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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 로마서 1:14-17

얼마 전에 어느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 목사님이 목회하시는 교회에 그 목사님의 동생이 출석을 하시는데 평소에는 아무말도 없이 조용히 다니셨는데 어느 날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랍니다. “형, 성도들이 원하는 게 뭔줄 알아요” 그러면서 하시는 이야기가 성도들이 한 주간 이 세상에서 힘들게 살고 지쳐있는데 그래서 교회에 와서는 위로를 받기를 원하는데 좀 위로가 되는 그런 말씀을 전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도 동생분의 말을 들으면서 그동안 어떤 설교를 했는가 돌아보셨다고 하셨는데 저도 그 말씀을 들으면서 그동안 어떤 설교를 했는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복잡하다보니,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안고 고민하게 되고, 설교도 점점 더 무거워지고 별로 힘과 위로를 주시 못하는 그런 말씀을 전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요즘 걱정이 많습니다. 이 세상이 점점 더 교회에 대해 부정적이 되어가는데 교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때도 많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 흔들리고 당장 뭘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데 하는 불안함에 마음을 빼앗길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아, 목사가 은혜가 없으니까 은혜로운 말씀을 전하지 못하는구나 하는 반성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힘겨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위로를 주시는 분이십니까? 성경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위로를 줍니까?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복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특히 신약성경에서 복음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여러분들 다 아시는 대로 복음은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이 이 세상의 다른 책들과 다른 이유는 이 세상에 대한 궁극적인 기쁜 소식을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요즘 이 세상에 대한 나쁜 소식을 날마다 접하며 살아갑니다. 매일 매일 고지되는 확진자의 숫자가 우리 마음을 늘 불안하게 만듭니다. 이 판데믹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언제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될지도 모르고 겨울이 되면 2차 대 유행이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앞으로 계속해서 더불어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듣게 됩니다. 어떤 분이 페이스북에 3년전에 해외여행을 갔던 때 찍었던 사진을 올리면서 BC 3년이라고 적어놓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Before Corona, 그러니까 코로나 바이러스 있기 3년 전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이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질 것 같아서, 그래서 앞으로는 예전처럼 그렇게 해외여행을 다닐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렇게 표현을 한 것이었습니다. 

정부에서는 2차 재난 지원금을 지급한다고 하는데 그만큼 경제가 좋지 않고 내년에 경제가 얼마만큼 회복될 것인지도 그리 확실하지 않습니다.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에 대한 걱정의 소리들도 있고 남북관계도 불안하기만 합니다. 냉전이 끝난 것이 불과 엊그제 같은데 한동안 극단적인 이슬람 무장 세력들이 세상을 어지럽게 하더니 이제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과 갈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새로운 총리가 선출되었다는데 한일관계의 전망도 그리 밝지 않습니다. 이념적인 갈등, 세대간의 갈등, 계층간의 갈등이 심화되기만 하고 도무지 어떻게 해소될 수 있을지 전혀 감이 잡히지도 않습니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이 세상에 대한 나쁜 소식들을 꼽아 보자면 사실 끝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정말로 이 세상이 문제투성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에 더 끌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데 더 익숙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드리지만 서점에 가면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시비걸기, 우을하게 살아가는 법, 이런 책은 없습니다. 그런 것은 우리가 다 알아서 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는 책들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법, 불안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방법들을 가르쳐 주는 책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책들이 계속해서 새로 나온다는 것은 사실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 것입니다. 

