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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신명기 19:15-20

어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선생님이 주신 가정통신문을 가지고 왔는데 그 가정통신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 아무개가 친구의 연필을 훔쳤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집에서도 주의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보고 아버지가 화가 나서 아이에게 다시는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말라고 야단을 쳤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연필이 필요했으면 이야기하지 그랬니. 아빠 회사에 연필이 많은데 몇 개 가져다 줄 수도 있는데.”

여러분 이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친구의 것을 가져오면 도둑질이고 회사 물건을 가져오면 아버지의 사랑입니까? 

우리가 지난 시간에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해 살펴보았지만 우리는  부정한 일을 저지르면서도 습관이 되어서, 남들도 다 그렇게 하기 때문에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는 아홉 번째 계명인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는 크게 보아 세 가지 차원의 교훈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법정에서 위증을 하지 말라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이웃의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라는 뜻이고 세 번째로는 오직 진실만을 말하고 거짓을 멀리하는 뜻입니다.  

첫째로 오늘 본문의 일차적인 의미는 거짓 증언, 즉 문자 그대로 법정에서 이웃에 대해서 거짓된 증언을 하는 것을 금하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법정을 전제로 삼고 있는 것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잘잘못을 분명하게 가릴 수 있는 공정한 재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경에서 위증을 얼마나 심각하게 다루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먼저 한 사람만의 증언으로는 유죄 판결을 할 수 없고 반드시 두 명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재판에서 피고인의 진술과 증인의 진술이 서로 다를 경우에는 증인도 피고와 똑같이 재판정에서 자신의 진술에 대해서 제사장과 재판장에게 심문을 받아야 합니다. 만일 위증한 것이 드러났을 경우에는 원래 고발된 사람이 받을 벌을 위증한 사람이 그대로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짓으로 증언을 해서 사형을 받게 하려고 했었다면 위증한 사람이 사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짓 증언에 대해 무겁게 다루고 있습니다. 

성경은 공정한 재판에 대해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16장에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을 둘 것이요 그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니라 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고 말씀합니다. 또 출애굽기 23장에서도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고 말씀하고 있고 레위기 19장에서도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재판한지며”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재판을 공정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있기 전에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지도자를 사사라고 하는데 사사의 원래의 의미는 정의를 세우는 사람, 즉 재판관이라는 의미였습니다. 다윗의 아들이었던 압살롬이 아버지를 몰아내고 왕이 되려는 음모를 꾸밀 때에 먼저 성문 앞으로 가서 백성들을 만납니다. 당시에 성문 앞이 재판이 열리는 재판정이었기 때문에 억울한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는데 그 곳에서 자신이 아버지보다 더 공정한 재판을 해서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다고 말하면서 백성들의 환심을 사려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듯이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지혜를 구했는데 그 지혜는 저 유명한 솔로몬의 재판에서 드러나듯이 바로 재판을 공정하게 할 수 있는 지혜였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인용한 구약성경의 구절들을 보면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재판에서 편을 들어주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은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에게 선하게 대하라는 말씀이 많이 나오지만 재판정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든지 부자든지 누구든지 공정하게 재판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을 따라서 그들도 거룩하고 의로운 백성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신약성경의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율법의 중요한 역할이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재판이 공정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고 하나님의 법을 가볍게 여기고 자기 마음대로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고 교만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 공정하고 정의로운 재판이 이루어질 때에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됨을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말씀에는 이웃의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함부로 이웃을 모함하지 말고 그들의 인격과 명예를 존중하며 그들에게 진실되게 대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장로교 신앙의 토대가 되는 문서 중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16세기에 기록된 것인데 그 중에서 십계명의 제 9계명에 대해서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거짓 증언하지 않으며 어느 누구의 말도 왜곡시키지 않으며 헐뜯거나 모략하지 않으며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경솔하게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데에 참여하지 않으며 오히려 모든 거짓말과 속임수를 마귀의 일로 알아 피함으로써 하나님의 무거운 진노가 내게 임하는 일이 없도록 하며 또한 법적인 송사에서와 다른 모든 일에서도 진실을 사랑하고 정직하게 진술하고 고백하며 또한 할 수 있는 만큼 이웃의 명예와 평판을 보호하고 증진시켜 주는 것입니다.”

