제가 이 날을 특히 기억하는 이유는 그날 저녁에 처음으로 팬레터를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열정적이고 인상적인 연기였다고 추켜세우는 팬레터를 받고 기분이 온종일 들떠있었던 생각이 납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시는 축사의 이적을 행하시는 장면에 대한 기록이 자주 나오지만 특히 오늘 본문을 잘 살펴보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의 본질을 정확하게 집어주는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서 예수님은 제자들 중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으로 가셔서 그 곳에서 예수님이 가지신 하나님의 신성을 보이시며 밝은 광채 속에서 변화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간 제자들은 그 모습을 보며 놀라고 그 황홀한 광경 속에 머물러 있기를 원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이러한 영광스러운 황홀경에 머물 때가 아니며 앞으로 예수님이 당하셔야 하는 고난에 있고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 감당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며 다시 산을 내려오셨습니다.

그때 산 아래에서는 남아있던 제자들에게 어떤 사람이 귀신들린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제자들은 그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려고 했지만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서기관들이 제자들에게 시비를 걸면서 서로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여러 가지로 꼬투리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무능한 모습을 보니까 늑달같이 달려들어서 제자들을 비난하며 예수님이 없는 기회에 제자들을 겁박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제자들의 상황이 어떠합니까? 예수님은 산 위에서 영광을 받으시는데 산 아래에서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집니다. 한쪽에는 귀신들린 아이가 고통스러워하고 있고 그 아이를 여기까지 데려온 아버지는 난감해하며 슬퍼합니다. 한 쪽에서는 무능한 제자들을 비난하며 우습게 여기고 손가락질하는 서기관들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능력을 행해서 이 아이를 고쳐주지도 못하고 대적자들에게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한 채 난처한 지경에 빠져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을 보면서 오늘 우리나라의 교회들이 처한 상황을 생각해 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교회의 모습은 너무나 무능해 보입니다. 사람들은 교회가 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 확산을 저지하는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확산의 주범이 되고 있다고 제발 좀 모이지 말고 자제하라고 말합니다. 한 쪽에는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한 쪽에서 교회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교회는 적극적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돕지도 못하고 교회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무어라 대응해야 할지 정리도 되지 않은 채 혼란스러워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 근본적인 문제가 제자들이 믿음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동안 그렇게 예수님의 사역을 보고 배웠지만 그들이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고통당하는 사람을 돕지도 못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을 물리치지도 못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에게도 예수님은 우리가 믿음이 없다고 책망을 하시지는 않으실까요? 그동안 우리나라 교회가 열심이 있고 뜨거운 교회라고 자랑을 해왔는데 사실은 우리가 예수님을 잘못 믿어온 것이라고 책망을 하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는 열심히 모이고 뜨겁게 기도한다고 생각했는데 우리의 모임과 우리의 기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고 이웃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그런 모임과 기도가 아니라 오직 우리 자신들만을 위한, 우리 자신들의 유익과 번영을 위한 그런 모임, 그런 예배, 그런 기도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요?

언젠가 독일과 북유럽 국가들에서 교회의 사회적인 인식에 대한 자료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나라들에는 일종의 종교세가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종교세는 국가에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등록한 종교단체에게 그 사람의 소득의 일정한 부분을 떼어서 지급을 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교회를 출석하는 사람들보다 종교세를 내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자신들이 지금 교회를 출석하고 있지는 않지만 교회가 이 사회에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종교세를 부담한다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차원이 아니더라도 사회 복지의 차원에서, 사회 통합과 안정의 차원에서, 문화와 예술의 차원에서 교회가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회적인 인식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 누구도 이 시기에 의료진들이나 방역책임자들 뿐만 아니라 시청이나 도청이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열심히 모이고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 국가적인 위기를 극복하는데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공공성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단체일까요? 교회가 이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것이 그저 예배를 자제하는 것뿐일까요? 교회는 위생에 대한 개념도 없고 사회적인 책임 의식도 없이 열심히 수고하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조직이니까 그냥 좀 잠자코 있으면 되는 것일까요?

만일 교회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나타내는 교회였다면, 이웃을 향한 사랑이 넘치는 모임이었다면, 나라가 위태로울 때에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위로와 평안을 주고 이 시국을 헤쳐나갈 합리적이고 따뜻한 지혜를 나누어 주는 모임이었다면, 그래서 성도들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수고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헌금으로 구제에 힘쓰고, 성도들 간에 서로 권면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여서 이 사회의 적어도 사분의 일이 되는 사람들이 바른 인식과 지식과 개념을 갖추고 일상의 삶 속에서 평정을 지키면서 일상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그런 모임이었다면, 다른 모임은 다 중단하더라도 교회는 좀 모여달라, 교회가 본연의 역할을 좀 잘 감당해 달라,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을까요? 이것이 너무 지나친 기대일까요?

저는 그동안 교회가 그런 역할을 전혀 감당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섭섭한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왜 몰라주는 것일까? 왜 교회가 가지는, 예배가 가지는 사회적인 기능, 공적인 기능이 있다는 것을 왜 세상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것일까, 답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른다는 것은 그만큼 영향력이 없었다는 현실적인 증거가 되겠지요. 그래서 인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인식에도 그만한 이유와 근거들이 있고 그것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그냥 자제하고 덜 모이고 안 모이고 그냥 한 구석에서 이 위기가 지나갈 때까지 잠자코 있는 것이 아니라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깊이 성찰하며 정말로 예수를 잘 믿는, 정말로 열심히 예수를 믿는, 그런 성도들, 그런 교회가 어떠한 교회인지를 새롭게 깨닫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의 믿음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열심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기도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예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그것을 깨닫게 하시고 돌아보게 하시고 변화와 개혁과 갱신의 도전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뜨겁게 사랑함으로 이웃을 더 뜨겁게 사랑하고, 자기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그러한 신앙에 이르도록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성찰하게 하시고 더욱 헌신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느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제 친구 한명이 얼마전에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컴퓨터를 주시고, 인터넷을 주시고, 스마트폰을 주시고, 유튜브를 주시고, 온라인 게임을 주시고, 페이스북을 주시고, 카카오톡을 주시고, 인스타그램을 주시고, 구글을 주시고, 넷플릭스를 주시고, 온라인 예배와 각종 강좌들을 주시고, 그 밖의 각종 SNS 주시고 그리고 한참 뒤에 코로나 바이러스를 주셨다. 하나님은 감당치 못할 고난은 주시지 않는다

이 시대에 온라인으로, SNS로, 발달된 정보통신 기술로 우리는 교회의 사명을 자제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교회의 사명을 다하는데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들을 모색해야 합니다. 모여 있으나 흩어져 있으나 한마음으로 한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어 진정한 예배자로서,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가고자 할 때에 교회에는 능력이 나타날 것이고 표적이 나타날 것이고 기사와 이적이 끊이지 않을 것이고 권능과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믿음 없음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우리의 믿음과 신앙적 열심이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하지 못하고 우리 자신만을 위하는 믿음은 아니었는지, 우리 교회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웃을 섬기는 그러한 교회였는지 돌이켜보며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믿음 없음을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도우셔서 더 온전한 믿음에 이르고 더 온전한 사랑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교회가 되게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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