우리는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잘 양육하려면, 학생들을 바르게 교육하려면, 직장에서 부하직원들에게 최고의 성과를 기대하려면, 이웃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부부 사이에 좋은 관계를 이어가려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좋은 말을 하고, 격려해주고 칭찬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 못합니다. 그렇게 잘 못하는 이유는 사실 우리들 자신이 별로 칭찬을 받아본 적도 없고 위로를 받아본 적도 없고 이해받고 용납받아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는 아는데 가슴으로는 잘 모르겠고 그런 경험이 별로 없어서 어떤 말을 어떻게 적재적소에 제대로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늘 마음 한 구석에는 쓴소리를 하고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이야기, 칭찬하는 이야기를 하려는데 제동이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세상을 비판적으로 생각할 때 자기가 남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실 우리가 머리가 좋아서 비판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원래 그런 것입니다. 남들도 사실 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냥 말을 안 할 뿐입니다. 그런데 나 혼자만 아는 줄 알고 이야기하고 다니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방송국에서 가장 군기가 쎈 곳이 희극인실, 그러니까 개그맨들이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남들에게 웃음을 주려는 사람들이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희극인들의 삶이 사실은 별로 희극적이지 않은 것이지요. 그만큼 사람들을 웃게 하기가 어렵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불안보다는 위로가 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비판하지 말라고 하다보면 결국은 또 누군가를 비판하는 말이 되고 왜 사랑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이 나도 누군가를 사랑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복음을 가르쳐 주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가르쳐준다고 하지만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큰 여유를 갖지 못하고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어떤 계율로 사람들의 삶을 옥죄이고 이 세상에 대한,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의무감을 강조하고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 이대로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쫓아다니면서 바르게 살아야 하고, 뭔가 해야한다는 압박감을 늘 가지고 살아가게 만듭니다. 그리고 다른 성도들에 대해서도 사랑하고 이해해주기 보다는 신앙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이 왜 저래 하면서 판단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하게 되고 사방 천지에 마귀들이 쫙 깔려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럼 이게 전부일까요? 사실은 세상은 엉망진창이고 우리의 인생은 암울하고 우리의 미래는 잿빛이며 우리는 이 힘겨운 세상을 신앙이라는 남들은 지지 않은 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뿐일까요? 

예전에 어느 목사님이 선한 사마리아사람에 대한 설교를 하시면서 선한 사마리아사람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아,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던 적이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사람에 대한 설교를 수없이 들었는데 대개 하나님을 잘 믿는 제사장들, 레위인들도 하지 못하는 선행을 우리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주는 이야기로 읽게 됩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선한 사마리아사람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강도만난 우리를, 죽어가는 우리를 들쳐 업으시고 치료하시고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말씀으로 다시 한 번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는 책이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용서를 전해주는 책입니다. 이 세상에 대한 궁극적인 소식은 나쁜 소식이 아니라 기쁜 소식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물론 성경은 막연히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대로 살아도 아무 문제없다고 우리를 위로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각성시키고 우리를 깨웁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이 세상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 실체를 보게 합니다. 그러나 그뿐이라면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어디서나 들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 다음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비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정죄로 끝나지 않습니다. 심판의 경고가 성경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 세상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가 아닙니다.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이 세상에 대한 기쁜 소식은 무엇입니까? 

성경의 첫 번째 이야기는 선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으신 아름다운 곳으로 창조하셨다고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성경의 마지막 이야기는 하나님이 이 세상 모든 것을 다시 회복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실 것을 보여줍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모든 눈물을 씻고 상처를 치유받고, 두려움과 불안에서 벗어나며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런 미래가 존재하는 이유, 우리가 그렇게 믿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은 문제투성이입니다. 이 세상에는 죄와 악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의로운 척하지만 뒤로는 불의한 일을 저지르는 것을 서슴지 않습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고치는 것, 개혁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는 모든 부정적인 이야기들은 이 세상의 실상이고 이 세상의 현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것이 전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 우리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선하신 하나님, 의로우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갖는다는 것, 진정한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먼저 우리의 말과 생각에서 주어를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너는, 저 사람은, 저놈들은, 이놈의 세상은 이 아니라, 하나님은, 예수님은, 성령님은 이라고 우리의 말과 생각의 주어를 바꾸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때 우리는 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고 그 때 우리의 귀에는 이 세상에 대한 복음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내가 스스로 보기에 내 모습이 얼마나 한심하고, 내가 보기에 이 세상이 얼마나 엉망진창이고, 내가 보기에 이놈들, 저놈들이 이 세상을 망치려고 무슨 짓을 꾸미고 있든지 간에, 이 세상에는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다만 우리가 그분이 하시는 일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일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본래 아름답게 창조하셨지만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망가진 이 세상을 그대로 두시거나 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불의하고 더럽혀진 세상을 구원하시기로 작성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한 결정적인 사건을 일으키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너와 나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고, 부활을 통해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이 세상을 악의 권세,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듣게 하시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시고,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시고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사모하게 하시고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부르시고 인도하시고 우리를 도우십니다. 