즉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라는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는 법정에서의 증언 뿐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도 이웃들을 헐뜯고 모함하며 경솔하게 판단하지 않고 그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명예를 보호해주어야 한다고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법정에서 증언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늘 일상에서 누군가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을 합니다. 수군거리고 흉을 보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판단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제 아버지가 제게 가르쳐 주신 금언 중에 “칭찬은 뒤에서 하고 충고는 앞에서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살면서 보니 그 말씀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 것이 더 쉽고 그리고 불만이 있을 때에도 뒤에 가서 흉을 보게 되기가 더 쉬웠습니다. 

제가 부교역사로서 사역을 할 때에 앞으로 어떤 사역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하면서 꼭 모든 사람이 담임목사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람마다 은사가 다르니까 각자 자신에게 주신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하며 살면 되는 것이고 제 스스로 생각해 볼 때에 내가 교회를 이끌만한 리더십이 있는 사람인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담임목회를 해야겠다는 결정을 하게 되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그 동안 부교역자로서 담임목사님들에 대해 흉을 보았던 죄 값을 치러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담임목회를 하다 보니 교회에 어떤 문제가 있어도 누구를 탓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 문제와 불만이 다 제 머리로 떨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것이 다 예전에 목사님들 뒤에서 불평불만을 했던 대가를 받는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라는 말씀은 내 자신의 인격과 명예가 소중하듯이 다른 사람들의 인격과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고 근거없는 말, 확실하지 않은 말로 쉽게 판단하지 말고 우리의 입에 재갈을 먹이고 신중하게 행하라는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세 번째로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말씀은 우리가 우리의 입술로 모든 거짓된 것을 말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과 내 자신과 또 우리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일들에 대해 오직 진실만을 말해야 합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모든 진리의 근원이시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진실되고 거짓없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은 마귀를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합니다. 태초에 사탄은 거짓말로 인간을 속여서 죄를 짓게 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였습니다. 인간은 사탄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먹게 되면서부터 진실의 세계에서 멀어져서 거짓의 세계에 속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은 사탄의 자식이 되어 거짓의 아버지로부터 거짓을 배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내가 진실을 알고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정말로 그렇다면 재판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서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문제에 있어서 이해 당사자들간에 기본적인 사실에서부터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 발야구를 하면서 참 이상하게 생각했던 일이 있습니다. 발야구나 야구나 마찬가지로 다 공과 사람 중에 무엇이 먼저 도착했는지가 중요한데 어떤 때는 거의 동시에 들어와서 무엇이 먼저인지 헛갈릴 때가 있습니다. 사람의 눈이라는 것이 부정확하니까 의견이 다를 수는 있는데 그렇다면 이쪽 팀에서도 반반, 저쪽 팀에서도 반반으로 갈려야 할 텐데 여러분들 잘 아시는대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자기가 어느 팀이냐에 따라 한 목소리로 아웃이다, 세이프다하고 외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눈 앞에서 보이는 것은 같은 것인데 왜 팀에 따라서 의견이 달라지게 되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자신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을 때에 자신이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조차 잘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늘 제 삼자가 필요하고 객관적으로 문제를 보게 해주는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보고 기억하고 말할 때에 자기도 모르게 여러 가지 왜곡을 합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가리고 축소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강조합니다. 자신에게 익숙한 것은 쉽게 기억하고 낯선 것은 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똑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기억하고 다르게 말합니다. 자신들이 본대로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그것이 마치 정물화를 그리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 학창시절 이야기를 드리는데 제가 고등학교 때 미술시간에 느낀 것인데 석고상을 놓고 그리라고 하면 석고상 그대로 그리면 되는데 그렇게 그릴 수 있는 학생들은 미대 가려고 학원 다니며 준비하는 아이들밖에 없습니다. 같은 석고상을 보고서 어떻게들 그렇게 창의적인지 다들 다른 그림을 그립니다. 그런데 제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아서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그렸나 하고 둘러보니까 참 신기한 것이 다들 지들 얼굴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석고상을 보고 그리고 있는데 도화지 위에 그려진 것은 석고상이 아니라 자기 얼굴을 닮은 형체들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다 자기 얼굴을 새겨놓고 있구나. 다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고 있는 그대로 사물을 보지 못하는 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미술을 전공하기 위해 학원에 가서 데생을 배우고 연습을 해야 제대로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처럼 교회는 자신의 주관적인 세계에서 벗어나서 객관적인 진리의 세계를 배우고 정직하게 진실을 말하는 법을 훈련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의로운 척 잘난 척 하지 말고, 또 너무 낙심하여 좌절하고 자신을 비난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발견하고 또 이웃들에 대해 왜곡되고 편향된 시선을 교정하고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과도한 두려움이나 또 지나친 낙관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세상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인정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거짓말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불가피한 거짓말들이 있다는 생각도 같이 하게 됩니다. 선한 의도로 하는 거짓말들, 소위 화이트 라이, 하얀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거짓말들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하기 위해서는 너무 곧이곧대로 있는 그대로 말하기보다 눈치가 좀 있고 분위기를 살필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일종의 상식이고 또 예의이기도 합니다. 두 남녀가 소개팅을 하게 되었는데 서로 좀 맘에 안든다고 해도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별로시네요. 소개해준 사람한데 따지러 가야겠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냥 좋게 좋게 말하고 다음에 연락안하면 된다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문화권에 따라서 어느 정도 용인된다고 생각되는 거짓말의 폭이 좀 다릅니다. 제가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목회자들이 과속을 해도 봐주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임종예배를 드리러 가야 한다든가 하는 시급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사정을 이야기하면 봐준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아시아계 목사님들을 잘 안봐준다고 합니다. 급한 일이 아닌데도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랍니다. 기분이 나쁘기는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난처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적당히 말을 둘러대고 거짓말을 좀 하는 것이 그렇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예전에 운전을 하다가 전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차가 밀려서 전화를 했다가 차가 가니까 계속 전화를 하게 되었는데 저기 앞에 보니까 경찰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화를 내려놓았는데 경찰이 거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날이 무슨 날인지 제 바로 왼쪽에 있었습니다. 그 경찰이 차를 세우더니 운전 중에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니 신호대기 중에 잠깐 전화를 받고는 전화를 끊었다고 말을 하려고 하는데 그 경찰이 하는 말이 제가 다 봤습니다. 저 앞에 경찰 있는 것 보고 전화기 내려놓는 것도 봤습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싼 것 끊어드리고 인정하지 않으면 비싼 것 끊어드립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 예, 전화했습니다라고 말하고 싼 것을 끊었습니다.

상황과 사정이야 다 있겠지만 그러나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상황에 따라 말이 달라져서는 안됩니다. 운전 중에 전화를 했으면 한 것이고 안 했으면 안 한 것이지요. 불리한 상황을 모면한다고 사실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말하는 습관이 들게 되면 점점 우리의 삶은 진실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손해가 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의 객관적인 진실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늘 인정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전에 중국에 있을 때에 중국 조선족 역사학자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 분이 북한을 방문해서 북한의 역사학자들하고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답니다. 그 당시에는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인가 뭔가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 그 분이 북한의 학자들에게 아무리 자기가 연구를 해봐도 김정일은 김일성이 소련에 있을 때 태어났는데 왜 당신들은 김정일이 백두산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느냐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북한 학자들의 대답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민족의 령도자가 남의 나라 땅에서 태어났다고 가르칠 수 있겠느냐고 그게 말이되냐고 오히려 화를 내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애국입니까? 아니면 역사의 왜곡입니까?