이 세상은 바이러스의 소굴도 아니고 어떤 악한 자들의 의도에 의해 휘둘리는 곳도 아닙니다. 모든 악한 것은 다 사라질 것이고 모든 불의한 권세들은 다 무너질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슬픔도 다  사라질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영원하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이 영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복음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약속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말씀, 이 세상 그 무엇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는 선언이 성경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우리의 인생에 대한 궁극적인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세계 곳곳에서 역사하십니다. 이 세상이 다 썩은 것 같고, 모든 것이 엉망인 것 같고,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도, 그래서 당장 망해도 이상할 것 없는 세상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이 세상 속에서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이 세상 속에서 전파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수고하며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선을 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자신이 눈물을 흘리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이들에게 기쁨을 안겨주기 위해 자신의 기쁨을 접어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게 손해가 되어도 옳지 않은 일이기에 불의한 유혹을 뿌리치는 사람들이 있고 거짓 대신 진실을 택하기 위해 자신의 선한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믿음, 믿음하고 이야기하지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그 하나님이 선하시고 의로우시며 이 세상을 사랑하시며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음을 믿고, 지금도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장차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 믿음을 가지고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자신의 삶의 자리를 지키며 기도하며 순종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을 통해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는 점점 더 우리에게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로마서에 있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세상에 대한 복음을 전하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자신을 택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고 그래서 유대인들이든지, 이방인들이든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명하신 기쁜 소식을 전하기를 원한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어떠한 삶으로 부르십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한 어떤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바울의 이 고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복음이 참된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이 세상의 궁극적인 진리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능력이 담겨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만으로 이 세상을 구원하고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충분하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는 정말로 복음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정말로 우리는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있지는 않는가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예전에 제가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에 신입사원 연수를 하면서 그룹에 속한 계열사들 몇 곳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자동차 회사에 가서 들은 이야기인데 자동차 공장이 크니까 정문에서부터 본관까지, 공장까지 거리가 제법 되는데 지각을 해서 택시를 타고 오는 직원들을 정문에서 확인해서 그 회사에서 만든 택시를 타고 오는 사람은 본관까지 들여보내고 다른 회사 택시를 타고 오는 사람은 정문에서 내리게 한답니다. 택시는 다 그냥 택시인데 택시를 탈 때에도 어느 회사 자동차인지 보고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애사심을 강조하는 이야기이겠죠.

또 예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가전제품을 만드는 회사들 이야기인데 A사와 B사의 차이가 A사 직원들의 집에 가면 A사 제품이 있는데 B사의 직원들의 집에 가도 A사의 제품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A사는 되는 회사고 B사는 안되는 회사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기야 자기 직원들도 쓰지 않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잘 될 리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전도에 대해서 강조를 하지만 복음을 전하려면 내가 먼저 복음의 진리를 믿어야 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내가 믿고 내가 자랑스러워하면 자연스럽게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믿지를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내가 확신이 없으니까 복음으로 충분하다는 것, 예수님으로 만족할 수 있다는 것, 십자가에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는 것을 믿지를 못하니까 전하지를 못하고 자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것, 예수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 하나님께 기도하면 이루어주신다는 것을 더 이상 우리가 잘 믿지를 않습니다. 너무나 뜬 구름같은 이야기, 추상적인 이야기같이 들립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들어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자꾸만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래야 관심을 받고 그래야 주목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교회만 생각하고 세상에 관심이 없어서 문제라고 했는데 지금은 너무 세상에 대한 생각만 하고 복음에 대한 관심이 점점 없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나라에 대해 염려하고 사회적인 책임을 각성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성가실 정도로 전도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리스도인들은 더 늘었다는데 전도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점점 더 전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갑니다. 그러나 세상을 탓하고 상황을 탓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믿음 없음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러자면 교회가 먼저 바로 서야 하고 교회가 복음의 진리를 실현되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 간에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성도들이 성도다워지면 복음은 전파되고 이 세상은 구원을 받습니다. 

이 세상에 소망이 있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교회에 소망이 있는가? 그것도 요즘은 잘 모르겠습니다. 현실 속에 있는 교회의 모습이 부끄러울 때도 많습니다. 선뜻 교회가자고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소망을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시는 하나님께 둡니다.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님께 둡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망없는 세상 가운데서 소망을 가지고 소망을 전합니다. 위로없는 세상 가운데서 위로를 받고 위로를 전합니다. 사랑없는 세상 가운데서 사랑을 받고 사랑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시고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고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한 모든 것을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셨습니다. 이 믿음이 없이는 나도, 이 세상도 구원을 받을 수 없고, 험한 세상 가운데 우리가 의지할 것은 아무것도 없고, 우리가 받을 위로도, 소망도 없습니다. 

내가 부끄러움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가?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질문해봅니다. 나는 이 세상에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인가 나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인가 스스로 질문해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든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안에서 위로받고 소망을 찾으며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기쁜 소식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을 전하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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