역사의 왜곡이지요. 어느 정도 필요한 상황, 사정들이 있어도 객관적 진리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대로 말 할 수 있어야 자유롭고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고 그런 사회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말의 기준이 내 자신의 이해관계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지 않고 영원한 진리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얼마나 내면화되었느냐는 나의 말이 얼마나 진실되고 거짓을 멀리하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그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것을 그야말로 불가피한 상황에 한정을 하고 습관적으로 진실을 가리지 않는 말과 행실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어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모든 신학과 사상을 집대성한 어거스틴은 아예 모든 경우에 절대적으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목숨이 걸려있는 일이라고 해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을 죽이려는 사람은 그 사람의 육신은 죽일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영혼은 죽일 수 없는데 만약 내가 그의 육신을 살리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게 된다면 그의 육신은 살릴 수 있을지 몰라도 내 영혼을 죽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육신보다 영혼이 더 소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육신을 살이기 위해서 내 영혼을 죽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인이란 절대로 거짓된 삶을 살아서는 안되는데 조금이라도 거짓을 용납하면 점점 커져서 한 사람의 영혼이 병들어버린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어거스틴은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좀 숨겨달라고 찾아와서 집에 숨겨주었는데 그 뒤에 어떤 칼을 들고 찾아와서 자기가 찾는 아무개가 여기 있느냐고 물을 때에 “예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라고 하지는 안습니다. 그렇다고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이 되니까 침묵을 지키거나 대답을 거부하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든지 거짓을 말하지 않고 최대한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거스틴이 지나치게 엄격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이 글을 읽고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사람이 있구나, 그리스도인이 조금의 거짓도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그의 믿음을 보면서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어거스틴이 좀 지나친 주장을 하는 것이기는 합니다. 성경에서도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거짓말은 용납이 됩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애굽의 왕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성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히브리 사람들의 산파들에게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죽이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 산파들이 바로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바로가 왜 남자아이들을 살려두냐고 묻자 산파들은 히브리 여인들이 힘이 좋아서 산파가 가기 전에 아이를 낳아버린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것은 물론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거짓말을 하면서 남자 아이들을 살렸기 때문에 모세가 죽음을 면할 수 있었고 나중에 장성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시대에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에 정탐꾼을 보냈는데 정탐꾼들이 라합이라는 기생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그 소문을 듣고 여리고의 왕이 사람들을 보내어 정탐꾼들을 잡아오게 합니다. 라합은 정탐꾼을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정탐꾼들이 벌써 떠났다고 거짓말을 해서 그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라합과 그의 가족들은 나중에 여리고성이 함락될 때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라합은 이스라엘 남자와 결혼을 하고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에도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까지입니다. 성경은 이런 경우 외에 다른 경우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것이 있겠지만 그것을 자꾸만 확대해서 생각하다 보면 점점 우리의 양심도 무뎌지고 진실에 대한 우리의 감각도 둔해지게 되고 모든 것을 상황에 따라 편의에 따라 말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에 대해서도 점점 둔감하게 되고 모든 것이 정당화되어서 죄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원죄의 그늘 아래에 있기 때문에 사실을 구부러뜨리고 거짓을 말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착하고 정직하고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자신이 선하다고 확신하면 할수록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는 말도 옳은 것이고 설령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불가피하며 심지어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자기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거짓말을 더 잘한다고 합니다. 자신을 합리화하는 이야기를 더 잘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사람들은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하는 재주밖에 없는데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빠져나갈 수 있는 말들을 지어내는데 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을 삼고 경계를 하며 진실만을 말하고 거짓을 멀리하려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우리의 이해관계를 앞세우며 거짓으로 기울어지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기 자신의 말과 행실을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진실을 따르려고 먼 길을 돌아가게 되고 손해를 보게 된다고 해도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가 진실되게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에게 큰 은혜와 능력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이 은혜가 모든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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